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교사 Sep 28. 2021

약점많은 작가

작가로서 나는 약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단 말을 잘 꾸미지 못한다. 어떤 분들은 나의 솔직담백한 문체가 술술 잘 읽힌다고 좋아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글자수를 많이 늘리는 기술이 없다보니 원고료 손해가 많다. 장편 한권 쓸 아이디어로 단편 하나쓰기도 하니.


하지만 가장 큰 약점은 너무 잘살았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는 굴곡이나 구질구질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그냥 엄친아 그 자체다. 그러니 내 인생을 아무리 뒤집어 엎어봐도 뭔가 흥미진진하게 해 줄 이야기거리가 잘 안나온다. 더구나 헬조선 독자들은 남들 고생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잘나가는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 점에서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많은 선생님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는 교사라는 직업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냥 흘리는 수다 한마디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고 꼭꼭 담아서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내었다. 그렇게 그 많은 이야기들을 듣다보니인생의 수많은 단면들, 천태만상의 인간성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마 조선시대 같았으면 관상쟁이가 되었을 것이다. 관상쟁이는 얼굴을 보는척 하지만 실제로는 몇마디의 대화와 표정을 살핀다.


렇게 예리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얻은 댓가는 가혹하다. 그것은 외로움이다. 나는 친구가 거의 없다. 좋은 , 멋진 , 훌륭한  하는 사람들의 감춰진 욕망이 너무 쉽게 읽히다 보니 돌아가서 구토를 하기 때문이다. 다정한 말,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결국 나를 이용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동기를 너무 쉽게 읽어버리고 몸서리를 치기 때문이다. 친구 뿐 아니라 친척과의 교류도 거의 없다. 부모 형제 외에는 삼촌이고 사촌이고 아무도 안만난다고 보면 틀림없다. 환멸과 구토를 느끼는 사람들을 상대로 의례적인 친근함, 다정함을 연출하고 앉아 있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다. 그냥 안 만나고 외로운 편이 낫다.


그런 만큼 반대로 내가 그래도 관계를 유지하는 분들은 누구나 믿어도 되는 휼륭한 분들이다. 이런 나의 까칠함은 익히 알려져 있어서 때로 인간 리트머스지라 불리기도 한다. 그게 내가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이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훌륭한 사람과 훌륭한척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쉽게 른다는 뜻, 그러니 권재원은 몰라도 권재원이 인정하는 사람은 믿을만하다는 의미니까.


고생도 안하고 인간관계도 극히 협소한 나에게 무슨 이야기거리가 있을리 없다.  나마내가   있는 이야기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30년의 교직경험, 그리고 80년대 대학가 이야기 뿐이다. 내가 그래도 나름 세파라고 하는 것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난 시공간이 딱 둘 뿐이니. 앞으로  두개의 샘에서 이야기를 계속 길어내볼 생각이다. 더구나 이 두 시공간은 그 중요성에 비해 나와 있는 이야기가 너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가 미국이나 유럽의 1960대처럼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충분히 성찰되고 승화되었다면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후보들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이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날 1980년대는 운동권 출신의 욕망덩어리들만 배출했을 뿐, 이를 소화시킨 그 어떤 철학도, 문학도, 예술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다아나믹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토록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오죽하면 만화 ‘오한강 2부’가 그 역할을 대신했고, 영화라고는 무슨 라떼 프로파간다 같은 ‘1987’ 정도만 나와 있을까?


교육도 그렇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지도 모르는 집단이 바로 교사다. 그런데 1980년대 이래 ‘교사가 주인공인’ 소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교사는 늘 주인공의 안티 혹은 병풍으로만 등장한다. 교사가 정말 우리 역사의 병풍이었는가? 이런 집단적인 모욕과 미소지니를 방치하면서 무슨 민주주의, 인권, 진보를 말하는가?


그래서 앞으로 1980년대의 이야기, 그리고 교사들, 특히 여교사들의 이야기를 많이 써 보려고 한다. 자료는 충분히 저장되어 있다. 내 머리속에. 그리고 내 머리의 성능은 상상을 초월하는 용량과 속도 그리고 보존기간을 자랑한다.


 이야기가  듣고 싶고 궁금하다면, 우선 지금 나와있는 이야기책들을 많이 구입하시기 바란다. 그래야 흥이나지. 휼륭한척 하는 나의 숨은 욕망은 “이다. ㅎㅎ

#소설

#그_여름의_끝_우리는

#명진이의_수학여행

#우리를_정의하는것은_우리의_행동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왜 말하는가? 나는 왜 쓰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