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에 까무잡잡한 피부에 헐벗은 청년이 바닥에 천을 깔고
그 위에 이국적인 사진들을 펼쳐놓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자신이 오토바이로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이며
이번에는 브라질로 떠나기 위해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있으니
부디 여행 중에 자기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구매하시어 경비를 보태달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호기롭기는 하지만 그 청년의 마케팅은 어딘가 잘못되었다.
가난한 여행자에 대한 연민을 내세우기에는
그 자유로움과 호방함, 엄청난 여행 경험들 때문에
가로수길의 사람들보다 그 청년이 더 부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연 마음이 가난한 가로수길 사람들이 그 청년에게 도움을 주게 될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마케팅으로 한다는 것은,
그 청년이 아직도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해야 하는 이유는 될 것 같다.
부모님은 중국 장가계로 관광을 다녀왔다.
생에 두 번째로 해외여행을, 그것도 대륙의 어마어마한 자연경관을 보고 온 아빠는
넘실넘실한 흥분으로 비틀대면서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 꼭 장가계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아빠에게 사람은 이제 두 부류로 나뉘게 된 것이다.
장가계에 다녀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혹은 여행으로 인생의 흥분을 맛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요새 해외여행은 얼마나 큰 권력이 되는지 모른다.
집과 차, 명품 로고가 함께 부를 과시하는 중요한 조건들 중 하나가 되었다.
여행은 정말로 많은 것을 상징할 수 있는데,
해외여행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음은 물론이고, 시간적 여유와 젊음,
그리고 대담성까지도 과시할 수가 있어 여러모로 쏠쏠한 자랑거리다.
아빠는 장가계 관광객의 절반이 한국인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아직 가보지 못한 무수한 여행지가 있다.
소금사막이라든가, 그랜드 캐년, 알프스 산맥, 세계적 폭포들...
거기에 가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해서 나의 인생은 공허한 인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일상을 새롭게 관광할 수 있는 호기심과 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엄청난 자극을 느낄 수 있다.
린위탕의 친구는 앞마당에 난 꽃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여행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눈'의 문제다.
조금 철학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세계적인 관광 명소를 보지 못 했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부족해지는 것도 아니고,
세계를 다 돌아다녔다고 해서 인생의 의미를 찾은 것도 아니다.
결국 여행은 돌고 돌아 마음에 있다.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마음으로 쓰다듬어 보는 것 역시
소중한 여행코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