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거절이 두렵다고 허세를 장착하지는 말것

고백할 때 두려운 첫 번 째는 두어 말 할 것도 없이 거절일 테다. 그 다음으로 두려운 건  구겨진 자존심, 마지막으로 거절의 상처를 끌어안고 괴로워하는 나. 하지만 세 가지 모두 경중을 논할 수 없을 만큼 당사자에게는 모두 치명적인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상처 받지 않으면서도 심리적 손해를 보지 않고 고백하는 법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상대가 내 마음을 받아주는 것 말고는 이 고통들로부터 피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싶다. 연애를 지속하는 것만큼이나 고백이 쉬운 일이 아닌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다.     


물론 거절이 슬프고 가슴 아픈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건 내 능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대의 의지에 달린 것인 만큼 거절의 이유를 자신의 조건이나 부족함에서 찾으면 곤란하다. 그저 나와 그 사람의 애정 핀트가 맞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거절을 마치 자신의 존재 혹은 자존심에 대한 훼손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 자기 방어력이 유난히 강한 사람들이다. 자기 방어란 쉽게 말하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인데 이것은 사람마다, 성격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겠지만 적어도 오답은 있다. 그리고 고백에 있어 오답, 즉 잘못된 자기 방어는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 번 째, 거절당할 상황 자체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경우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확실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는다. 즉 상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분명한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절대 고백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고백에 성공할 확률은 당연히 높지만 반대로 오랫동안 짝사랑만 앓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다.

오랫동안 짝사랑을 시름시름 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거절당해 자존심이 상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뭐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할 말은 없지만 주변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 싶다. 고백의 타이밍을 놓치고 다른 사람 손을 잡고 걸어가는 짝녀/짝남의 등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가슴 쥐어뜯는 안타까운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면 말이다.           


두 번째, 허세로 자기 방어를 삼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하고 세다는 것을 주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하다. 고백을 할 때 쓰는 언어부터도 빈정이 팍, 상한다. 이를 테면 “내가 널 좋아해.”도 아니고 “너 나 좋아해?”라거나, “너를 더 알고 싶어.”도 아니라 “나 어떻게 생각해?”와 같은 식 말이다. 자신이 상처 받을 것을 대비해서 한다는 말이 기껏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슬쩍 떠본다. 그러나 고백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알리기 위해서 하는 거라는 걸 몰라서 이러는 건지!      

게다가 고백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이 되면 먼저 선수를 친다. 당황함을 숨기기 위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센 척을 하는 것이다. “야! 농담이야, 농담.”하며 손사래를 치며 상대방을 급 민망하게 하거나, 심한 경우 상대방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님 말고.”를 내뱉으며 세상 쿨 한 척한다. 아무리 부처님 마음을 가진 사람도 고백이랍시고 듣는 말이 “너 나 좋아해? 아님 말고.” “우리 사귈래? 아님 말고.”와 같은 식이라면 어느 누가 이런 고백을 받고서 좋아할까? 좋아했다가도 싫어질 각이다.           

 허세는 약한 부분을 감추기 위한 가장 못난 자기 방어 기제 중 하나다. 허세는 말의 뜻 그대로 완전하지 못하고 비어 있는 까닭에 누가 봐도 센 척이라는 걸 알아챈다. 결국 내 자존심 때문에, 내가 상처 받는 건 죽어도 싫어서 허세로만 가득 찬 고백을 했을 때 가장 많이 손해 보는 건 자신이라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혼자가 되어서야 알게 될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달아서 때 늦은 고백도, 후회도 소용없을 만큼의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후에 말이다.      



고백과 허세는 상극의 관계이다. 고백만큼 진실되어야 하고 솔직해야 하는 건 없다. 고백은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 것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진심을 전달하는 행위다. 거절이 두려워서, 나의 약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상대방이 어떤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님 말고.”라고 허세를 부리는 건 마치 ‘혹시나 내가 널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마!’라고 빈정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고백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모순이다. 

약한 모습을 들키기 싫다면, 어떤 거절에도 상처 받고 싶지 않다면 정말로 세져라! 혼자 있어도 절대 외롭지 않고, 24시간이 모자라, 무인도에서 과로사할 만큼 세져라! 이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센 척은 그만 버리고, 자신을 숨기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라. 나는 너로 인해 이만큼 기쁘고, 또 이만큼 슬퍼하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해라.                                 


*이 글은 네이버 <연애&결혼>판에도 게재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이 심고, 아이가 캐고, 엄마가 만드는 봄의 보양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