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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Nov 15. 2023

갑툭튀

퇴로는 없다

오래 전 개그콘서트에 갑툭튀라는 코너가 있었다. 그 코너에 나만 정상인 역을 맡은 여자를 제외하고 모두 상황, 맥락과 전혀 관계없는 말을 해댄다. 그 여자 말고는 서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순조롭게 대화를 이어간다. 어쩌면 그 여자 혼자 이 세계의 비정상일지도.


오늘 아침에 거의 반 년만에 우리 집에 친정엄마가 방문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 연락 없이 불쑥 찾아와서 초인종을 바쁘게 눌러댄다. 원한 적도 물어본 적도 없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싸온다. 또는 우리 집에도 많이 있는 식재료를 뭐가 필요한지 미리 궁금해하지 않고 또 사온다. 집을 잠깐 비우면 물건을 여기저기 정리한다고 옮겨놓거나 버린다. 아이들 생일에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대답해주면 당신이 고른 전혀 다른 걸 사온다. 갑자기 나타나 아이를 데려가려 한다. 이유를 물으면 당신에게 시간이 생겼고 내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피곤할 것 같아서다. 아이 등원시간이 되어 집을 나서려고하자 자기 때문에 그러는거냐며 못 가게 한사코 말린다.


평생 서로 다른나라 말을 하는 느낌, 스텝이 전혀 안 맞는 사람과 배배 꼬인 춤을 추는 느낌이다. 악의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이 모든 걸 코미디로 웃어넘기고 싶은데 막상 닥치면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 지 도저히 감이 안온다.


(다음은 갑툭튀의 한 장면)

선배! 저 여기 남자친구랑 약속 있는데 막무가내로 찾아오시면 어떡해요.

미안. 사랑해. 우리 결혼하자.

네? 저 다음 달에 남자친구랑 결혼해요.

신혼 즐기다가 애는 천천히 갖는거 어때?

선배!

배고프지?

아니요 저 입맛 없어요.

그래 그럼 밥부터 먹자.

여기 뭐가 맛있어요?

오늘의 쉐프 추천메뉴는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등심 스테이크 주세요.

네 안심 스테이크 준비하겠습니다.

너는 뭘로?

저 입맛 없다니까요.

같은 걸로 두 개요.

그럼 안심 스테이크 하나, 티본 스테이크 하나 준비하겠습니다.

손님 주문하신 닭칼국수 나왔습니다.

한번 맛있게 먹어볼까?

바로 포장해드리겠습니다.

포장 부탁하신 미더덕찜 나왔습니다.


웃기면서 슬프다. 어떤 계기로 인해 이 관계에서 내가 너그러움, 이해심, 연민을 잃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회복할 수 있을까. 무슨 방법이 있을까. 내 자식과는 함께 있는 것이 오래도록 즐거운 사이이고 싶다. 아직까지는 그럴 수 있어 감사하다. 소박한 듯 원대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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