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들 모이십시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둘러앉는다. 땅바닥에 드러눕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요란한 팻말을 만들어 온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지함에 돌돌 말린 종이를 꺼내 긴장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땅바닥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안건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빨간 지붕네 김 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안건은 무, 무슨. 보, 본론부터 말해라!” 그는 티 나도록 떨면서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덧붙여 말하라고 외치는 덕에 기세등등해진 김 씨였다. “그래서, 댁네 손녀딸이 그런 일이 있었다 이거지?” 이제 막 들어온 사람은 흥미롭다는 듯이 두 눈을 치켜뜨고 입을 연 홍 씨를 바라봤다. 홍 씨는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그러다 한 조각이 툭 튀어나왔는데, 배였다. 홍 씨는 사람들 눈치를 쓱 보면서 재빠른 손으로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것을 휴지로 처리했다. “일단 난 처음 듣는 일이고, 굳이 우리를 이렇게 불러 모아야 하냐 이 말이야." “나도 고민이 되니까 그러지요. 도움을 주십사 하고." 홍 씨는 심드렁한 얼굴로 혼자 서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용모 말끔하고 키는 올려다봐야 하는 것이 딱 기와집 네 이군이 생각났다. 홍 씨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옆에 있던 성씨가 째려봤다. 이군과 성씨, 둘은 신혼부부인 듯 다정하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홍 씨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휙 돌리고선 드러누웠다. 자신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었다. 성씨는 이미 예측한 일이었다. 애초에 별 것도 아닌 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같이 고민하자고 하는 이 양반이 참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냥 못 들은 척하면 될 것을. 그놈의 까치는 호박씨만 물어오지, 왜 손녀딸 말까지 물어와 버린 건지 원.” 아무리 고민해도 손녀딸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고 싶다는 건지, 없어도 된다는 건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얘기를 하자면요." 까치가 손녀딸네 마당에 들어와 놀고 있는데 호박이 깨져 있길래 씨를 물어다 먹을까 말까 고민했다. 그 모습을 손녀딸에게 들켰다. 놀란 까치들은 물고 날아가는데, 손녀딸이 말을 했다. “까치야, 우리 집 호박씨 물고 가니까 나 그거 좀 사주라. 아냐, 안 줘도 돼. 누가 피해받는 건 싫어.” 까치는 아내를 불러다가 같이 마당에 놀러 갔던 까치와 함께 얘기를 들려줬고 까치끼리 고민하다 그 얘기가 이군, 성씨네의 귀에 들어온 것이었다. 손녀딸이 여전히 까치를 생각할까 싶어 구름을 타고 내려다봤는데 손녀딸은 이미 집에 들어가고 없었다. 이군, 성씨는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성씨는 알아서 하게 두자에 힘을 실었고 이군은 그래도 손녀딸의 마음을 지나칠 수가 없어 계속 망설여하던 참이었다. 이군은 결국에 이렇게 하늘에 같이 사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얘기를 나누자고 한 것이었다. ‘당신들은 알까, 오늘 나의 소재가 되어준 것만으로도 나는 큰 그것을 얻었다는 것을.’ 소설가 지망생인 손녀딸은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적고 그 물건을 잠시 떠올렸다. “내가 분명 사려고 했었어. 한 달을 고민했어. 그리고 샀는데! “ 앞을 걸어가던 손녀딸이 고개를 휙 돌리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뒤로 바로 환불했어. 이런저런 이유로, 뭐. 꽤 멋진 이유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아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손녀딸은 침을 꼴깍 삼키며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말했다. "아쉽지가 않아." 손녀딸은 자리에 일어나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를 틀었다. “한 개도 아쉽지가 않아.” 소설가 지망생 손녀딸은 이 일을 어딘가에는 적었을 것이다. 모처럼 단잠에 빠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