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비가 내리고 있다.
일주일 내내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일 때면 진저리를 치곤 했었다. 나는 비 오는 날씨를 싫어한다. 비 오는 게 좋다는 사람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비 오는 소리는 불안하기만 하다. 어릴 적엔 조립식 집에서 살았고, 자취할 때는 옥탑방에서 살았다. 어느 곳도 비 오는 소리를 낭만적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철제 지붕에 부서지듯 내리는 장맛비는 벌거벗은 느낌으로 전전긍긍하게 하는 불쾌한 소리였다.
그래서 늘 비 오는 날은 의심의 여지없이 내 편이 아니었는데, 오늘 밤 내리는 빗소리는 이상하게 포근하기까지 하다. 비가 자근자근 내리고 있다. 마음의 갑갑증이 순간 빗소리에 반해 한 숨, 심호흡으로 풀어진다. 빗소리를 귀로 쫒다 보니 숨도 고르고 차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