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라, 청솔모

by 혜윰

작은 청솔모 한마리가 도로위를 뛰어 다닌다. 저러다 차에 치일까 싶어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는데 건너편으로 가더니 사람들을 보고는 겁에 질려 다시 내 쪽으로 온다. 나는 마치 잃어버린 아이를 맞이하듯 양팔 벌려 청솔모를 부르다. "이리와 이리." 하지만 청솔모는 나를 피해 또다시 어딘가로 도망을 치고. "위험해 조심해." 하는 내 목소리는 자동차 클랙션 소리에 파묻힌다.


요며칠 우울증이 심해졌다. 출근을 하기 위해선 우주의 기운을 빌어야만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출근에 성공했어도 만나는 손님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온몸을 쥐어짜듯 텐션을 끌어 올렸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집에오면 픽 쓰러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카드를 쥐어주며 먹고싶은 걸 알아서 사먹으라 하였다.


그런 엄마가 걱정되는지 아이가 수시로 엄마 힘내라고 말해주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은 힘을 내고 싶은데 힘을 낼 수가 없는 병이다. 힘이 없어져서 힘이 들고, 힘을 내야하니까 힘이 드는 병.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힘을 내라고 한다. 돈이 떨어지고 없는데 밀린 공과금 독촉 받는 심정이다.


오후에 친구 전화가 왔다. 꽤 괜찮은 남자가 있다며 소개 시켜주겠단다. 언제까지 애만 보고 살거냐고, 더 나이들기 전에 좋은 남자 만나서 편안하게 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자의 사진을 보내줬다.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어쩌면 이분은 이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저한테 오세요. 저한테 와서 쉬세요. 힘내지 않아도 되요."


상상만으로도 달콤하고 황홀한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둘이라서 행복하고 둘이라서 편안한 만큼. 둘이기 때문에 힘들고 둘이기 때문에 괴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래서 금새 지치고 금새 도망치고 싶어질 거라는 걸. 괜찮다고 상대방이 아무리 안심을 시켜줘도 나는 그저 달아나고만 싶어질 것이다.


나를 피해 달아나던 청솔모가 이번에는 고양이에게 쫓기기까지 한다. 고양이는 대체 어디서 나타난건지 맹수의 기지로 쫓고 있다. 청솔모는 또 다시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위로 뛰어든다. 자동차들이 빽 빽 소리를 내며 멈춰 서고, 뒤쫓던 고양이도 길가에 뚝 멈춰 섰다. 청솔모는 가로수 위로 쪼르륵 올라가더니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쏘옥 숨는다. 요동치던 내 심장도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휴우..



by 혜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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