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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Oct 23. 2023

아줌마 왜 그래?

퇴로는 없다

아 줌 마


이 단어는 사전에 찾아보면 아주머니가 원뜻이란 것 말고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이 단어가 주는 인상은 뭔가 상대방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선을 쉽게 넘고, 불편한 오지랖을 자주 부리고, 누구에게나 정이 넘친다는 듯 당신이 남 같지 않아 그런다면서 어깻죽지를 두드리며 하하 호호 부대끼길 좋아하는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집합체 같았다.


몇 년 전 나는 첫 아이를 낳고 말로만 듣던 아줌마가 되었다. 정확하게는 아줌마들의 대자연처럼 원초적이고 거침없는 세계에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졌다. 이때까지의 나는 거의 언제나 혼자인 상태가 가장 편했고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쉽게 팽개치고 돌아서기 일쑤였다. 그 어떤 것도 결과적으로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질 못했다. 좋은 학교, 직장, 연봉이나 승진에 대한 욕구, 상사 또는 동료들과의 유대감이나 인정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해보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 결과적으로 남의 인생을 어쩌다 대신 살아주는 것마냥 뒷심 없이 가느다란 삶을 이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자식이라는 무를 수 없는 커다란 도전과제에 맞닥뜨려야 했다. 더 이상 플랜비나 탈출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아이와 관계된 일이라면 중차대하게 느껴졌기에 마침내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아이가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며 뭐든 배우려 한다는 걸 깨닫고 나니 진심으로 꽤 괜찮은 사람이 되고싶어졌다. 돌이켜보면 그간 즉흥적 자퇴와 퇴사의 연속이었지만 내 아이가 자신이 속한 세상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건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그제서야 스스로 변할 용기를 진심으로 내어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태어나고 처음 가져보는 진짜 열정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조직생활과 문화는 학교나 직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로 살기 위해서도 나는 좋든 싫든 많은 사람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과 얼굴 붉히지 않고 섬세하게 의사소통하며 때로는 긴밀히 협력해야 할 때마저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눈치를 많이 살피며 일상적 관계에서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지를 새삼 깨달으며 놀란 적이 있다. 대충 뭉뚱그려 ‘아줌마’라고 싸잡아 낮춰 불러왔지만 지금 보니 아줌마들이 또 다른 아줌마들을 만나 해변의 조약돌처럼 모서리가 둥글러지는 과정이 꽤 숭고한 노력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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