챕터1_추방과 멀미
지난해에 산문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새해를 맞아 포부와 각오를 담은 글을 쓰려고 했는데, 마음에 구름처럼 희뿌옇게 모인 감정들이 손끝에서 좀처럼 구체화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손끝이 먼저 화려한 미사여구를 뿌려대서 오히려 내 감정들이 그에 미치지 못해 민망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답답했다.
꼭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난감해서 혼자 가슴을 쳐야 했고, 그동안 글 쓰기와 사고를 게을리해서 이렇게 됐다는 생각에 땅을 쳤다. 그전까지는 나는 글 쓰기가 쉬워서 사람들이 글쓰기의 중요성을 피력할 때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냥 쉽게 후루룩 쓰면 되는데 왜 그렇게들 호들갑인가?
한번 답답함을 겪고 나니 적당한 길이의 글을 꾸준하게 쓰는 것이 어휘력과 사고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체득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 생각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단어를 찾는 일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 사람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동안 아주 짧고 경험 위주의 글들만 써온 것을 반성한다. 책을 꾸준히 읽었음을 위안 삼으며 그 작가의 표현들이 마치 내 표현인 마냥 우쭐했던 것도 반성한다. 내가 직접 쓰지 않으면 모르는 단어와 마찬가지다.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매번 쓰던 단어를 반복하게 되고, 사고도 그 안에 갇힌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나는 작년보다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서 글을 읽을 때마다 낚아 올린 단어들을 따로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이미 아는 단어라도 낯설게 느껴지면, 내 속에서 재활성화시킨다는 의미로 정리해 보기로 한다.
어제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고, 한 챕터를 읽었을 뿐인데 꽤 많은 단어를 낚시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재밌어서 끌려가다 보면 내가 낯설어하는 단어들을 그냥 지나칠 경우가 많아서, 몇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할 때도 있었다.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엄중하다 / 고심하다/ 입증
엄중하다는 엄격하고 정중하며 몹시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글을 쓸 때는 '중요한, 심각한, 무거운' 등의 비교적 쉽고 가벼운 표현들만 써왔던 것 같다.
이 단어만이 줄 수 있는 압도적이고 숨 막히는 느낌을 전달하기엔 부족했다.
유의어 = 엄숙하다/엄격하다/삼엄하다/엄정하다/준엄하다/정중하다.
고심하다는 몹시 애를 태우며 마음을 쓴다는 뜻이다.
그동안 '고민하다'라는 단어만 써왔는데 이 표현을 알게 된다면 고민의 깊이를 전달하기 좋을 것 같다.
유의어 = 걱정하다/고려하다/초사하다
입증은 어떤 증거를 내세워 증명한다는 뜻이다.
어째서인지 글을 쓸 때 자주 쓰게 되지 않는 낯선 단어다.
내 글이 감정 표현 위주여서 이런 이성적인 단어는 등장하기 어려워서일까?
유의어 = 실증/논증/증명
작문)
- 면접장의 분위기는 엄중했다. 자리에 앉은 나는 면접자의 질문에 너무 오래 고심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내가 이 회사의 적절한 인재임을 입증하기 위해 애썼다.
진귀하다/망각하다/미망
진귀하다는 보배롭고 보기 드물게 귀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를 읽으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마주한 것처럼 가슴이 뛰고 설렌다.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발견한 것처럼 황홀한 기분마저 든다.
그런 소중하고 귀한 마음을 표현할 때 가장 적절한 단어인데, 왜 이제까지 잘 쓰지 않았을까.
유의어 = 귀하다/귀중하다/보배롭다/소중하다
망각하다는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이 우아한 표현을 최근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어서 반성한다.
미망은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다는 뜻이다.
'미망인' 할 때의 미망과는 한자와 뜻이 전혀 다른데, 이 단어를 보자마자 처연한 여자 미망인이 떠올랐다.
지금부터는 혼란스러워하는 느낌의 표현까지 알아두어야겠다.
작문)
- 오래전 광산이었던 동굴에 들어가는 것은 진귀한 경험이었다. 들어가는 순간 동굴 밖은 환한 대낮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밖에 없는 진하고 두터운 어둠이 펼쳐졌다. 방향 표지판이 없었다면 나는 미망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언이 있었다/표상/진배없다
전언은 말을 전함, 또는 그 말을 가리킨다.
알아두면 유용하고 경제적인 표현이 될 것 같다.
유의어 : 메시지/탁언/전설
표상은 본받을 만한 대상, 또는 대표로 삼을 만큼 상징적인 것을 뜻한다.
더불어 외부에서 온 자극이 마음속에 나타나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감각적, 문학적으로)
낯익은 단어지만 그 뜻을 대강 알았을 뿐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이번에 다시 알아둔다.
유의어 : 심벌/상징/심상
진배없다는 다름없다와 같은 표현이다.
작문)
- 저녁 시간에 아이들을 뛰게 하지 말라는 경비실 아저씨의 전언이 있었다. 코로나 이슈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고 바깥출입까지 자제하며 집에 있어야 하는 이 시기에, 집에서 뛰지 말라는 건 아이들에게 형벌이나 진배없었다. 나는 이 삼엄한 시기 속에서도 이웃 간 예절을 잘 지키는 올바른 어린이의 표상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왜 뛰지 말아야 하는지 알려주기로 했다.
그밖에 낚시한 단어들
검토하다 : 어떤 사실이나 내용을 분석하여 따지다.
허망하다 : 거짓되고 망령되다/어이없고 허무하다.
=궤탄하다/맹랑하다
초유의 사태 : 처음으로 벌어진 일
평정심 : 감정 기복이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
전념 :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씀
=전심/전사/집일
고역 : 몹시 힘들고 고되어 견디기 어려운 일
상응 : 서로 응하거나 어울림
=호응/대응/조응/상당/적합
기맥 : 서로 통할 수 있는 낌새나 분위기
허투루 :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마구/함부로
농지거리 : 점잖지 않게 함부로 하는 장난이나 농담을 낮잡아 이르는 말
고루하다 : 낡은 관습이나 습관에 젖어 고집이 세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완고하다
집결 : 한 군데로 모이거나 모여 뭉침
수교 :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교제를 맺음
폄훼 : 남을 깎아내려 헐뜯음
일천하다 : 시작한 뒤로 날짜가 얼마 되지 아니하다/과거나 백일장 따위에서 첫 번째로 글을 바치다.
보태다 : 보충하다/추가하다/메우다/채우다/합하다
승선 : 배를 탐
=등선/상선/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