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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Feb 12. 2024

실패의 경험 극복하기, 뜨개(1)

난 끝내 뜨개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릴  받았던 선물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바로 고모할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셨던 뜨개로 만든 인형 옷이다. 짙은 청록색의 털실로 뜬 카디건과 원피스, 챙이 넓은 모자와 가방까지 담겨있는 선물 상자를 열어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짙은 청록색은 어린 시절의 나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색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내가 가진 것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흔치 않은 색이다 보니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내 금발 인형은 청록색의 옷과 모자가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아마 인형이 쿨톤이었나 보다. 신기하게 사이즈도 딱 맞았다. 고모할머니는 내 인형을 본 적도 없을 텐데 어쩜 이렇게 딱 맞게 만들어 주신 걸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아무리 인형들의 체형이 다들 찍어낸 듯 비슷하다고 해도 맞춤 제작한 옷처럼 딱 맞게 만들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아무튼 신축성이 전혀 없어서 입고 벗길 때마다 힘들었던 드레스와 달리, 털실로 뜬 옷들은 갈아입히기도 편했다. 덕분에 옷이라고는 드레스뿐이라 잘 때도 드레스를 입고 자야 했던 내 인형들은 처음으로 일상복을 가지게 되었다.


 밖에 나가 놀기보다 집에서 혼자 꼼지락거리는 게 더 좋았던 나는 어릴 때부터 TV를 보면서 종이접기를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란 취미는 대부분 섭렵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요령이 생겨서 뭐든 조금만 배우면 대충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CA 시간에 십자수반도 했었고, 한창 유행했던 스킬자수(방충망 같은 틀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로 잘려있는 털실을 걸어 수놓는 자수)도 했었고, 종이학 접는 건 물론이고 기다란 종이로 별도 유리병 가득 접어봤고, 기술 가정 시간에 바느질을 잘한다고 경진대회도 나갔었고, 미술을 따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미술 시간에 못 해 본 적은 없었다. 손재주가 좋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고 나도 거기에 나름대로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손으로 만드는 건 뭐든 평균 이상은 하는 내가, 시도해 본 것 중 유일하게 못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뜨개였다. 나는 고모할머니처럼 인형 옷을 만들기는커녕 뜨개의 가장 기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목도리 뜨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한 두 명씩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다양한 색상의 포근하고 보드라운 실들로 목도리를 뜨는 걸 보고 있으면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손목 몇 번을 움직여서 실을 감았을 뿐인데 저런 모양이 만들어질까? 누군가 뜨개를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인사동에서 꿀타래를 만드는 걸 보는 것처럼 점점 빠져들게 된다. 나 역시 그 모습에 현혹되어 곧장 털실과 바늘을 샀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는 점. 누군가 무언가를 굉장히 쉽게 한다는 건 그 일이 쉬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엄청난 고수여서 그런 거라는 사실을 당시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머리도 항상 힘줘서 질끈 묶는 나는 뜨개도 힘을 줘서 한 코 한 코 꽉꽉 조여가며 떴고, 그 결과 다음 단에서 바늘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무엇보다도 뜨개의 메커니즘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걸 이 방향으로 돌려서 감아야 하는 거지? 반대 방향으로 감으면 왜 안 될까? 당시엔 유튜브 동영상처럼 초보자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줄 매체가 없었으니, 나는 혼자서 털실과 한창 씨름을 하다가 결국 최후의 필살기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기’를 사용했고 그 털실은 엄마의 손으로 가서 목도리가 되었다. 그렇게 한번 대차게 망하고 나니 그동안 나름대로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해 왔던 내 자존심이 크게 구겨져 더는 뜨개를 하기 싫어졌다.


난 끝내 뜨개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내가 뜨개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살았고, 뜨개를 다시 시도해 볼 생각도 안 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뜨개 인형이 너무 귀여웠다. 갑자기 내 안의 가내수공업 자아가 꿈틀거렸다. 저건 만들어야만 한다! 게다가 내가 어릴 때 실패한 목도리는 대바늘로 만드는 거였고, 이 귀염둥이 인형은 코바늘 인형이었다. 망했던 건 대바늘이니까 코바늘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뜨개 키트를 주문하고 네이버 밴드에 가입해서 도안도 다운받았다. 그리고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었지? 동영상 강의가 있는 도안을 샀어야 했는데 내 쇼핑 알고리즘은 ‘귀여운가? YES 산다’로 이어지기 때문에, 귀엽다는 이유 하나로 별생각 없이 주문해 버렸다. 매직링? 기둥코?? 긴뜨기??? 이게 여기서 왜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지? 아무리 도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갑자기 도안이 이해가 될 리 없었다. 기초부터 시작했어야 하는데 사슬 뜨기도 할 줄 모르는 초보가 인형으로 뜨개를 시작하려 하다니. 그렇지만 나는… 인형이 뜨고 싶었다고…! 걸음마도 할 줄 모르는데 달리기를 하고 싶으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맨땅에 헤딩해 가며 하는 수밖에. 그렇게 무작정 만들기 시작했다. 결과는 뭐, 당연히 망했다. 금지된 흑마술로 만든 듯한 참혹한 창조물이 탄생했다. 괴물을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창조주를 잘못 만난 실뭉치는 곰 인형이 되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다시 실뭉치로 돌아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어차피 키트는 샀고 이제 환불할 수도 없으니 성공하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2차 시도를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게, 한번 망해본 것도 해본 거라고 두 번째는 훨씬 수월했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짧은 뜨기라서 기둥코를 올린 코에 그대로 첫 코를 떠야 했는데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는 점. 빼뜨기 부분이 나선으로 만들어지는 걸 보고 갸우뚱했지만, 물어볼 데가 엄마밖에 없었는데 엄마도 코바늘 해본 지 너무 오래돼서 다 까먹었다고 했다. (안 돼! 나의 믿을 구석이…!) 한참 뒤에야 역시 잘못된 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하. 그렇지만 그래도 완성품이 귀여워서 일단은 살려뒀다.

잘못 떴지만 귀여워서 살려둠

 나름의 교훈도 얻었다. 처음 떠보는 거라면 계속 뜨다 풀다 뜨다 풀다 하면서 첫 시도에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망하더라도 일단 끝까지 한번 쭉 떠보는 게 배우는 게 더 많구나. 뭐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니 일단 하고, 하다 보면 그럭저럭 또 어떻게든 되는구나. 그렇게 완성한 인형이 하나둘씩 늘자, 재미가 들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뜨개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벌써 잘 시간이 한참 지나있어서 내일 출근 걱정을 하면서도 ‘딱 여기까지만 뜨고 자야지!’ 하는 날이 많아졌다. 코바늘에 자신감도 점점 붙었다. 세상에! 알고 보니 내가 뜨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 대바늘은 몰라도 코바늘은 할 수 있었잖아!!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보고야 말았다. 대바늘로 뜨는 개구리 인형, 뜨개구리를….



사진: UnsplashJoy Ru

뜨개인형 : 바이브리님 도안, <피터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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