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로니카 할머니의 아놀드가 나타났다.
마치 전설 속 인물이 실제로 나타난 것처럼 아놀드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족 방문은 늘상 있는 일이었는데도, 아놀드의 등장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것만 같은 사건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남달랐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베로니카 할머니는 쉬지 않고 아놀드와 이야기한다. 누구라도 상관없이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남자면 그는 아놀드가 된다. 심지어 여자라도 짧은 머리를 하고 있으면 아놀드가 틀림없었다. 바바라와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 여자가 지나가면 늘 불러 세우면서, " 바바라, 잠깐만 이리로 와바. 지금 몇 시지? 이제 가봐야 하는데. 너무 늦겠어."와 같은 말을 반복하곤 한다.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도대체 아놀드가 누구예요?"라고 물었었다.
아놀드는 베로니카의 남편이다. 그는 베로니카 할머니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건장해 보였다. 눈썹도 호랑이 눈썹 같고 눈빛도 부리부리 했다. 아놀드 할아버지는 아기를 안고 있는 손녀딸과 함께 이곳에 방문했다. 딸 바바라도 함께였다. 그녀는 한눈에 바바라였다. 그만큼 엄마인 베로니카 할머니를 많이 닮아있었다. 단란하고 건강한 가족이었다. 베로니카 할머니를 보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반전이었다.
매일 애타게 찾던 아놀드와 바바라가 왔는데도 베로니카 할머니는 덤덤했다. 집에 가자고 마구 졸라댈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베로니카 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진짜 아놀드를 아놀드로 알아보기는 하는 걸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날 방문 이후 베로니카 할머니는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 진정제를 먹게 된 것 같다. 아마도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었나 보다. 이제 베로니카 할머니는 스스로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아놀드와 바바라도 많이 찾지 않는다. 위험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고, 나와 동료들은 한숨 돌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