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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Dec 25. 2023

내 인생 첫 운동, 필라테스(2)

다정함이 체력에서 나온다고 누가 말했나

 1:1 수업 마지막 날. 강사님은 다음 주부터 6:1 수업을 들을 나를 걱정 가득한 눈으로 보셨다. 그동안 내 몸뚱이의 상태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신 분이니 그러는 것도 당연했다. 정작 나는 별생각 없었는데 말이다. 결국 수업이 끝나기 전 강사님은 나한테 “다음 주부터 6:1 수업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하고 물으셨다. 뭐 일단 해보고 안 되겠으면 그때 백스텝 해도 늦지 않으니, 나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해봐야죠!”

 핸드폰 앱을 이용해 6:1 수업을 예약했다. 수업을 예약한 사람이 3명 이상이어야 수업이 진행되고, 수업 12시간 전까지만 취소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기구의 종류는 리포머, 바렐, 체어, 캐딜락 이렇게 네 개였다. 무슨 4대 천왕도 아니고, 도전할 상대를 고르는데 괜히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그나마 1:1 수업에서 제일 많이 해본 리포머가 낫겠다 싶어 저녁 8시 수업을 예약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학원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었다. 1:1 수업할 때는 몰랐는데, 정수기 옆에 다양한 색상의 실리콘 팔찌들이 있었다. 6:1 수업은 회원별로 컨디션을 파악하기 어려우니, 사전에 통증이 있는 부위를 알리는 팔찌를 착용해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함인 듯했다. 나는 초보 회원임을 표시하는 노란색 팔찌를 착용하고 들어갔다. 근데 생각보다 6:1 수업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강사님이 다른 회원들의 자세를 봐주시는 동안 살짝 요령을 부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1:1 수업은 뺀질거릴 시간이 없으니. 하하.

배운 걸 이런 식으로 정리해놓기도 했었다(과거시제)

 재미있는 게, 수업을 듣다 보면 강사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오리 궁뎅이(허리는 들이밀고 엉덩이를 내미는 자세를 취하라는 말), 갈비뼈 닫고(그게 사람의 의지로 여닫을 수 있는 거였던가), 척추 하나씩 위로 쌓아주세요(그런 말을 무슨 레고 쌓으라는 것처럼 하시는지), 목 쭉 뽑아주시고(죽으라는 것…?), 어깨 끌어내리고(내 어깨는 자기주장이 강했다) 등등…. 그런데 문제는 수업마다 떨칠 수 없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왜… 돈 내고 얼차려 받는 기분이지? 나는 학교에서 단체 기합을 받아본 세대여서, 책상도 들고 의자도 들고 책상 위에서 무릎 꿇고 손도 들고 엎드려뻗쳐도 봤다. 지금은 없어져서 정말 다행인, 상당한 근력을 요구하는 종류의 체벌들이었는데, 자꾸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게… 맞아? 아리송한 기분으로 네 번의 6:1 수업을 다녔다. 일단은 조금 더 다녀봐야 할 것 같아서 6:1 수업 3개월을 추가로 결제했다. 아, 그리고 처음으로 인바디도 쟀다. 내 몸은 체중, 골격근량, 체지방량 모두 표준 이하인 표준체중 일반형(I자)이었다.


 필라테스를 배우다 보니 필라테스는 사람을 찢는다는 둥, 죄수들을 고문하려고 만든 거라는 둥, 필라테스협회에서 필라테스하다 죽은 사람들 얘기를 은폐하고 있다는 둥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일단 1번은 맞는데 2번은 틀리고 3번은 나도 궁금하다. 그중 2번에 대한 오해를 풀자면, 필라테스는 사실 고문이 아니라 재활을 위해 만든 운동이다. 필라테스의 창시자인 조셉 필라테스는 어린 시절부터 천식 때문에 몸이 허약했는데, 운동을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체조, 레슬링, 복싱 등을 배웠다. 그가 영국에서 지내던 중에 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적국인 독일 사람이었던 그는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만다. 비좁은 수용소에서 그는 철봉과 침대, 용수철 등을 활용해 운동기구를 만들어 강제 수용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신체를 단련했다고 한다. 대단도 하지. 어떻게 수용소에서 운동할 생각을. 심지어 다른 사람들까지 운동시킬 생각을. 역시 이런 무서운(?) 운동을 만든 사람 범상치 않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군인들을 훈련해 달라는 독일군의 요청을 거절하고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만약 그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필라테스라는 운동이 파시즘의 유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섭기도 하다.


 필라테스가 이렇게 갇혀 있던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다 보니 운동 초보들이 첫 운동으로 선택하기에도 괜찮은 편이다. 특히 사무직이 직업인 집순이들. 주말에 걸은 걸음 수가 300걸음도 채 안 될 때가 있는, 누가 수감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집과 회사에 가두고 죄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 기구 필라테스에서 내 기준으로 힘든 순서는 체어> 캐딜락> 리포머> 바렐이었는데, 물론 그날의 강사님이 누구냐에 따라 순서가 바뀌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순서는 바렐> 캐딜락> 리포머> 체어였다. 나는 바렐이 제일 좋았다. 왠지 발레리나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뭉쳐있던 근육과 뼈가 쭉쭉 펴지는 느낌이 들어 시원했다. 심지어 바렐이 너무 좋아서 집에 하나 두고 싶어서 검색도 해봤다. 학원에 있는 커다란 바렐은 아주 비쌌고, 그거보다 크기가 작은 모델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중고거래앱도 종종 들어가 보았지만 결국 놓아둘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포기했다. 하지만 언젠가 독립해서 내 집이 생기면 다시 고민해 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필라테스 두 달 차가 되었다. 한 달 뒤에 다시 잰 인바디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골격근량이 줄어 표준체중 허약형(C형)으로 변했다. 운동을 했는데 왜죠? 주변의 운동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제대로 안 먹고 운동을 해서 그렇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근 손실? 근데 이러면 그냥 운동 안 하고 덜 먹는 삶이 더 나았던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닭가슴살을 주문했다. 퍽퍽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원래 치킨도 닭가슴살만 먹는 사람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남동생의 사료 포대 같은 단백질 가루를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나는 그냥 살기 위해 운동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단 말이다...!

 런데 어느 날부턴가 정말 신기하게도 갑자기 발바닥이 땅을 받치고 서 있는 힘이 느껴졌다. 발바닥에 힘이 생긴 건지 항상 땅 위를 터덜터덜 힘없이 걷던 내 발바닥이 땅을 제대로 밀어내며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헌드레드(말 그대로 100번 호흡하는 코어 운동)를 할 때 50만 지나도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이 꽉 물고 100을 채울 수 있게 됐다. 코어 힘이 조금은 생겼는지 물렁물렁하던 배가 딱딱해졌다. 이제는 조명을 잘 받으면 11자 복근도 살짝 보인다.


 몸의 변화를 느낀 나는 학원을 연장하면서 그렇게 총 1년 4개월을 다녔다. 지금은 다른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건 다음에 다룰 예정이지만 어쨌든 여기서도 필라테스 덕을 크게 보고 있다. 운동을 시작하고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부정적인 생각을 줄일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날 일어났던 좋지 못한 일을 계속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면서 이때 이랬어야 했나 저랬어야 했나 하면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 스스로를 괴롭히는 별로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운동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 그런 거 없으니까. 언젠가 다정함이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체력이 늘어도 내가 다정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체력이 없어서 예민했던 게 아니라 그냥 성격이 나쁜 사람이었. 어휴,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땀 냄새에 매력을 못 느끼는 건 지금도 여전다. 대신 이제 TV에서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가진 연예인들을 볼 때 ‘오! 당신의 근육! 아주 멋지고 부럽네요!’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오래 살고 싶지는 않지만 골골대며 살고 싶지는 않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운동하며 살아야지 다짐한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려면, 일단은 건강해야 하니까!




필라테스를 배우며 알게 된

나의 나약함과 악함을 인정했다.

강사님의 시간은 나보다 느리게 간다.

운동을 하면 웃음이 많아진다.(헛웃음도 어쨌든 웃음이니까...)

번뇌에 빠졌을 때는 몸을 움직이자.


필라테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운동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시작은 해야겠으나 대체 뭐부터 해야 할지 1도 모르겠는 분

한 달에 운동에 투자할 예산이 어느 정도 있는 분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정적인 운동을 배우고 싶은 분

살 빼는 것보다 기초체력 키우기, 자세 교정, 속 근육을 만드는 게 목적인 분



사진: Unsplashfreya yanggg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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