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단순히 우연이었다. 인터넷 소설이 한창 떠오르던 때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심심할 때마다 아무 말이나 끄적여 봤을 뿐인데 직업으로 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직업 만족도는 60% 정도 될까? 예전에는 글을 쓸 때 온갖 망상으로 즐겁기만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밖에 못 쓴다고?’하며 괴로워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래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60%라면 꽤 높은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글로 풀어낸 상상을 사람들이 재밌게 봐주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만족도의 일정 부분은 독자들 덕분에 올랐을 것이다. 어떻게 글을 쓰면 좋을지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는 건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어주고 즐거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언제나 열의가 넘치지는 않는다. 소설을 쓴 지난 4년 동안 나는 여러 번의 슬럼프를 겪었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을 잃어 아득해졌고,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출간을 한 건지 눈앞이 캄캄해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며칠을 보내길 여러 차례였다.
그럴 때마다 인풋을 하거나 소설 쓰기를 완전히 멈추고 쉬기도 하면서 겨우겨우 새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다. 하지만 슬럼프는 점점 자주 찾아왔고 어느 순간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자체가 버거워진 것이다.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벌고, 돈을 못 벌면 생활이 힘들어진다. 집세부터 핸드폰 요금, 카드값 등 내야 할 돈은 산더미인데 정작 나는 일은커녕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으니 몸은 쉬는데 정신은 온갖 걱정과 잡생각으로 너덜너덜해졌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자기혐오가 들끓었다. 극단적으로는 ‘이러다가 자살하는 거 아냐?’하고 걱정한 적도 있었다.
이런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 일말의 노력은 했다. 병원을 다녔고 상담 센터 문을 두드렸다. 큰 기대는 없었고 단지 이 상황에서 조금만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특히 상담 센터를 다니면서 A 선생님을 만난 건 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A 선생님을 만나기 전, 다른 상담사와 몇 차례 상담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 “잘했다”고 말해주는 상담사들은 몹시 친절했지만 불행히도 나와 맞지 않았다. ‘다 괜찮다’는데 내가 우는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을 고르게 됐고, 결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됐다. 상담 별거 없네. 돈만 날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상담 센터에 방문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이전과 다를 게 있을까?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당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번만 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그만두자는 심정으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때의 나를 지금도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A 선생님은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담백하고 날카롭다.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시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해보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주시는 분이다. 사실 상담 초기에는 괜히 시작했나 후회도 했다. 2~3주쯤 지나니 과거사부터 쭉 읊으며 이어갔던 상담 시간을 채우기 버거워졌기 때문이었다.
꾹 참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을 만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몰랐던 내 면모를 알게 됐고,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도 알게 됐으며, 영어 공부든 운동이든 글쓰기 수업이든 무언가를 시도할 힘이 생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마법을 부린 것 같은데, 1년여간 꾸준히 상담하며 내면이 단단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작가로 사는 게 힘들다거나 상담을 받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자기 발전 없이 나태하게 굴러다닐 뻔한 나를 대화로 이끌어주신 A 선생님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다.
김연경 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 일본과 경기할 때 “해보자”고 말한 것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열광했는지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무언가를 해보자고 마음먹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사기를 북돋고 함께 해보자고 끌어주는 사람은 누구보다 소중하다. 내게는 A 선생님이 그렇다.
나는 일주일 중 금요일을 가장 기다린다. 그날은 내가 수렁으로 빠지지 않고 나를 위해 쓸 힘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니까. 물론 상담이니 언젠가 끝은 올 것이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문제없이 무사히 잘 졸업한 거라 생각하면 한편으론 기뻐진다.
졸업 날 기회가 된다면 A 선생님께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선생님이 계셔서 외롭지 않았다고.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지만, 그중에 하나만 꼽자면 선생님만큼은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선생님 덕분에 어리숙하게 굴지 않고 좀 더 강단 있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