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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광효 Aug 03. 2023

64. 공무원 외벌이 삼형제

해운대 주간 일기 64 – 공무원 외벌이 삼형제


* 오늘 신광조 공무원 선배의 페북에 올라온 글을 복사해서 올립니다.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을 하며 외벌이로 산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정직하고 청렴하게 산다는 것은 힘이 듭니다. 부산 나아가 한국의 대표 공무원이 제가 존경하는  김효영 선배님입니다. 

아래는 외벌이 공무원의 애환을 쓴 글입니다. 공무원 자제를 둔 부모님께서는 결혼시킬 때 꼭 맞벌이할 수 있는 짝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 외벌이 삼형제 /김효영,  2021.08.03


1. 어찌 보면 참 애달픈 인생끼리 만났다. 또 어찌 보면 최소한 90%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끼리 만난 거다. 외벌이 삼형제 이야기다. 


2. 어제, 삼대 십 년 만에 외출을 했다. 은둔이 잘 맞는 신발처럼 편해진 나로서는 요 몇 년 사이에 누가 불러내는 것이 달갑지 않을 정도로 집콕맨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예외가 있다. 한 친구는 공기업 CEO(A)이고 또 한 친구는 현직 공무원(B)이다. 둘 다 후배 공무원이다. 이 친구들에게서 얼굴 함 보자는 연락이 오면 열 일 제쳐 놓고 나갈 채비를 한다. 


3. 오랜만에 나와 보는 서면의 밤은 낯이 설 정도다. **도서 앞 소형 분수대가 앙증맞다. 솟아오르는 분수와 오뉴월 불볕더위와의 궁합이 찰지다. 나는 늘 약속 시간에 딱 맞추어 가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분수대 옆에서 시간 좀 때우다가 시간 맞추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4. A는 얼굴 본 지가 한 4, 5개월이 되었고 B는 2년 만에 본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 사람의 공통점이 불거져 나왔다. 모두 외벌이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A는 아직도 2000년産 소나타를 타고 다닌다. 3년 전에 한 번 타볼 기회가 있었는데 차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아직 바꿀 생각이 없단다. 


5. A의 생가는 000, 부모님 떠나보내던 날 두 차례 문상을 간 적이 있다. 시골집은 대개 널찍한데 A의 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집만 놓고 본다면 부잣집 아들이라 하긴 어렵다. 그런데 지금도 허름한 아파트 한 채가 A가 가진 재산의 전부다. 그 털털이 소나타 하고. 저축? 해 놓은 것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있다 해봤자 얼마나 될까?  


6. A의 얼굴은 전형적인 귀공자다. 얼굴만 보아서는 그의 살림살이가 겨우 밥 먹고 살 정도라는 연상이 안 된다. 외벌이로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으니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으니 그런대로 살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7. B는 누가 보아도 공무원 아니면 교사로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얼굴이 그의 이력서와 다름없다. 고시 거쳐 부산시 입성 후 한 7년가량은 그야말로 구청에서만 돌다시피 했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진도가 엄청 느렸다. 그러다가 도움닫기 한 번 하더니 동기들을 앞질러 지금은 가장 앞서 있다. 


8. 그런데 B도 외벌이다. 공무원이 외벌이면 뻔하다. 고시 출신이라 해도 외벌이의 고단함이 비껴가지는 않는다. B는 자기 말로 그랬다. 살림이 어찌 되는 건지 모르고 살았다고. 공무원 생활 30년 가까이 되도록 전세살이만 하다가 최근에 2억이 겨우 넘는 30년 된 아파트 한 채를 대출 안고 장만했단다. 그마저도 안주인이 알아서 장만했다는 것. 


9. A나 B나 공통점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었다는 점. 그에 더해 안주인 되는 분이 살림살이의 고단함을 표 내지 않았다면 외벌이라 해도 그럭저럭 버텨낼 만하다. 만약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입장이라면 외벌이로는 어림도 없다. 


10. 나의 경우는 악조건이 전부 다 존재했다. 게다가 四顧無親 같은 존재가 바로 나였다. 기댈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 나를 언덕이라 여기고 기대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별 수가 없었던 나는 외벌이의 고통을 무조건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공무원 아닌 다른 직업에는 눈길조차 안 주었다. 그 대신 공무원 하는 데 따른 불이익은 오롯이 감내해야 했다. 


11. 불이익의 핵심은 궁핍이었다. 공무원이라 하면 일단 세금 축내는 도둑 또는 철밥통이라 보는 사람의 눈에는 나의 이야기에 욕부터 할지 모르겠으나 욕하면 욕 듣겠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아내가 공장에 다니거나 새벽에 자갈치 시장에 나가 생선 고르는 작업을 하는 공무원 수두룩하다는 것만 말한다.  


12. 나의 경우 국장으로 승진하고 나서야 겨우 생계형 빚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내가 국장이 된 것은 행시 합격 후 24년 뒤의 일이었다. 그동안 줄곧 마이너스 인생이었다. 나의 소람도 일터에 나가 돈을 벌어와 살림에 보태지 않고 무얼 했느냐고? 남 일이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말라. 건강이 허락 안 해 못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 생계형 빚은 퇴직할 때 나오는 퇴직 수당으로 겨우 90% 정도 갚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절반 정도 대출 안고 퇴직하기 직전에 겨우 장만할 수 있었다. 쪼잔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외벌이의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13. 그러다 보니 운명에 관심이 생겼고 운명의 개척하는 방법도 연구했다. 그 결과 내가 스스로 개발한 《허주개운육조虛舟開運六條》 즉, 운명을 바꾸는 여섯 가지 방법 중 맨 끝 제6조는 “버티기, 끝까지 버티기”이다. (虛舟는 나의 號다)


*** 허주개운6조 ▷ 제1조 : 자기 운명을 알아라 / 제2조 : 마음을 바로 쓰라 / 제3조 : 인연을 함부로 맺지 말라 / 제4조 : 허물이 있으면 고쳐라 / 제5조 : 매사에 절제하라 / 제6조 : 그래도 안 되면 버텨라, 끝까지 버텨라! (못 버티면? ... 죽는다!)


14. ‘버티기’는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다 통용되는 최후의 비법이다. 가장 단순무식하고 무지막지한 방법이지만 이 방법을 이기는 악운은 없다. 버티기가 가능한 것은 시간 때문이다. 당장은 죽을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버티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변화가 생기고 변화가 생기다 보면 살길도 생긴다. 


15. 그런데 큰일 났다. 나이 탓인가. 이제는 버티는 힘도 팍팍 줄어든 것 같다. 하긴 버틸 일도 없다. 바보에게는 삶의 폭풍도 비껴간다는 데 그 때문인가? 아마 그럴 거다. 버티는 힘은 줄었어도 사는 것이 힘이 안 드는 것은 포부도 욕망도 놓아버린 노인에 대한 하늘의 배려 때문일까? 허허허... 외벌이 삼형제의 앞날에 축복이 있을진저!


(2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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