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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소호 Nov 29. 2023

베로니카 할머니와 아놀드

"아놀드, 서둘러. 우리 빨리 나가야 해. 지금 몇 시지? 이러다 늦겠어. 여기서 나가야 해."

베로니카 할머니가 휠체어에 앉아서 아놀드를 재촉한다. 아놀드, 아니 기베어 씨는 늦은 점심을 혼자 고 계셨다.

"아놀드, 밥 그만 먹고, 지금 나가야 해. 지금 딱 나가야  시간이야. 안 그러면 늦어."

그러자 과묵한 기베어 씨가 묵묵히 밥을 드시다가 한마디 하신다.

"난 아놀드가 아니야. 귄터야."

귄터 기베어 씨는 베로니카 할머니의 옆 방 이웃이었다. 베로니카 할머니는 잠깐 멈칫했지만, 아놀드가 왜 귄터인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베로니카 할머니는 아주 심한 치매를 앓고 있다. 너무 불안해서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항상 시간에 기듯이 몇 시냐고 물어보고, 기차가 곧 떠난다고 빨리 가야 한다며 걱정한다.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남자면 그는 아놀드가 되고, 여자면 바바라가 된다. 그래서 난 늘 베로니카 할머니에게는 바바라이다.

"바바라, 어디가? 우리 어디로 가야 해? 난 이제 모르겠어."

"난 어디 안 가요. 옆에 있잖아요."


아무리 해도 베로니카 할머니를 안심시켜 줄 대답은 없었다. 대화를 하는 듯해도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다. 베로니카 할머니가 정확하게 아는 한 가지는 여기가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마워."

한 번은 베로니카 할머니가 고맙다고 했다. 빼빼 마른 은색 단발머리의 베로니카 할머니가 이쁘게 올라간 속눈썹을 하고 내 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딱 한 번 뿐이었지만, 고맙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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