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울고불고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지겨워서, 이틀간 약을 안먹어봤다. (의사선생님 죄송합니다.) 하루종일 불안한 느낌은 약간 있었지만 무기력함이 사라졌고 기분도 평소보다 좀더 좋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밤마다 악몽이 다시 시작되었고,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평소에 하도 가위를 많이 눌리다 보니 빨리 깨는 방법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몸에 아무리 힘을 줘도 깨지 않아서 너무 무서웠다.
안되겠다. 다시 약을 먹어야겠다. 그나저나, 나중에 이 약을 끊을 수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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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공황장애로 휴직했다가 다시 회사로 복귀한 사람도 있었고, 부서이동을 요청해 다시 회사를 잘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휴직했다가 결국 퇴사한 사람도 벌써 여러명 있다. 이 회사는 왜 이모양일까. 나는 어떤 결과를 마주할까. 나는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우울증을 진단받고 결국 회사를 그만둔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는 누구보다 회사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참 의외였다. 싹싹하고 일도 잘해서 모두가 예뻐하던 후배였다. 승진도 빨랐다. 뭐가 그 후배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나와 달리 회사에 참 잘 적응하는 것 같아서 내심 부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예전에 나와 비슷한 증상을 앓았던 팀장님을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다.
사실 제가 이런 신체적 증상을 앓고 있고, 대학병원에 갔더니 저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냈고, 검사결과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휴직을 해야 할까요.
팀장님은 말씀하셨다. 관리를 잘 못하면 100% 재발한다고. 휴직을 하는 게 가장 좋아 보인다고.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어. 이 병은 겪어봐야지만 알 수 있는 병이야. 넌 참 밝은 애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니. 네 밝은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구나.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난 언제나 우울한 애였는데, 이 팀장님은 나의 어떤 모습에서 밝음을 보신 걸까. 내 안에 밝은 모습이 있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나저나 우리 회사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처음엔 밝히고 싶지 않아서 꽁꽁 숨겼던 것처럼, 누군가 몰래몰래 정신과에 다니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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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빠가 회사를 쉬는 날이다. 아빠는 자주 그랬듯 낮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마다 공중에다가 엄마에 대한 욕을 퍼부으며 부엌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었다. 엄마는 일을 나가 집에 없었다. 아빠는 오늘도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버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했다. 혼자 씩씩대는 소리가 너무 소름끼쳤다.
매번 그런 모습이 나의 불안을 자극했는데 오늘은 나의 불안이 유난히 더 심했다. IMF로 어려웠던 시절, 백수였던 아빠가 늘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어린 나에게 화풀이를 하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공포심에 사로잡혀 내 몸 속의 근육과 피가 점점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릴 적 그때처럼, 방문을 걸어잠그고 귀를 막았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집에 없는 듯 행동했다. 바퀴벌레처럼, 어둠 속으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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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생과 통화를 하다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은 아주 상세히 기억하는데, 이상하게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 수학여행을 어디로 갔었는지, 담임선생님은 누구였는지, 몇학년 몇반이었는지 등등. 마치 인생의 일부가 머리에서 지워진 듯한 느낌이다.
대학교 때 상담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주 쓰는 자기방어기제들이 있는데, 나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나는 도대체 어떤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걸까. 힘들었던 감정은 분명 기억이 나는데, 뭐때문에 힘들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기억이 나더라도 아주 단편적이다. 자주 꺼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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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대신 아파줄 수 없다.
내가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
정리되지 않은 채 잊혀진 상처들을 다시 하나하나 꺼내서, 정리해야 한다. 몇 년 묵은 상처인지,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용기내서 해야될 것 같다. 온 몸이 다양한 증상들로 '마음 속 상처를 들여봐달라'고 소리치고 있으니까.
마음 속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입은 나'를 찾아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줘야 한다. 버려두었던 '나'와 반드시 화해해야 한다.
그게 매주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