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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Sep 30. 2021

20년전에 쓴 소설 조각

20년 전에 스치듯 써 두었던 소설 조각입니다. 이 짧은 조각이 씨앗이 되어 장편소설이 되었습니다.  어떤 소설이냐고요? 제 장편은 아직 하나 뿐입니다. 아, 이 20년 전 조각에는 '그녀'라는 말을 마구 쓰고 있네요. 요즘에는 일체 쓰지 않는 말입니다.



볼륨을 조그맣게 내려 놓은 뻐꾸기 시계가 귀엽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한다. 연두색 날개를 가진 동그란 뻐꾸기가 고개를 까딱 거리며 연거푸 집밖으로 들락나락 방아를 찧는다. 

바보같이. 한번 나와서 다 노래하면 될걸, 왜 꼭 한번에 한번씩만 노래하는걸까? 그런 시계속의 뻐꾸기가 바보일까, 아니면 시험공부 한답시고 앉아서 그딴 생각이나 하는 자신이 바보일까 생각하다 보니, 선희는 자신도 모르게 뻐꾸기가 들락나락 하고 있는 것을 세고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열, 열 하나, 열 둘…. 벌써 열두시야.”

선희는 팔을 구부려 책상 위에 올려 놓고 그 위에 편안하게 얼굴을 파묻었다. 그 따스함과 그 포근함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과 함께 동그란 두 눈을 간지른다. 그런데, 자세가 그래서 그럴까? 괜히 가슴이 복받힌다. 가슴속에서 가스 충전소라도 하나 터졌는지, 무언가 더운 덩어리가 견디기 힘든 압력으로 밀려든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을 뚫고 터져나온다. 따뜻한 액체가 보드라운 두 뺨을 살금살금 간지르며 방울방울 달려 내려가고, 반쯤 감은 선희의 눈 앞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이 물방울에 굴절되어 반짝반짝 보석같이 빛을 내며 아름답게 속삭인다.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나오던 액체는 이제 강물이 되어, 그녀의 얼굴을, 포개어진 팔뚝을 미친 듯이 달려서 펼쳐 있는 공책 위에 사정없이 떨어지며 얼룩을 만든다. 이번에는 공책의 잉크가 답답한 문자의 형태에서 벗어나 무늬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떤 놈은 나비가 된다. 어떤 놈은 귀신이 된다. 어떤 놈은 회초리를 들고 있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또 어떤 놈은…. 그놈이 만든 형상을 바라본 선희는 그만 눈을 감아 버린다. 왜,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하고 많은 잉크 번지는 모양 중에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의 모습이 섞여 있담.


♥         ♥         ♥         ♥

음악 소리가 들린다. 즐거운 나의 집. 답답한 스피커에 갇혀 있기가 답답하다는 듯 어마어마한 볼륨으로 세상을 뒤흔들 듯 즐거운 나의 집이 울려 퍼진다. 그 짜증나는 전자음향 속에 갇힌 주제에 뭐가 그리 잘났다고 울어대는지.

뒤에서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한숨 소리가 들린다. 선희의 눈앞에서 그녀의 마지막 생명의 한 가닥 조차 빨아 먹고 말겠다는 듯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던 노란 OMR 카드가 예라의 힘찬 손가락에 휙 휩쓸려서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친절한 예라는 “얘, 드디어 시험이 끝났어!” 이 한마디 던져주고 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 나는 시험을 치고 있었어. 나는 지금 중학교에 다니고 있어. 난 방금 사회시험을 쳤어. ” 선희는 그제서야 자신이 여태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문득 깨닫는 것 같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아이들이 답을 맞추러 용이에게 우르르 몰려간다. 용이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비켜봐. 나 오줌싸러 간단 말이야!”를 연신 외쳐댄다. 용이는 참 이상한 애다. 왜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지금으로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용이는 모범답안이란 것이다. 적어도 반장 식이가 교무실에가서 진짜 모범 답안을 받아 가지고 올 때 까지는. 

아이들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이것 저것 물어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용이는 정작 자기 시험지에 별로 관심도 없다.  사실 용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담임도 모른다. 하긴 선희가 보기엔 용이가 담임보다 더 머리가 빨리 도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지금 선희는 사회시험이 몇 점 나올지가 궁금하다. 식이가 칠판에 답을 적고 있다. 선희는 시험지를 펴들고 한 문제 한 문제 맞춰본다. 자꾸 틀리는 문제가 나오고, 선희는 이내 시무룩한 얼굴로 시험지를 움켜 쥐었다. 이번에는 꼭 100점을 받아서 사회선생님한테 내 존재를 알리고 싶었는데. 정작 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선희는 사회 시간만 되면 괜히 움츠러 든다. 뭔가 말도 걸어 보고 싶고, 똑바로 바라보고 웃어도 보고 싶지만, 자꾸만 고개가 움츠러들고, 뭐라도 대답을 해야할 상황이 되면 자꾸 쥐구멍만 찾는다. 그래서 사회시험을 정말 잘 치고 싶었다. 사회시간에 떳떳하고 싶었다. 그러나, 또 안되었다. 이럴땐 차라리 걸려서 혼나는 애들이 부럽다. 차라리 내가 대신 맞았으면...

그런데, 용이는 사회시간에 걸리지 않는다. 다른 시간에는 엉뚱한 얘기, 엉뚱한 짓거리 하다 걸려 혼나기 일쑤인데, 사회시간에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하고 죽이맞아 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선생님을 빼면 용이를 좋아하는 선생님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희는 그래서 은근히 용이가 좋다. 선희는 사회선생님이 좋아하는 아이라면 누구나 다 좋다.


♥         ♥         ♥         ♥

용이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사흘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담임은 아주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들한테 묻고 있다.

“연이가 한번 알아볼래?”

그러나, 원래 말이 없는 연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처박고 물끄러미 앉아만 있다. 담임은 한참을 매우 슬퍼 보이는 눈을 하며 연이를 바라본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다.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짜증나. 걔는 왜 학교를 안와? 자꾸 종례만 길어지잖아?”

성격이 괄괄한 현이는 짜증을 내고, 인정이 많은 식이는 걱정은 하지만 도저히 이해 하지는 못하는 얼굴이다. 사소한 일로 엄청 잔소리를 들은 뒤 학생부 까지 같다 온 용이는 그날부로 소식이 없다. 집에도 연락이 안된다고 한다. 용이는 어디를 갔을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 사회시간에는 꼭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 봐야지. “선생님 집 나가 본적 있어요?” 라고. 안돼 선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다 선생님이 나를 그런 아이로 보면 어떻게해? 하지만 선생님의 생각도 알고 싶은걸..

“야. 너 오늘 사회시간에 질문 하나만 해 볼래?” 선희는 평소 사고뭉치인 상이에게 넌지시 부탁을 한다.

“뭐라고.?”

“선생님 가출한적 있냐고.”

“하지 뭐. 그까짓게 어렵나?”

상이는 유쾌하게 대답한다. 상이가 구박받지 않는 거의 유일한 시간인데, 마다할 리가 없지.

“그런데, 난 이해가 안되.” 상이가 고개를 가로 젖는다. “용이 새끼는 뭐가 아쉬워서 그러지? 공부 잘하고, 집도 우리집 보다 넉넉한데. 나같이 찍힌놈도 멀쩡히 잘 다닌는데. 웃기는 자식이야. 오기만 해봐. 내가 사정없이 줘 패버릴테니까.”


♥         ♥         ♥         ♥

“용!” 담임이 예의 그 카랑카랑하고 꽉 찬 목소리로 말을 던진다. “그 동안 왜 안나왔어.”

“그냥요.”

교실이 얼어붙는다. 담임도, 용이도, 아무도 말 하지 않는다. 선희는 이런 풍경 다음에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광경을 잘 안다. 선희는 그것이 두렵다.

“그냥이라니, 그게 뭐야?”

“재미가 없잖아요. 배우는 것도 없고, 다 혼자 할 수 있는건데.”

“그게 무슨 소리야?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인 줄 알아?”

“그럼 뭘 하는데요?”

“학교란 말이야.” 담임이 예의 그 친절한, 혹은 친절한 척 하는건지 분간하기 힘든 바보같은 말투로 계속 말을 잇는다. “공부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규칙과 인성, 그리고 단체 생활에 필요한 공동체 의식 등을 배우는거야. 넌 공부좀 한다고 그런건 다 우습게 보이니….”

담임의 말은 끝없이 이어진다. 답답한 저 설교, 설교, 설교. 그래도 미친 듯이 후드려 패는 그런 사람들 보다는 낳으니까, 선희는 그래도 담임이 그런대로 마음에 든다. 그러나, 불쌍한  담임은 끝내 용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설교는 끝없이 이어지고, 용이는 고개를 숙이고 듣는 척을 한다.

“그런건 필요 없는데요?” 용이가 기어코 한마디 한다.

“그럼, 넌 너 혼자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담임은 언제나 설득조다. 야단치는 대신 설득하려고 한다.

“전, 혼자서도 살수 있을 것 같은데요? 부탁 같은 것 안하고, 그러고 얼마든지 살수 있을 것 같다고요.” 용이도지지 않는다. 용이와 담임의 설전 때문에 종례 시간만 한없이 길어진다.

“야 이 새끼야. 그만하고 잘못했다고 빌어!” 현이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친다. 순간 용이의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내일부턴 잘 다니겠습니다. 그리고 반성문도 써오겠습니다.”라며 큰소리로 다짐을 한다. 덕분에 한없이 늘어지던 종례는 담임의 5분간의 보충 설교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         ♥         ♥         ♥

“와아아아!”

용이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빗자루를 들고 복도를 뛰어간다.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서 사정없이 뛰어간다. 용이는 빗자루를 검삼아 자신이 황비홍이라도 되는 듯이 마구 휘두른다. 복도는 순식간에 500년전의 전쟁터로 변한다. 용이는 이름 그대로 용맹을 떨친다.

“아야!” 용이가 휘두르던 빗자루의 자루가 그만 용이의 손에서 빠져 나와 선희의 종아리를 강타한다. 선희는 너무 아파 걸음을 못 걷고 주저 앉아 버렸다. 용이는 선희 앞으로 달려와서 그녀의 종아리 앞에 굴러 다니는 빗자루 몽둥이를 주워들고 격투기를 다시 시작한다. 먼지가 사정없이 풀풀 날린다.

칼싸움은 마침내 육박전으로 변했다. 용이는 철이, 희, 원이들이랑 엉켜서 복도를 구르고, 머리를 두드린다. 한바탕 그렇게 소란을 피우고 숨이 차는지 용이는 책상에 다리를 꼬고 걸터 앉아 숨을 고른다.

선희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용이 앞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용이의 헐떡거리는 호흡이 바로 앞에서 느껴졌다.

“저어... 용아..” 선희는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술을 연다.

“왜? 왜? 왜에에에에?” 용이가 장난스럽게 그녀를 바라본다.

“너, 정말 괜찮은거니?”

용이는 갑자기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나직하게 선희를 바라보며 속삭인다. “그게 무슨 뜻인데?”

“그냥. 그냥 물어 본거야.” 선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수 없다. 그때 별안간 용이가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또다시 교실 레슬링이 벌어지고 있는 4분단 뒤쪽으로 마구 달려간다.

“야! 기다려라! 내가간다!” 용이의 고함소리가 선희의 귓가를 슬프게 맴돈다. 반에서 머리가 제일 좋다는 용이. 공부도 정말 잘하는 용이. 그런데도 선생님들한테 귀염 받지 못하는 용이. 용이는 지금 교실 바닥을 뒹굴며 레슬링을 한다.


♥         ♥         ♥         ♥

5미터 앞. 4미터 앞. 3미터 앞.

선희는 작은 심장이 콩당거리다 못해 가슴 밖으로 튀어 나올까봐 겁이 난다. 사회 선생님은 한 손에 캔커피를 들고, 날리는 바람에 머리카락과 코트 자락을 맡긴체 그녀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춤추는 듯한 걸음걸이로.

마침내 사회선생님이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안녕하세요.” 선희는 정작 이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이 인사밖에 생각 안나는 자신이 너무너무 안타깝다.

“어. 선희구나. 아직 안갔구나.”

사회 선생님은 손만 한번 까딱 하고 틀에 박힌 말만 한 뒤 주차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정말 걸음이 빠르기도 하다.

선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얼마나 오랬동안 마음을 다지고, 다지고 한 끝에 만든 기회인데, 정말 이렇게 보내긴 싫었다.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사회의 뒷통수를 향해,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라고 외쳤다. 선희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를 낼수 있는지 놀랄 정도였다.

“헐말이 있다고?” 사회가 되돌아온다. 사회는 항상 아이들이 질문을 하거나 뭔가를 문의하면 그 아이 앞에 바짝 다가서서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는 버릇이 있다. 더구나, 허리나 무릎을 궆여서 눈높이 까지 맟춰가며. 과연 그 시선을 똑바로 바라볼수 있을까? 선희는 심장마비가 올 지경이다. 사회의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본다.

“그래, 할말이 뭔데?”

“저어..” 이제 그녀의 용기는 한계에 다다렀다. 한참을 고개를 처박고 “저어.”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눈동자 대신 운동장 바닥의 왕모래 수만 세면서.

“뭐, 말하기 곤란하면. 하지 말고. 다음에 할래?”

“아뇨. 선생님. 지금 할래요.”

“그래 뭔데?”

“저기, 그러니까, 저어, 저어, 선생님, 용이 좀 살려주세요!” 선희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닌데, 아닌데, 할려고 한 얘기는 이게 아닌데. 왜 이 말이 나오는거지? 선희는 갑자기 쏟아지는 부끄러움을 견딜수 없어서 손으로 얼굴을 싸 안고 달렸다. 축구골대를 지나 교문을 지나.

바보. 바보. 바보. 거기서 용이가 왜나와? 그렇게 기다리고, 그렇게 억지로 낸 용기였는데, 왜 그딴 말이나 나오는거야? 선희는 한없이 스스로를 야단쳤다. 그러나, 어쩔까? 이미 그렇게 되버렸는걸. 이미 뱉아버린 말인걸.

한참을 달린 선희는 평소처럼 가만히 운동장 담장에 숨어서 사회선생을 훔쳐본다. 그는 알까? 선희가 날마다 담장에 숨어서 그가 퇴근하는 뒷모습까지 다 보고서야 집에 간다는 것을. 그런데 그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5분, 10분, 15분 한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평소 같으면 벌써 가고도 남았을 시간을, 그는 그렇게 멍청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선희도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나 하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 사람은 무엇을 보는걸까?

하는 수 없이 더 기다리지 못하고 집에 가려는 선희의 눈에,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어딘가를 향해 씩씩 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용이의 모습이 보인다. 용이는 움츠린 어깨를 하고 교문앞을 지나가더니, 시장 입구에 우뚝 서서 갑자기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고 혼자 피식 웃음을 던진 뒤, 다시 어딘가로 씩씩 거리며 걸어간다. 선희는 저도 모르게 용이를 따라간다.

“야, 이년아! 눈 똑바로 뜨고 다녀!” 그 통에 급브레이크를 밟은 트럭 기사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붙는다.

“죄송합니다.” 선희는 고개를 숙인 체 용이가 간 방향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린다.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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