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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Oct 26. 2021

가족사진

오늘 할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으셨다.

자세한 건 이번 주 주말에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의사의 소견으로는 다른 장기까지 전의가 의심되는 심각한 상태임이 분명하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설명하는 내내 한 문장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 울먹이는 소리 끝에 엄마가 한 말은 "가족사진 찍자"였다.


난 그러자고 대답했고,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그제야 난 울 수 있었다. 엄마랑 통화할 땐 '생각 정리할 시간을 벌은 거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며 의연한 척했지만, 사실 전혀 아니었다. 가슴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무서웠다. 이 말을 쓰는 지금도 손이 떨릴 정도로 너무 불안하다. 책상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는데, 지금 난 그걸 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 이제 할아버지와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끝을 모르는 채로 달리는 삶이, 그 망각이 신의 배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몇십 년을 보고 품에서 자란 시간조차 짧게 느껴지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몇 달의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짧은 시간인 걸까. 우리가 가족사진을 찍고, 할아버지가 떠난 후에 그걸 보며 추억하는 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지금 당장 며칠을 몇 달을 할아버지와 내내 보내면 과연 그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마 남은 모든 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낼 것이다. 최선을 다해 눈물을 감추고, 최선을 다해 웃어 보일 것이다. 조금이나마 할아버지의 흔적을 이 세상에, 또 우리의 흔적을 할아버지에 가슴에 남기려 노력할 것이다. 부디 그 남은 시간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길. 마지막으로 온 마음을 다해 바라본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끝까지 내내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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