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책의 힘에 대하여

-요망한 것 같으니라고!

최근 나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모임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만 만나고 헤어지는 모임.


이 모임의 특징.

1. 자기소개나 통성명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먼저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는다.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서 물어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2. 이름을 물어볼 시간이 없으니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사실 어디 사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데 이름 다음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은 어디 사시는지....?인데 이 어색함을 느낄 틈이 없다.

3. 이름을 모르니, 지연, 학연, 인연 등의 핑계를 만들어 개인적 친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꼼수를 부릴 수 없다.

4. 개인 정보 캘 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정시에 도착해서 정시에 끝나면 약속이나 한 듯 바람같이 칼같이 흩어진다.

5. 서로가 모르는 탓에 모임의 꽃인 뒷담화 형성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분위기가 이 모임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라고 느껴진다.

6. 결국 내 앞, 옆, 그 옆사람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이 모임에 참여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다 모르기에 아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

7. 개인의 조건에 관심이 없고 단지 개인의 생각에만 관심이 있다.

8.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되 강요하지 않으며, 강요하지 않되 다른 사람의 말에 경청해주는 매너는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

9. 말은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지만 타인의 말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 하지만 듣고 있다 보면 왠지 할 말이 생겨서 저요!라고 외치고 싶게 만든다.

10.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의 생각에 동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은 오늘 처음 본 사람이라는 것에 새삼 경의로움을 느낀다.

11. 나랑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전혀 서운할 게 없다. 그 사람과 나는 어떠한 관계도 없고,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모르는 사람에게 느끼는 서운한 감정보다 더 나쁜 건, 단지 친하다는 이유로 지극히 개인적인 타인의 감정에 동의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12책으로, 오로지 책에 대한 뒷담화로 두 시간이 모자란다. 뒷담화의 양성화로는 아주 좋은 사례로 보고될 만하다.

13. 책 한 권으로 사람을 보고, 사회를 보고, 세상을 본다.

14.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내가 했던 말들을 곱씹으며 혹시 쓸모없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누워서 가만히 있으면 쪽팔림이 울컥 밀려온다.      



기껏해야 만원 조금 넘는 책 주제에 일면식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이게 만들고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요망한 것. 이것이 책의 힘이다.   

작가의 이전글 저장한다는 것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