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대형마트에 가면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지하 1층에 있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서점 바닥에 주저앉아서 책을 읽었는데, 가끔 장보기가 너무 신속히 끝나면 못내 아쉬워했다. 어릴 적 살던 집 근처에는 도보로 다닐 수 있을 만한 도서관이없어서, 나는 항상 나중에 이사 가는 집 근처에는 꼭 도서관이 있기를 바랐다. 대신 학교 도서실을 자주 이용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 도서실에 갔는데 마침 도서부를 모집하고 있었다. 이건… 운명? 도서실에서 일하면서 봉사점수도 얻는다니. 놓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도서 위원이 되어 책도 빌려주고, 라벨 작업도 하고, 반납한 도서를 서가에 꽂으면서 어쩌면 이게 내 천직인가 생각도 했었다. 대학생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와 함께 서점에 간 친구가 “얘 눈 좀 봐!”하면서 깔깔대더니 갑자기 핸드폰 카메라로 나를 찍기 시작했다. 평상시 텐션이 낮은 내가 서점에 들어와서 책들을 보더니 눈이 막 반짝거렸다나. 친구는 내가 그렇게 신난 걸 처음 봤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책이 좋다. 책이 많이 있는 곳은 더 좋다. 그런데 최근 나의 행태를 보면, 사서 쌓아놓고 읽지는 않고 있으니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양심이 없는 것 같고 책 모으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할 듯싶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리더(reader)보다는 호더(hoarder) 쪽이다. 나는 책이라는 물건 자체를 좋아한다. 전자책을 좋아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종이책을 사랑해서 안 그래도 좁은 집구석에 책들이 푹푹 쌓인다. 나무야 미안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 주변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열심히 찾아보면 가물에 콩 나듯 있기는 했을 텐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찾아볼 기력은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었던 나는 용기를 짜내어 대면 독서 모임에 나갔다. 그런데 돌아가면서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나는 내 동년배 중 소심했던 아이들이 많이들 끌려갔던 웅변학원도 다녀봤는데, 내가 기억하는 거라곤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밖에 없었고 그건 여기서 쓸만한 멘트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다들 말을 너무 잘했다. 여러 번 다듬고 난 다음에 내보내는 글이 더 익숙한 나는 즉각적으로 내 생각을 말로 내뱉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고장 난 기계처럼 뚝딱거렸다. 어찌어찌 내 차례를 넘겼는데 그 뒤에 더 큰 산이 있었다. 뒤풀이. 낯도 엄청 가리고 술은 아예 못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도 춤추는 것도 안 좋아하는 음주가무 기피자인 나한테는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 모임에서 긍정적 영향과 삶의 자극을 받긴 했지만, 다른 쪽으로 지쳐서 그만뒀다.
그 뒤로 집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살았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모이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들었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면서 독서 모임은커녕 일상적인 모임조차 어려워졌고, 많은 것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오픈 채팅을 알게 된 나는 비대면 독서 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들어가 봤다. 다양한 독서 모임방이 있었다. 지정 도서를 읽고 토론하기도 하고, 하루에 몇 페이지를 읽었나 사진을 찍어서 인증하기도 했고, 이름/나이/성별을 닉네임에 적어야 하는 방도 있었고, 한 달에 네 권 이상 읽어야 하는 방도 있었다. 나처럼 허름한 직장인이 쫓기듯 책을 읽으면 독서라는 행위에 의무감만 남을 것 같아서 강제성이 적은 방 위주로 찾아다녔다. 한 달에 한 권 자유 도서를 읽고 감상을 공유하는 방이 제일 괜찮았는데, 그 방은 사람들의 친분이 너무 두터웠다. 물론 구성원들끼리 친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나만 모르는 사적인 이야기들이 자주 나왔고, 어쩐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것 같아서 나오게 됐다. 그렇게 여러 방을 전전하다 지친 나는 생각했다. 이럴 바에는 내가 만든다. 그간 기웃거렸던 독서 모임에서 내 취향에 맞았던 부분만 추출했다. 각자 읽고 싶은 책 읽기, 익명 사용하기, 한 달에 한 권 정도만 읽고 감상 공유하기. 그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소심한 인간이 급발진해 만든 얼렁뚱땅 익명 비대면 오픈 채팅 독서 모임이 벌써 2년 넘게 굴러가고 있다. 왜… 왜지?
우리 독서 모임 어떻게 아직도 굴러가는 거지?
처음에는 사람들이 올까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들어오는 사람이 꽤 있었다. 물론 이 모임에 어떠한 체계나 대책이 없음을 깨닫고 금방 나갔지만.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들이란. 갑자기 들어와서 성인 광고 수십 개를 올려놓는 놈도 있었다. 얼마나 받길래 저렇게 열심히 하나 궁금했다. 부디 그 글들을 지우느라 내 손가락이 고생한 만큼은 받았길 바란다. 처음에는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 그래도 수더분한 사람들 몇몇은 남았고 그렇게 모인 인원이 지금은 30명 정도 된다. 방장인 내가 하는 일은 별거 없고, 매달 공지 사항이나 올려두는 정도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올린 공지에 이번 달에 무슨 책을 읽을지 댓글로 달고, 책을 읽고 나서 내키면 감상을 공유한다. 이래도 내가 독서 모임을 ‘운영’한다고 봐도 되는지 2년째 의문이기는 하다. 이건 아무리 봐도 관리/운용보다는 방임/방관에 가깝지 않나.
독서 모임이라기엔 너무 느슨한 분위기고, 가끔 고독한 독서모임방도 아닌데 아무도 말을 안 해서 우리 모임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걱정스러울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강제성 없이 느긋하고 태평한 분위기로 독서를 즐기는 게 우리 방의 모토라고 합리화해 본다. 웃긴 건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독서 모임에 관련된 책을 종종 읽는다는 거다. 그런데 그게 딱히 무슨 액션을 취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음, 정상적인(?) 독서 모임은 이렇게 진행하는구나!’ 하고 참고하는 용도랄까. 책을 읽다 보니 독서 모임은 참여자들에 의해 굴러간다는 내용이 있었다. 역시. 나 같은 사람이 방장인데도 유지되는 이유가 이거였군. 예전에 황정민 배우가 수상 소감으로 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다’는 말이 유행한 적 있었는데, 나는 그냥 “밥 먹을 사람~!” 하고 손 들고 서있기만 했는데 사람들이 모인 셈이었다. 이런 착한 사람들 같으니. 바지 사장 같은 방장한테도 항상 수고해 주셔서 고맙다며 기프티콘을 보낼 때도 있다. 진짜 왜지…?
우리 채팅방이 제일 활발할 때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와서 자기가 위로받았던 책의 한 페이지를 채팅창에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도 하고,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나는 익명이어도,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에 서 있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다는 걸 우리 모임을 통해 알았다. 세상 어딘가에 나를 응원하는 익명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제법 위안이 된다. 내 세상에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서 캄캄한 줄만 알았는데, 저 멀리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밝혀놓은 촛불이 일렁이고 있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모인 우리는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길을 가다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잔잔한 익명의 독서 모임이 참 좋고, 우리 채팅방의 모든 분이 따뜻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내기를 항상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