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이야기 3. 반송선 개통과 석대천 유지수 확보
공무원 하면서 한자리를 가장 오랫동안 맡은 곳이 경제정책과장이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초빙연구원(Visiting Scholar) 파견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투자유치과장을 맡았다. 그동안 지역경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유치를 위해 새로운 장을 열어보겠다는 마음으로 1주일에 한 번은 투자유치 출장을 간다는 각오했다.
특히 부산, 진해 경제자유구역청이 태동하던 시기라 외국인 투자기업 및 외국 연구기관의 유치, 젊은 층의 일자리를 위한 컨택센터 유치 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로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 및 지사 외국인투자지역에 몇 개의 외국인 투자 기업 유치와 더불어 대기업, 시중은행의 컨택센터를 부산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컨택센터 유치에 뜻을 모은 부산의 모기업은 업계의 중심 역할을 하고, 나중에 전국컨택센터 협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일본까지 날아가 전국 최초로 제대로 된 한상대회를 유치했다. 독일과 미국을 다니면서 익힌 글로벌 경험들이 좋은 성과를 가져왔고 보람도 있었다.
그것도 잠시, 2005년 7월 갑작스럽게 경제정책과장으로 갔다.
부산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다한 시기이기도 하고, 지나고 보면 능력의 한계를 느낀 것 같다. 약 3년간의 근무 기간에 참으로 수많은 일들이 쉼 없이 스쳐 갔다.
먼저, 부산시 산하의 경제 관련 공공기관을 통폐합하겠다는 시장님의 공약을 이행하는 일이다. 각 기관이 중앙정부의 지원에 설립되어 통합이 쉽지 않았으나, 전국 최초로 경제 관련 기관을 통합한 「부산경제진흥원」을 설립했다. 이 이후로 시장이 바뀔 때 새로운 공공기관이 설립되었다. 지방정부로는 경제 관련 공공기관이 많은 편이라는 생각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이전 금융기관이 문현 금융단지에 들어오게 되었다. 기존 금융기관이 소유하고 있던 부지를 회수하여 이전 금융기관에 분할만 해 주면, 각 금융기관이 독자적으로 건물을 지으면 되고 부산시는 지원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여의도에 있는 금융기관들이 대체로 5층 내외라 부산의 문현 금융단지에 10층 이하의 규모로 건물을 짓게 되면 금융단지의 기능을 하면서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전 금융기관들의 의견과 사정이 다르기에 통합청사 건립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도 허남식 시장님의 의지와 김정훈 남구 국회의원의 지원이 뒷받침되어, 이전 금융기관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 통합청사인 「부산국제금융센터(Busan International Finance Center)」 건립을 추진했다. 막바지에 이전 금융기관 노조들의 반발로 무산될 우려가 있었으나, 그 당시 경제진흥실장님의 지혜로 반발을 무마했다.
더불어 부산시에서는 지금은 국제금융진흥원이 된 「국제금융지원센터」를 설립하여 금융산업 육성의 첫발을 내디뎠다. ‘무슨 일이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거’란 걸 깨우쳐 준 업무였다.
IMF 외환 위기 이후에 대형마트들이 우후죽순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나는 기존의 전통시장이 큰 위기를 맞이했고, 규제보다는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지원했다.
전통시장의 시설 현대화와 경영의 노하우를 키우는 데 전력을 했다. 특화 전문시장제 도입, 전통시장 벤처상인 육성, 가격할인 행사, 전통시장 상품권 발행, 시장상인 경영대학, 국내외 우수시장 벤치마킹 등 전통시장 상인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해운대 지역에서는 해운대 좌동재래시장, 반송큰시장이 큰 변화를 시도한 시기였다. 지금도 좌동재래시장의 상인회장은 그때의 열정을 떠올린다.
무사히 소임을 다하고 영전하여 부산교통공사 기획본부장으로 갔다.
재직할 당시에 신평에서 다대포까지의 1호선 4단계 노선 착공이 있었고, 4호선 반송선의 개통이 있었다.
반송선의 개통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완전 자동화 무인 경전철로 건설된 노선이라 기관사가 없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기관사 없는 노선이 생긴 것이다. 반송선 개통에 따른 인력 수급계획을 마련하면서 기존 노선의 인력 재배치와 구조조정을 했다. 강력 노조로 일컬어지는 지하철 노조는 무인 운전 방식의 도입을 반대하며 파업했다.
약 1주일의 파업 후 노사가 합의를 이루어 기관사 없이 반송선이 개통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무인 경전철이 운행되었다. 2024년 지하철 노조의 파업 예고 시에 다른 노선은 감축 운행을 계획하였으나, 4호선 반송선은 정상 운행됨을 강조했다.
개통에 앞서 교통공사 사장님과 석대, 반송을 둘러보면서 주변 정비와 아울러 이 지역이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귀중한 땅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를 가졌다. 제2 센텀산업단지 조성은 우연이 아니다.
공무원 퇴직 후 부산환경공단 이사장으로 재직 시에 동부 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반송천 상부로 펌프질하여 하천 유지수로 제공했다. 동부하수처리장은 당초에 올림픽공원 지하에 건설하기로 했으나, 센텀산업단지를 추진하면서 지금의 장소로 이전해서 건설되었다. 당시에 반여, 반송 지역 주민의 반대가 있었으나, 양측이 지혜를 잘 모았다.
동부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석대천 유지수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그때 나왔고, 지역의 원로분들이 큰 역할을 했다. 지역 문제의 갈등 해결에는 신망 있는 원로님의 지혜는 큰 기여를 한다.
석대천은 센텀2 산업단지가 조성되면 중요한 환경적 자원이 될 것이다. 지금 추진하는 수영하수처리장의 현대화에 동부하수처리장을 통합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방류수의 수량을 늘려 반송천 최상류로 올려 하천의 건천화를 원천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그러면 계절에 무관하게 늘 맑은 물이 흐르는 석대천이 될 것이다.
또한 매립이 끝난 석대 쓰레기매립장의 사후 환경 관리를 부산환경공단이 맡게 되었다. 매립 쓰레기에서 나오는 배출가스 및 침출수를 점검, 관리했다.
선배 공무원들이 석대 매립장을 조성하고 관리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피해도 주었고,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분들의 열정이 석대를 넘어 생곡까지 부산 시민의 쓰레기처리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은 매립지 위에 조성되고 있는 해운대수목원을 잘 가꾸어 해운대의 보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 주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