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목표는 열심히 달릴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다.
20대 중반을 달릴 때 즈음 있었던 일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흔히 주변에서 찾아보기 쉬운 프리랜서 디자이너에서 시작된 지금의 내 모습을 담은 이야기. 20대 누구나처럼 조금의 노력과 필요한 만큼의 개선으로 살아가던 나도 여느 프리랜서처럼 외부에서 자영업자들의 일을 받아 밤낮없이 일하기도 하였었고,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납품, 영업도 해보면서 세상을 배워나갔었다.
나는 롤모델과 목적의 자리가 꾸준히 공석이었다.
사실 디자인영역이 내 인생의 목표라고 하기엔 무언가 뚜렷한 가슴설렘과 목표가 많이 부족했지만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다른 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집중도 잘되고 즐거움과 설렘이 공존하여 그런 내 모습에 믿고 의지해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한 모습에 의존하다 보니 창업하고도 2년 동안 딱히 원하는 롤모델이나, 벤치마킹할 대상, 명확한 비즈니스모델마저 없는 채로 돈을 벌며 살아왔다. 과정에는 사람에게, 돈에 치이고 지쳐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여럿 있었지만 다시 누군가의 회사로, 아니면 백수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황망한 도전이었기에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다.
일에는 책임이 따랐다. 힘든 순간에도 맡은 일들을 여느 회사 직원들처럼 연차나 휴가로 돌릴 수는 없었고, 웃지 못하는 버거운 모습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들이 많았다. 방황을 하고 싶진 않았다. 20대의 몇 달 허비가 얼마나 데미지가 큰지, 그 시간에 이루어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지난날 몸소 배워왔기에 무작정 달리기만을 반복하였었다.
우연의 만남, 그리고 알게 된 새로운 세상.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늘 존경의 대상으로 계시는 학교 선배이자 대표님이신 리오랩 허재혁 대표님의 소개로 한 AC(액셀러레이팅)사 대표님 한 분을 2022년 초가을 무렵 소개로 만나 뵈었다. 그저 디자인만 할 줄 알던 내 앞에게 생소하고 어려운 스타트업의 용어들이 오가고 능력 좋으신 많은 프로님들을 처음 뵈면서 얼마나 신기하고 설레었는지 모른다. 어떤 이야기가 흘러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기대되고 설렌다는 감정 하나. 이후로 잦게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뵈는 자리가 있었고, 그런 자리에서 비추어지는 나는 당연 스타트업의 육성과 투자 프로세스를 모르기에 그저 디자인만 작업할 줄 아는 단순 디자인업체일 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다니시는 분들이 앞서 말했듯이 능력이 출중하신 분 들 이어서 일까, 어느 순간 나는 액셀러레이터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있는 디자이너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뒤쫓기 시작한 앞서 나가는 내 그림자
담아내기 어려운 그릇이었던 스타트업들의 외주용역. 남들이 이야기하는 전문적인 내 모습과 달리 단순히 비주얼적 개선작업만 할 줄 아는 나는 스타트업들이 바라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투자를 받거나 서비스 고도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스타트업들은 비주얼 개선 작업 하나에도 긍정적 성과지표를 가져오는 하나의 개선점이 되어 야한 했다. 처음의 시작은 그저 심미성 높은 디자인 데이터에만 목매달고 연구하고 작업을 해오다 보니 이 작업을 왜 외주용역으로 요청하신 걸까 의문도 많이 생기곤 하였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서서히 이유에 대해서 배워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숙명처럼 앞서나간 그림자를 쫒기 시작하였다. 일러스트를 끄적이고 포토샵을 잘 다룬다고 될 일들이 아니었음은 확실하였다.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기획과 체계구조개선에 대한 넓은 지식들이 필요하고, 본인 브랜드를 진단할 줄 아는 디자인 에이전시. 내가 느낀 스타트업들의 디자인 파트너사의 역량이었다.
생각의 전환이 되었던 갑과 을의 외주 계약서.
월말 정리가 바빴던 어느 날 스치듯 보인 시청 쪽과의 디자인 용역 계약서. 늘 나와 나의 회사는 을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일하고 있음을 안다. 디자이너는 늘 외주용역을 이행하기 전 '을'의 입장에서 계약서를 쓴다. 그리고 지정해 주는 디자인 개선 작업을 수행하는 일들을 한다. 다른 많은 계약서들을 꺼내서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깨닫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정말 업체가 해달라는 일만 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수동적으로 일을 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있었을까 싶으면서도 동시에 이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감이 오기 시작하였다.
외주용역사가 아니라 파트너사, 컨설턴시로 자리 잡고 싶다는 목표. 초기 창업자들이 처음 아무것도 없는 제로베이스에서 우리를 만나 목표를 공유하고 BM과 마일스톤을 설정하고 체계화되는 과정을 디자인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도와 적어도 seed투자 단계까지는 안정적으로 비주얼고도화 작업을 해주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 이에 확신은 불과 몇 달 전이었기에 아직도 진행 중인 내 비전에 대한 워딩 스피치의 일부이다. 한순간의 인연으로 배경설정의 키를 잡았고, 한 장의 종이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절대 쫓아오지 못한다.
많은 스타트업의 담당자들과 대표님들을 만나 오면서 느낀 감정, "이 사람들은 지금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분들을 '러너'라고 부른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고 자신의 사업을 스케일 업해나가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하시는 분들. 이분들은 아마 성장을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성장을 해야 하기에 당연히 개선해 나가야 하는 과정으로 느끼실 것이다. 나도 일을 하면서 주말에도 잦게 미팅을 잡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러너들을 평일주말이 없는 편이다. 러너들은 환경과 시간탓을 하지 않는다. 늘 그들은 마주하는 모든순간이 최선이었고 어떻게 개선하고 도약할지 고민만이 가득한 도전가들일 뿐이다. 이런 도전과들과 만나본적이있는가? 걱정과 근심이 많은 취업준비, 이직준비 단계의 20대들에게 이야기해주고싶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허비하지말고 나와 다른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인사이트를 얻어가라고. 그 사람들이 바로 스타트업 도전자들이 아닐까 싶다. 진정성있게 나에대해 이야기해보고 내가 살아가는 삶과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토론도하고 인사이트를 얻기도하면서 정보를 교류해보면서 말이다.
우연찮은 기회로 많은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투자사들을 만나 뵐 수 있는 스파크랩 배치 16기 데모데이에 방문한적이 있다. 스파크랩은 수많은 기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액셀러레이터로, 포트폴리오사의 후속 투자 유치 금액은 1.3조 원이 넘는 안목 좋은 기업으로 유명하다. 데모데이에는 SK그룹 회장님이 연사일정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고 과정에 배치 프로그램이수가 완료된 스타트업들의 피칭들이 이어졌다. seed투자과정에 성장을 이끌어오며 비즈니스 모델의 완성도가 높아짐을 확신한 각 스타트업 대표님들의 피칭은 후속투자를 위한 간절함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사업에 대한 확신이 바탕이 되고 있음을 느끼는 말 한마디 한마디였다.
그 사람들이 저 자리까지 올라가는 열정도 대단하지만 나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 즉 본인사업의 아이템에 확신을 갖고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저 부럽기만 하였다. 돌아보니 그 순간이 내가 처음 스타트업들의 생태계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데모데이 피칭에 나서는 스타트업들의 든든한 디자인 파트너 에이전시이자 더 많은 정보력으로 길을 열어주는 컨설턴트가 되보겠다. 그만큼 지금보다 더 많은 배움과 노력이 필요한 것을 알았지만, 시간을 쓰기 위한 열정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열정을 담을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한 가지 방법, '러닝'
눈앞에 놓인 게 반복의 쳇바퀴라도 일단 달리기 시작하고 보자. 갇혀있던 케이지속 햄스터일지라도 도망갈 기회 전까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햄스터보다 미리 챗바퀴로 달리는 연습을 하는 햄스터가 탈출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정말 인생에서의 주어지는 시간과 기회는 모두 한 번뿐이다. 기회는 그리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꿈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꿈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본인의 목표를 설명할 시간여유 없이 달린다. "내 꿈은 ㅇㅇㅇ입니다."라는 말은 도약이 없던 학창 시절에야 꺼낼 수 있는 미래적인 표현일 뿐, 지금 우리에게 필요로 한 것은 동기부여나 목표를 위한 수식어구가 아닌 '러닝'이다.
달리다 보니 너무나 여유와 시간이 부족하다. 축구를 할 때도 가만히 서있다가 스프린트를 하는 것보다는 이미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스프린트를 하는 것이 상대를 넘어 골로 근접하는 확률이 높다. 당장에 목표와 비전이 없더라도 달리는 습관이 필요한 20대이다. 어느 범주로의 성장이든지 간에 필요할 기본적인 언어, 실무 등의 스킬들 말이다. 그런 노력이 남의 회사에게 자료로 보여줄 수 있는 의미 없는 자격증이나, 스펙종이쪼가리 따위에 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는 유망한 벤처투자사나 유능한 액셀러레이터처럼 스타트업들에게 힘을 확 실어주는 파트너로 다가가기엔 많이 거리가 멀다. 다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분야부터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바탕을 다져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올해도 달릴 준비가 되어있다.
확신이 선다. 망하더라도 후회 없이 즐길 수 있는 영역임을. 그리고 이 방법이 AI세상에 대응해 나가는 디자이너로써의 조그마한 대비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