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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Jun 09. 2017

안녕, 재재

2017.06.07 우리의 모든 슬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안녕, 재재.

너의 편지를 받았어. 내가 먼저 네게 보내려했는데 결국 게으른 내가 부지런한 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네. 그래도 뭐 어때. 너에게 편지를 받아 기쁠뿐야.


너의 이야기를 읽으니 나도 생각할게 참 많아. 어른말야, 그거 정말 있는걸까? 나는 믿고싶지 않아. 우리의 나이든 모습, 성숙해진 모습이 '어른'이라는 이미지에 잘 부합할 수 있을까.


나는 아주 어릴때부터 빨리 늙고 싶었어. 빨리 늙으면 상처받지 않을 줄 알았거든. 내가 미숙한 나이라고 어른들이 말하니까 난 성숙한건 당연히 나이든 거라고 생각했던거지. 하지만 그게 아닌것같아.


어제는 엄마와 다퉜어. 나는 대략 스무살부터 집밖에서보다 집안에서 더 많은 투쟁을 해왔는데 말야. 나는 가족은 내 존재의 뿌리니 뺄 수 없다고 생각했나봐. 포기않고 부모와 싸우고, 그들을 설득하고, 쟁취했지.


부모입장에서 보면 그게 너무 이기적이었나봐. 너무 너만 옳다고 말하는거 아니냐. 나의 아픔과 힘듦은 네 눈엔 안보이냐. 엄마가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나를 위한다고 착각한 엄마의 희생이야. 내가 원하는건, 그러니까 나를 위한건 엄마가 희생하지 않는거야"라고


늦은시간까지 대화를 했어. 엄마가 한 번도 상상한 적없는, 밖으로 싸돈 내 인생에 대해서. 기존의 질서 밖을 배회한 나의 10년을, 그렇게 완성된 지금의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물었어. "왜 엄마는 그런걸 궁금해하지 않았어?"라고


엄마는 내게 나만의 특별한 인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었을거야. 쉬운길도 어렵게, 아프게 돌아가는 내가 그저 답답하고 속상했겠지. 나에게도 가치관이 있다고 상상해내지 못하는 엄마가 원망스럽진 않아. 다만, 조금 안타깝고 서글퍼지지.


돌아갈 수 없는 강은 없지만, 돌아가는 것에 대한 엄청난 공포는 존재하는 거겠지. 그렇게 이해하려는 순간엔 참 이해 못 할 일이 없는데.. 나는 여전히 같은 상황에서 또 화가나고 슬프고 그래. 그게 덜 성숙한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제는 조금씩 성숙해가는 모습을 즐겁게 관찰하는 나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 내게도 어떤 '어른'의 이미지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들어. 그래서 어른이 되려하지 말고 내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나씩 이루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지.


어제는 엄마였지만 오늘은 아빠였어. 아빠와는 좀 더 과격한 싸움을 했지. 피해의식 가득한 가부장과의 서로를 헐뜯는 싸움이었어. 그의 마음엔 나에대한 무시와 경멸이 있어보여서 너무 실망스러웠지. 이젠 아무런 기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들의 삶 속에 아픔이 없겠냐만은 그래도 그들이 세상 일에 안주하는 일을 묵인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아. 나는 더 고약하게 말했고 아버지는 나를 흡집내고 싶은 본색을 드러냈지. 거기서 싸움은 끝났어. 내 기대도, 설득하려던 의지도 포기하는 순간이었지.


나의 부모, 적어도 내가 상상했던 어른들은 아냐. 다만 저마다 너무 아픈 삶을 살아온, 그저 사람이겠지. 어디서도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먹는 나이에 기대어 대접을 좀 받고 싶은 너무나도 나약한 '사람'.


난 그래서 독립을 선택했어. 서로의 일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거야. 나는 제법 부모를 존경하는 편이거든. 어떤 면에서는 말야. 그래서 그렇게 믿어. 깊진않아도 잘 지낼거라고. 관계를 얕게 가져가자고 가족일지라도.


재재.

나는 자주 슬퍼. 다들 내게 따뜻하다고 말하지만 난 좀 오래전부터 사람을 만나는데 두려움이 있었거든. 그래서 마냥 따뜻해지기 무서워. 사람을 믿고 안믿고의 문제거든 여전히 내게 관계라는 것이. 사람이 뭘까. 사람은 다들 나처럼 슬프겠지? 근데 나는 왜 슬플까.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져서 깊이 못하겠어. 너는 어때? 너의 슬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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