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해원 Feb 05. 2024

난 당신의 고요함이, 식물 관찰(2)

식물이 주는 고요한 평화

 식물을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정보를 많이 얻었다. 예를 들면 코카콜라는 코카나무 잎과 콜라나무 열매의 추출물로 만든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대학원생 선배가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실화였다. 더 놀라운 건 코카콜라 원액이 1886년 미국의 약사 존 펨버턴이 처음 개발했을 때는 소화제로 판매되었다는 것이다. 콜라에 들어간 코카나무 잎 성분이 소화를 돕는데 실제로 볼리비아의 원주민들은 코카나무 잎을 소화제나 고산병 완화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코카나무 잎을 정제하면 과거에는 마취제로 쓰이다가 지금은 마약으로 더 잘 알려진 코카인이 된다. 예전 코카콜라에는 진짜 코카인 성분이 들어갔었지만, 중독성과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코카인 성분을 제거했다고 한다. 봄이 되면 피는 비슷하게 생긴 분홍색 꽃인 진달래와 철쭉, 산철쭉을 구별하는 법도 배웠다. 초록색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피면 진달래다. 진달래는 꽃잎이 하늘하늘하게 얇다. 분홍색 꽃과 초록색 잎이 같이 보인다면 철쭉이나 산철쭉일 확률이 높은데, 둘 다 진달래보다 꽃잎이 튼튼하게 생겼다. 철쭉과 산철쭉은 잎의 모양에 차이가 있다. 철쭉은 잎의 끝이 둥글고, 산철쭉은 뾰족하다.


 얼마 전 세종시에 갈 일이 있었는데,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오기 전 국립세종수목원에 들렀다. 수목원이 너무 넓어서 하루 만에 다 보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내 체력도 부족했다. 운전해서 집에 갈 체력을 남겨둬야 했기에 나는 수목원 지도를 보며 코스를 고민하다 눈물을 머금고 한국 전통 정원과 사계절 전시 온실만 보고 가기로 했다. 붓꽃 모양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는 사계절 전시 온실은 꽃잎에 해당하는 부분마다 각기 다른 테마로 되어있었다. 열대온실, 지중해온실, 그리고 기간마다 바뀌는 특별기획전시관이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피터 래빗의 비밀정원’이 테마였다. 요즘은 수목원도 미술관처럼 가이드가 없어도 휴대전화로 해당 식물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게 해 놓아서 혼자 둘러보기 참 좋았다. 원숭이 꼬리를 닮은 선인장처럼 신기한 식물들도 많았는데, 그보다 나는 지중해 온실 가득 피어있는 로즈마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로즈마리를 마당 가득 심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보면 과거 유럽 왕실에서 왜 그렇게 정원에 공을 들였는지 알 것도 같다. 아쉽게도 나는 개인 정원이 없으니 이렇게 가끔 수목원과 식물원에 오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게다가 수목원이나 식물원은 궁의 정원보다 훨씬 넓고 식물 종류도 다양하고, 내가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오고 싶을 때 와서 입장료만 내면 되니 어쩌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수목원을 돌아다니는 내내 계절별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가까우면 연간 이용권 같은 걸 끊어서 맨날 산책하러 갈 텐데. 날이 좋으면 돗자리를 들고 가거나 벤치에 앉아서 책 읽을 수 있겠지. 얼마나 좋을까.

이때다 싶어 냅다 책갈피 자랑하기. 능소화와 동백.

 식물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좋다. 거대한 식물은 어릴 적 읽었던 잭과 콩나무라는 동화를 떠오르게 하고, 조그마한 식물은 엄지공주 같은 동화를 생각나게 한다. 봄꽃 하면 벚꽃이 가장 인기 있지만 사실 나는 벚꽃보다 목련을 더 좋아한다. 목련의 은은한 향과 탐스러운 커다란 꽃잎이 참 좋다.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꽃잎의 색이 달라지는 수국도 좋아한다. 수국은 일반적으로 하얀색이지만 꽃잎의 안토시아닌 색소가 산성 토양에서는 알루미늄 이온과 반응하여 푸른색을 띠고, 알루미늄 이온과 결합하지 못하는 염기성 토양에서는 붉은색을 띠게 된다. 나는 푸른색의 수국을 제일 좋아한다. 겨울에 피는 붉은색의 동백꽃도 좋다. 눈과 함께 볼 수 있는 꽃이라니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여름이면 담장에 가득 피는 주홍빛의 능소화도 좋다. 한때 능소화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이 된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는데, 산림청에서 실명 위험이 없다고 밝혔다고 하니 안심하고 좋아하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등나무꽃이다. 연보라색을 유독 좋아하기도 하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콩과 식물 특유의 나비 모양(*접형화관이라고 한다) 꽃이 얼마나 예쁜지. 등나무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신선이라도 된 것 같다.

등나무 아래에 있으면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농사보다는 꽃놀이를 좋아하지만, 자그마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허브다. 나에게 허브 키우기는 벚꽃엔딩과 콩콩팥팥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식물을 키울만한 베란다가 마땅치 않아서 화분을 들이지 못했지만, 예전에 살던 에서 키우던 허브 화분들은 나에게 항상 위로가 되어주었다. 허브를 쓰다듬으며 내 손에 가득해진 향기를 맡고 있으면 힘들었던 기분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듯했다. 베이킹이나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에는 허브를 요리에 넣다. 바질은 잎을 그대로 마르게리타 피자에 올리거나, 바질페스토를 이용해 파스타를 만들거나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넣은 파니니에 넣으면 금상첨화다. 딜은 레몬과 함께 버터에 넣어 레몬딜버터를 만들어서 빵에 발라먹으면 버터의 기름진 맛을 레몬과 딜이 상큼하게 잡아주는 게 정말 맛있다. 로즈마리의 향을 좋아하는 나는 포카치아나 피자를 만들 때 로즈마리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때려 넣는 편인데, 로즈마리를 넣은 빵이 얼마나 향긋한지 모르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나중에 병원 갈 일이 많아지기 전 아직은 건강할 때,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시골에 사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전원주택에 살면 혼자 해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기에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만 한다. 생각만….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 호프 자런, <랩 걸> 중에서


 식물을 지켜보고 있으면 자연의 신비로움이 시각화되면 이런 모양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목련, 벚꽃, 개나리, 라일락, 이팝나무, 장미, 무궁화, 맥문동 등 많은 식물들이 아파트 단지에, 회사 화단에, 거리에 계절마다 잊지 않고 찾아온다. 나에게 기다림의 즐거움을 알려준 최초의 존재는 식물이었다.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작은 씨앗도 우거진 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존재도. 가만히 자기 자리에서 소란스럽지 않게 할 일을 해내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도 힘내서 살아야지 하고 일어서게 된다. 식물만이 줄 수 있는 고요함. 그리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한 평화를 나는 사랑한다.



식물 관찰을 하며 알게 된 점

아는 만큼 보인다.

내 인생에 1차 산업은 절대 없을 거지만 허브는… 키울지도?


식물 관찰,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고요함을 사랑하는 분

자연의 신비를 눈으로 보고 싶은 분

기다림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분



사진:  사진첩

제목: 오왠 - 난 당신의 고요함이♬

이전 10화 난 당신의 고요함이, 식물 관찰(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