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은 요즘 훌라 춰요
"저는 웃지 않는 게 어려워요. 힘든 이야기를 쉽게 하지도 못하지만 하더라도 늘 웃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너무너무 힘들어 울면서도 저는 웃고 있더라고요."
태어나 처음으로 자의로 무대에 올라 공연을 마친 후 다음 수업에서 공연 소감을 나누며 어렵사리 내 이야기를 꺼내어본다. 하와이안 전통 춤인 훌라는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던 시절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의 전승양식처럼 하와이에서도 훌라를 전통을 지키는 방식으로 전승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 훌라로 넘어오며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부분들이 있지만 그중 미소를 띠고 머리에 꽃을 꽂은 채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이 가장 특징적이다. 그들의 전통문화가 식민지배하에 어떻게 분해되고 재조립되어 기존의 의도와는 다르게 재해석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훌라를 처음 접한 후 나는 늘 내가 잘 웃는 편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훌라를 1년 조금 넘게 배우는 동안 깨달은 점이 있다면 훌라는 허벅지와 미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치마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스쿼트 자세 기반으로 움직이는 훌라의 절반은 허벅지 근육이 책임진다. 나머지 절반은 미소가 지닌 에너지가 멱살 잡고 끌고 나간다. 현대 훌라로 넘어오며 하와이 노래는 물론이고 현대곡에 맞춰 훌라를 전하는 경우들이 생겼다. 자연을 예찬하고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가 많은 훌라 곡의 특성상 미소 기반의 표정 연기는 손 끝으로 전하는 언어에 더해 이야기의 전달력을 높이고 이해도를 올리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덕분에 훌라를 배우는 동안 환한 미소, 황홀한 미소, 성스러운 미소, 개구쟁이 미소, 자신감에 찬 미소 등 곡의 분위기와 가사에 맞는 미소를 연기하는 표정 연기도 함께 는다.
그래서일까. 평소에 웃음을 지을 일이 거의 없는 현대인들이 훌라를 하며 억지로라도 웃음을 짓다 보니 정말로 행복하게 웃고 있다는 여러 후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를 전하던 특성상, 현대의 복잡한 댄스 장르와는 다르게 훌라는 기본적인 동작이 겹치는 경우들이 많다. 하여 몇 곡쯤 배우면 특정 동작들은 금방 익숙해진다. 덕분에 춤 치고는 진입 장벽이 낮아 몸치들이 가득한 것 또한 이 집단의 특성이다. 태어나서 처음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모여서 동작 하나하나 배우기도 벅찬데 미소까지 챙기려니 사실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너무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족한 춤 실력을 감추기에 아름다운 미소는 너무나 강력한 무기였기에.
"00님, 웃는 표정 촬영은 이미 충분히 했어요. 너무 잘 웃으셔서 충분히 많이 찍었어요. 우리 무표정한 표정도 촬영해 보는 것은 어때요?"
스냅사진을 찍겠다고 나섰을 때 작가님이 뜻밖의 말을 건넨다. 훌라 세계관에 발을 들인 지 1년이 채 안되었을 때, 나는 나의 미소가 가진 힘을 믿었고 울다가도 웃으며 헤어지는 이 집단이 좋았다. 잘 웃는 사람이라 스냅 촬영도 전혀 걱정 없이 갔는데, 이게 웬걸. 웃지 않는 사진을 찍어보자니요. 웃지 않는 표정이라는 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뚝딱거리고 있는데 작가님이 조금 도움을 주신다. "그냥 평소에 일 할 때도 환하게 웃고 있진 않잖아요. 그런 자연스러운 표정이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저는 그런 자연스러운 순간의 모습도 촬영을 해 드리고 싶어요. 대부분의 자연스러운 순간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촬영 시간 내내 어두운 표정이라고 인식했던 내 평소 표정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끝무렵에 가니 정말로 무표정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화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런 표정이 없는 내 얼굴 주름과 근육을 받아들이는 것에 제법 익숙해졌다. 작가님의 솜씨가 좋아 내 보통의 얼굴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촬영 일주일 후, 나는 고등학교 때 이후로 두 번 다시 춤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깨고 무대에 올랐다.
나에게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있지만 무대에 오르니 입가가 벌벌 떨렸다. 내가 짓고 있는 것이 미소인지 근육 경련인지 모를 때쯤 나는 완벽하게 연습해 둔 동작을 그대로 틀려버렸다. 빵- 한 번 터지고 나니, 그제야 진짜 미소가 흘러나오고 춤 선도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이것 봐, 훌라는 미소가 이끄는 것이 맞다니까. 그러고 약 일주일 뒤, 수업시간. 공연 후기를 서로 나누며 나는 또 웃으면서 울었다.
삶에서 방향도 지향점도 잃고 방황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와 보니 그냥 나 자신으로 살아내면 될 것 같았다. 나와 닮은 사람이 참 없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 내 삶을 설계하고 그 길이 옳다고 믿었기에 나는 숱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 나는 늘 남을 설득해야 했다. 내가 가장 닮은 사람은 할머니였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할머니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녀와 닮은 내 모습들은 환영받지 못할 나쁜 특성이었고 절제해야만 하는 요소였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나와 닮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구태여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오롯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경험하자 비로소 자기 긍정이 가능해졌다. 약 5개월 동안 벌써 세 번의 공연에 참여한 나는 요즘 힘든 이야기를 할 때는 웃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