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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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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Jul 10. 2017

안녕, 재재

우리가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

재재, 오늘 떠나는 날이네. 너의 여행 끝에서는 네가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지금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잘 다녀오라고 말할게. 잘 다녀와 재재.


얼마 전 너와의 대화에서 사실 많이 놀랐어. 캠프가 끝나던 날, 제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어떻게 너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으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서 세상을 대하는 방식. 특히 그 중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많이 닮아서 그랬구나. 나는 놀랐고, 안심했고, 기뻤어.


네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도 내가 남성에게 그렇게 편안해지는 일은 매우 드물거든. 기억나지? '왜 이렇게 편할까? 대체 왜 그럴까? 정말 알 수가 없어'라며 우리의 만남 내내 갸우뚱했던 나. 이상했거든 정말. 나는 왜이렇게 마음이 편안할까.


그날 이야기했지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상대와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이 되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대해왔고, 그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자꾸 내 안에서 찾아헤맸지.


관계를 맺는 와중에 문제를 발견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아내는 일은 한 편으로는 괜찮은 수행같았어. 그러나 늘 '나'라를 큰 벽을 넘어가는 느낌이었어. 쉴 만 하면, 벽이 나타났지. 벽 앞에서 나는 좌절도하고 넘어가려 애를 쓰기도 했어. 그렇게 문제의 원인과 해답을 찾아내는 과정은 고단하고 어려웠지. 보람도 별로 없고.


그런데 그러다가도 때때로 억울함같은 것들이 몰려와서 세상 탓, 남 탓을 하기도 해. 그럴 때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무서운 사람으로 돌변하지. 이 사회에서 받은 설움을 되갚아주듯이 말로 상대를 아프게 하는거야. 그래서 그럴 땐 혼자있어야만 해. 외로워도, 못견딜만큼 누군가 필요해도 혼자. 나는 누구도 아프게하지 않는 방법으로 살아야만 하거든. 그래야 나도 상처받지 않을거 같아서.

그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내게 정말 낯선 일이 일어난거야. 몇마디 나눠보지 못했던 너와 내가 그토록 편안한 자세로 아무 이야기를 아무런 불편함 없이 나눴다는 건,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 아마 솔직한 너의 이야기들이 나를 한없이 편안하게 만들어줬을거야. '재재에게는 이야기해도 되겠다' 이런 느낌을 받았으니까.


우리가 이성이 아닌 사람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는 것은 너무나 괜찮은 느낌이야.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혹여 상처받을까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든 알려주고 싶은 최상의 감정이야. 너는 알고 있을까. 아마 재재는 누구에게든 느껴봤을 것만 같아.


나는 재재가 사랑을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믿어. 스스럼없이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와 그게 옳다고 여기는 그 강한 믿음. 너의 방식은 타인에게 사랑을 알려주고, 그렇게 너에게 받은 사랑들은 더 멀리 퍼져나갈거야. 그러니 모든 일을 너의 방식으로 대하길 바라. 세상에 사랑을 알려줘. 그리고 나도 나의 방식을 고수할 수 있도록 기도해줘.


제주에 있을 때의 내 모습이 그리워. 말하지 않는 것이 주는 그 편안함. 말하지 않아도 날 괴롭히지 않는 사람들. 나에게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직장은 어디인지, 결혼은 했는지, 애인은 있는지 따위의 질문을 하지 않고 나를 보이는데로, 느껴지는데로 탐색하던 그들이, 그 순간들이 그리워.


그걸 이곳에서 다시 재현하고 싶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어. 그래서 곧 잊어버릴 것 같아. 어딘가에 대문짝만하게 써놓아야지. 관계에 대해서,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예의상하는 질문이 가진 그 무신경함에 대해서 어딘가에 써놓아야지. 그래야 잊지 않을 것 같아.

재재를 계속 만나면, 재재와 계속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으면 아마 조금씩 계속 상기하게 되겠지. 제주에 가서도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자. 우리가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 우리가 사는 방식을 서로 지지하며, 응원하며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제주에서 올 다음편지를 기대하며. 너의 여행에 행복을!


p.s.- 재재, 나도 언젠가 재재가 갈 평화센터에 가게 될거야. 나는 그들의 방식을 꼭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그들의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도 여전히 자주 해. 그들의 방식에 참여하고 그것에 감명을 받게 되면 '평화에 대한 나만의 수행법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설레. 재재가 먼저 경험해보고 꼭 이야기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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