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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한다는 것에 대하여

시골에 살면서 묶어 놓고 개를 기른 지 3년째다. 이렇게 말하면 강형욱 씨한테 등짝 후려쳐 맞을 각이라고 생각들 하겠지만 가슴 쓸어내리셔도 된다고 먼저 말하고 싶다.     


사람에게는 반가움을 표현할 손이 있다면 강아지에겐 혓바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손을 내밀고 개는 그 손을 핥으며 인사한다. 그런데 사실 이놈은 손보다 얼굴을 더 좋아한다. 아마도 자신이 보여주는 환대에 비하면 인간의 손 따위는 매우 공평치 못한 처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보다 공평한 관계를 위해 손대신 얼굴을 더 많이 내민다. 혓바닥으로 세수당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병균 옮아봐야 정신 차리지.”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어느 포인트에서 병균이 내 몸에 침투하는지 아직까지 경험한 바가 없다.  

    


5년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 아저씨는 도견장에서 죽을 날을 받아 놓았던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눈이 너무 슬퍼 보인 덕분에 살아남은 개는 행복이란 이름을 얻고 동네 주민의 사랑은 다 받으며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이는 동네에서 까진 놈으로 유명한 수캐와 사랑을 나누었고 석 달이 채 못 돼서 새끼를 낳았다. 행복이의 보호자였던 아저씨는 행복이 새끼까지 보호할 여유는 없다며 행복이와 백속의 새끼를 다시 도견장에 보내려고 하셨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데려오셨나. 아저씨의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설마 정말로 그렇게 하실까 걱정이 되어 낳으면 내가 한 마리 가져가겠다 말씀드렸다. 그렇게 4마리는 무사하테 태어났고 강아지 중 한 마리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고, 다행히 다른 강아지도 좋은 곳으로 입양됐다.


새끼일 때는 위험 요소가 많아 집안에서 길렀지만, 하루에 10cm씩 자라는 이 놈을 계속 집안에서 기르자니 서로 못할 짓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밖에서 기르는 것이 맞는 것 같아 내놓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울타리가 없는 집인 탓에 풀어놓고 기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풀어놓기엔 내놓은 망나니 자식처럼 온 동네 쑤시고 다니는 꼴을 볼 수가 없던 나는 결국 목줄을 선택했다. 울타리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할 수 있지만 데 집 전체를 막을 울타리는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개들은 생각보다 구멍을 잘 찾기 때문에 어지간히 단속을 하지 않고는 울타리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여차 싶으면 높이 뛰는 건 일도 아니라 사방이 막힌 철장을 설치해서 그 안에서 키우자니 그건 마치 감옥이고, 개는 잠재적 범죄자며, 나는 감시하는 교도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영 내키지가 않았다.     



생명체를 보호하는 방식은 보호자와 피보호자와 서로 적당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호자는 보호자대로 신경 쓸 일 천지고 피보호자는 과도한 보호에 불만스럽다. 결국 서로 불만스럽지 않은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개들의 언어를 알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개들은 귀소 본능이 강해서 집을 나가도, 헤매도 결국은 집으로 돌아온다고는 하지만, 기다려도 영영 못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개장수가 잡아가는 경우와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다. 이 두 가지는 시골에서 너무나 흔한 일이고, 책임지는 사람도,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다.  절대적 위험으로부터 지킬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보편적 보호자라고 생각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달랐다. 결국 선택은 내 몫이었는데 나의 마음을 굳히게 만든 건 수의사 선생님의 이 한마디였다.      


“자유롭게 키우는 것도 좋지만 오래오래 같이 사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때때로 지옥같이 삶이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보며 살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그 소망이 누군가를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음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구속이란 단어를 좋게 포장하기 위해 보호라는 말을 갖다 붙이며 의미를 변질시키고 악용하는 사람들은 쓸데없이 법이 보호해줄 필요가 없다.) 

여전히 나는 저 개를 묶어 놓고 키우는 게 맞는 건지 자유롭게 풀어주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을 끝내지 못한 채로 목줄을 유지하고 있다. 오분을 나갔다 들어와도, 하루를 넘겨 와도 마치 몇 년 만에 본 것처럼 목줄이 끊어져라 뛰어오며 반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인간과 그 인간이 저지르는 폭력과 절대적 약자가 마주하지 않도록 저 개를 보호해 주어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다. 그 마음이 이기적이라 비난하면 기꺼이 감수할 테니 이 비루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개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말: 혹시나 이 글을 읽고 학대를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덧붙이는데, 묶여 있는 시간을 최소로 하기 위해 허접하지만 울타리도 만들고 매일 산책도 한 시간씩 하는데.... 발바닥도 안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도 이 자식 눈에는 대궐만 하게 보이는지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목줄이 풀리면 실실 제 눈치를 보고는 잽싸게 달려나 갑니다. “엄마가 백날 막아봐, 내가 못 찾나.” 하는 표정으로 메롱하고 달려갑니다. 물론 정말로 메롱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제 얼굴을 흠칫 보고는 흥분한 혓바닥을 내밀며 신나게 달려가는 그 모습은 메롱 말고는 갖다 붙일 게 없는 표정입니다. 게다가 이놈은 집에 그냥은 오지 않아 찾으러 갈 때는 삼겹살을 구워 갑니다. 혹시나 멀리 가다가 돌아올까 싶어서입니다. 암튼 혹시나 오해나 걱정하시는 분들을 위해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출신: 애미는 누군지 알아도 애비는 모른다는 전설의 개족보 출신. 

특징: 오지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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