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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Jan 15. 2024

불안과 불완전함, 여행(1)

어느 집순이의 여행 이야기

 솔직히 말하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이 약하고 음식을 먹으면 잘 체하는 탓에 힘들거나 아플 때는 집에 가서 쉬어야 는데, 여행은 집에서 자발적으로 멀어지는 행위였다. 그러니 유사시에 돌아갈 안식처가 가까이 없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 여행 내내 머릿속에서 경보를 울려댔다. 어릴 때야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신 해결해 줄 어른들이 항상 곁에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책임져야 했고 내 육신은 함께 여행하기에 별로 좋은 파트너는 아니었다. 다행히 내 정신도 여행을 썩 즐기지 않 터라 이 합의를 잘해서, 나는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도 즐겁게 놀 수 있는 '프로 집순이'가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에 목마른 지인들이 시시각각 말라가는 와중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집에서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빵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이렇다 보니 내가 지금까지 비행기를 탄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순간은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들 모두와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어른들이 비행기에 처음 타는 사람들을 놀릴 때마다 하는 ‘신발 벗어야 한다’는 농담을 들으며 떠났던 여행은 오래된 기억이 으레 그러하듯 단편적인 장면들과 앨범 속 몇 장의 사진로만 남았다. 나를 포함한 사촌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자연경관보다는 초콜릿 박물관이나 세계 각국의 도시를 미니어처로 만들어놓은 소인국 테마파크처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공물을 주로 보러 다녔는데, 그중에서 테디베어 박물관에 갔던 일이 가장 생생하다. 물론 제일 즐거웠기 때문은 아니고, 어른들 없이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친척 언니와 나, 동생 이렇게 세 명만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곰 인형을 구경하는 데 크게 관심이 없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만을 위해 함께 들어가기엔 입장료가 퍽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어른들은 우리가 박물관 안을 구경하고 나올 때까지 박물관 밖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나는 가족들 없이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제주도로 간 수학여행은 출발할 때는 배를 타고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탔다. 갈 때는 한참이었는데 올 때는 한순간에 와서, 비행기는 정말 빠른 교통수단이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내 손에는 부모님께 드릴 오미자청이 들려있었다. 수학여행지에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며칠씩이나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을 어린이들에게 효의 가치를 일깨워주며 오미자청을 판매하던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선물은 됐으니 너 먹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거나 사라는 부모님의 말씀에도 나는 그 오미자청을 기어코 사 왔다. 황토색 모자를 쓰고 있는 투명한 돌하르방 모양 플라스틱 통에 담긴 오미자청. 우리 집에는 몇 년 전까지도 그 병이 남아있었다.


 내가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때, 이번 비행기는 나를 제주도가 아닌 낯선 나라에 내려주었다. 언젠가 유럽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간절히 바란 건 아니었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출국할 날짜다. 얼떨결에 남동생과 떠나게 된 11박 12일의 서유럽 패키지여행은 나보다 훨씬 더 여행을 가고 싶어 하셨던 부모님 대신 내가 왔으니 최대한 열심히 보고 배워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시작되었다. 게다가 내가 번 돈으로 가는 여행도 아니었다 보니 묘한 죄책감이 공항까지 나를 쫓아왔다. 돈을 지급한 만큼 필사적으로 재미있게 지내다 가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떠나는 여행이 즐거울 리 없었다. 인천공항은 넓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광활했고, 나는 무리에서 떨어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펭귄처럼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가이드님만 졸졸 따라다녔다. 길어야 한 시간도 되지 않는 국내선 비행기만 타본 나에게 반나절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건 굉장히 낯설었다. 기내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것 치고는 고요했는데 비행기 자체의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앞 좌석 등받이에 있는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데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먹고, 영화 보고, 자고, 노래를 들으며 꾸역꾸역 12시간을 보냈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건 저녁이었고,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기내용 슬리퍼 내가 신고 왔던 신발로 갈아 신었다. 그새 다리가 퉁퉁 부어서 맞지 않는 유리구두를 억지로 신으려는 신데렐라의 언니가 된 기분으로 내 신에 발을 구겨 넣었다. 가이드님이 지금 잠들면 시차 적응하기 힘드니 최대한 늦게 자라고 하셨지만, 나와 동생은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문제는,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여행이 설레서가 아니라 호텔이 너무 추워서. 한국의 온돌식 난방에 익숙한 우리에게 영국의 호텔은 냉골이었다. 패딩을 입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잠들었다 깼는데 10분밖에 안 지나있었다. 시차 적응이 안 되는 게 이런 거구나. 몸은 영국에 와있는데 내 무의식은 혹시 다음 비행기를 타고 오는 건가? 한국에서 영국까지 시간을 거슬러 왔으니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시간여행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방문한 타국에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사실 서유럽 패키지여행은 여행보다는 단기속성 역사 수업을 곁들인 전지훈련에 가깝다. 어릴 적 소인국 테마파크에서 던 랜드마크들을 며칠 만에 직접 두 눈으로 우르르 보는 게 물론 신기하고 좋기도 지만, 영국 - 프랑스 - 스위스 - 이탈리아 - 오스트리아 - 독일을 11박 12일 동안 다니는 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굉장히 고되다.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여행을 오신 아저씨는 지난밤에 쌍코피를 흘리셨다며 군대에 있을 때도 이렇게는 안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다. 하루에 만 보씩 걸은 날이 태반이었고, 나도 입안 곳곳에 물집이 잡혀 음식을 먹기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 쉽지 않은 여정이다 보니 서른 명 정도의 일행들끼리 여행이 끝날 때쯤 되면 묘한 전우애가 생긴다. 사람이 친해지는 데 힘든 시기를 함께하는 것보다 빠른 방법은 없으니까. 동생과 둘이 온 나를 어른들께서 감사하게도 계속 챙겨주셨지만, 갓 고등학생이 된 남동생을 나이만 간신히 어른이 된 내가 데리고 다니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피곤했다. 사춘기가 온 동생 놈은 내 옆에서 나란히 안 걷고 꼭 뒤에서 느리게 걸었고, 나는 다가도 뒤를 돌아보며 이놈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를 계속 확인해야 했다. 여행 전에 부모님이 거기 가서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행여나 싸울 일이 생겨도 한국에 와서 싸우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저것을 여기 버리고 갈까 여러 차례 고민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동생의 뒤통수를 아주 세게 때렸다. 퍽!



사진: UnsplashEva Dar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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