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는 없다
자연휴양림에 쉬러가서 치유의 숲이라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간 나에게 숲체험이라는건 숲 속에 사는 벌레나 동물, 열매 등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얻는 경험이었는데 여기에서 만난 가이드가 들려준 자신만의 관점이 뚜렷한 숲해설이 참 재미있고 인상깊었다. 그는 숲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숲은 전혀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했다. 숲이란 처절한 생존경쟁의 현장이자 약육강식의 세계라며.
새들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것이고,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뿜는 물질인 피톤치드를 우리가 마시면서 숲이 편안함을 주는 곳이라 착각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했다.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산책로나 안식처를 만들어 놓으면 야생동물들이 더 잘 이용한다며, 그들도 비맞고 더러워지는 걸 싫어한다나. 다람쥐도 도토리보다 고기를 더 좋아한다고. 그것도 둥지의 아기새고기.
온갖 독한 벌레가 들끓는 똥수저 자연숲, 생명력과 자생력이 떨어지고 산불이라도 한 번 나면 홀랑 타버리는 위기에 너무나 취약한 금수저 인공숲, 모두 소중하다. 왜냐하면 인공숲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자연숲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할 수 있을테니까.
여기까지가 그의 관점이다. 그런데 나에게 자연은 왜 여전히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껴지는걸까. 나란 인간이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에다가 눈치라고는 없어서 그런가.
자연은 어린 내가 부모에게 바랬을 법 한 그 모든 것이다. 무한하고 무조건적이다. 사소하게 불편하고 성가신 점도 있지만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 자연은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실망도 계산도 없다. 자연은 나에게 아무 것도 내놓으라고 하지 않는다. 오직 나에게 내어줄 뿐이다.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한껏 자유롭고 관대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원래 내 자리로 돌아오면 모든게 비용이고 끊임없이 계산기가 두드려지며 매일 청구서가 날아와 간이 쪼그라든다. 잠시 앉아 쉴 곳에서마저 커피값이라도 받으며, 차에서 잠깐 내려 볼 일을 볼라쳐도 주차비는 필수다. 집은 또 어떻고? 물, 전기, 가스, 대체 한 줌 공짜인게 어디있지?
그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돈으로 치환될 수 있을 만 한 내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 안에서 나는 그렇지 않다. 언제 잡아먹힐 지 모를지언정 그저 존재해도 된다.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 기적이라 느껴도 된다. 주어진 것들을 마음껏 즐겨도 된다.
나는 나만 빠지면 잘 작동할 것 같은 거대하고 무심한 기계의 불량 부속품이 아니라, 내 안에 커다란 울림을 주는 위대한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