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문을 열자마자 '무언가 잘못됐군' 싶었다.
친구들 책상 위에는 활짝 핀 꽃 화분이 있었다.
서로 화분을 구경하며 '네 꽃은 뭐야?'라고 묻는데
내 것은 그냥… 아빠가 심어준 '정체 모를 어떤 것'이었다.
완벽하게 핀 꽃들 사이에서 내 화분은 기가 죽었는지 아무것도 움트지 않았다.
대체 어떤 씨앗이 들었을까, 흙을 조금 걷어내볼까 하는 유혹이 손끝에 맴돌았지만
이제 막 나오려고 준비 중인 싹이라도 보이면 섣불렀던 내 손이 민망해질지도 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록색 머리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내 키가 자라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났다.
알았다. 아빠가 심어준 것은 콩이었다. 콩닥콩닥, 콩.
잭이 가져온 마법의 콩이 아니더라도 콩은 정말 빨리, 높이 자라는구나.
한동안 선생님의 회초리는 화분에 꽂혀 콩줄기의 지지대가 되었다.
무서운 회초리가 아닌 든든한 회초리가 되어.
사실 초등학생이 식물을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 꽃 화분들은 생각보다 빨리 시들었고,
청소할 때마다 창가 아래에 떨어진 바짝 마른 꽃잎을 쓰레받기에 담아 치워야 했다.
대신, 콩은 꽤 오랜 시간 초록이었다. 교실에서 오래 푸르렀고,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적게나마 수확을 하고서는 뿌리와 줄기를 걷어내 화단에 썩혔다.
내 화분만이 쓰레기봉투가 아니라 화단에서 이별한 특별한 화분이었다.
우리 동네 지천이 꽃인데 왜 아빠는 콩을 심어줬을까.
그래서 오늘 아빠한테 물었다. 그때 왜 콩이었어?
아빠가 말했다. 먹을 거라서 심어줬을걸?
아니야. 아빠는 오늘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콩을 심어준 거야.
무방비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문득- 아빠한테 별거 아닌 말 한 번 걸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