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겹의 생을 살아보는 일
"책을 읽지 않고 살아도 아무런 무리가 없고 어떤 이들은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 같다고도 말하지만, 저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한 겹의 인생을, 읽으면 여러 겹의 인생을 살게 될 것만 같습니다. 여러 겹의 생을 살아보는 일, 그건 세상에 나그네처럼 머물렀다 갈 사람들이 저마다 가질 수 있는 '나의 부피'일 겁니다." - 이도우,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중에서
‘이해’란 가장 잘 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 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김소연, <마음사전> 중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그래 저렇게 건강하고 마음씨 고운 우리 예쁜 아가씨가 다 죽어가는 원숭이 새끼 같은 도련님에게 시집갈 줄 알아요?” (놀랍게도 가정부의 대사)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스트릭랜드는 마흔 안팎의 나이가 분명했는데, 그만한 나이를 먹은 사람이 연애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은 아무래도 추태만 같았다. (화자의 속마음이긴 하지만 정말 거침없다. 심지어 '이 자가 돌아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하기도 한다.)
선생께서 조금만 더 나이가 들면 남의 일에는 간섭을 안 하시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될 거요. 미안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왼쪽으로 돌려보시오. 나가는 문이 보일 테니. 안녕히 가시오. (꺼지라는 말을 이렇게 하다니)
“아무래도 이런 격언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격언 말입니다.”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돼먹지 않은 헛소리요.”
“칸트가 한 말인데요.”
“누가 말했든, 헛소리는 헛소리요.” (이런 식의 개그 코드들이 너무 웃겨서 한참 웃었다. 나만 웃긴가...?)
어쩌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모든 사람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