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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끼익
밖으로 나서니 삐걱 거리는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소리 들리는 곳을 찾아보니 수현의 등판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석은 수현의 뒷모습을 향해 발을 옮겼다. 다가가 보니 수현이 이제는 도시에서 보기 힘들어진 수동식 펌프를 부지런히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뭐해? 여기서?”
“어? 생각보다 빨리 빠져나왔네.”
“애들 술 많이 먹어서 정신들이 없더라. 그런데 웬 펌프질이야?”
“신기하잖아? 이런 게 아직도 있다는 게. 그런데 아무리 움직여도 물이 안 올라와.”
“아, 이거?”
오석이 빙긋 웃으며 바가지로 대야에 담겨 있는 물을 떠서 펌프에 들이부었다.
“어, 이런 것도 알아?”
“알고 보면 나도 절반은 촌 출신이니까. 아빠쪽으로는 경상북도 산골 출신이야.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서 등목도 하고 물장난도 하고 그러느라 이런 펌프 가지고 많이 놀았어. 이렇게 물을 좀 집어넣고 난 다음에 펌프질을 하는 거야. 자, 이제 해 봐.”
오석은 물을 다 들이 부은뒤 다시 펌프 손잡이를 수현에게 쥐어주었다. 수현이 다시 펌프질을 하자 물이 콰르르 쏟아진다. 수현이 콰르르 쏟아지는 펌프 물을 손으로 담뿍 받아 얼굴에 들이 붓는다. 보기에도 시원하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아. 아깐 어지러워 죽는 줄 알았는데.”
“어쩐지, 너 술을 자꾸 마시더라.”
“자꾸 주는 걸 어떻게 해? 특히 재훈이 그 자식. 자기가 마시던 술잔을 더럽게 자꾸 숙녀 앞에 들이밀어. 재수 없어.”
“히히. 난 마시는 척 하다가 슬그머니 삼식이 형 앞에다가 내려놓았어. 삼식이형은 자기 앞에 술잔이 있으면 누구 잔인지 따지지도 않고 막 마시거든.”
“후후. 너도 그런 잔 꾀 쓸 때가 다 있네?”
“시험 칠 때는 그 잔꾀로 어려운 문제를 찍었거든. 이 문제를 낸 선생님이 어떤 의도로 이런 문제를 내었을까 따져 가면서 말이야.”
“호호. 나도 그 짓 많이 했어.”
“누가 그러더라고.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잔꾀 잘 굴리는 거라고.”
“그 말도 맞는 말 같아. 그런데 이제 우리 뭐 하니? 늦은 밤이라 제법 쌀쌀한데. 저 방에 같이 있기도 영 불편하고.”
“빈방 있나 한번 찾아볼까?”
“그래도 될까?”
“뭐 어때? 지금 비수기고 평일인데? 어차피 빈방 우리가 좀 쓴다고 닳아버리는 건 아닐 테고. 괜찮을 거야.”
“뭐. 괜찮겠지? 나 계속 이러고 있다가는 얼어 죽겠어. 아직까진 밤에 춥네?”
수현이 부르르 떠는 시늉을 했다.
오석도 몸이 쌀쌀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외투라도 챙겨서 나올 걸 그랬다.
유원지 여기저기에 독어교육과가 묵는 곳 말고도 방갈로가 많이 있지만, 손님은 그들 뿐인 모양, 모두 불이 꺼져 있고, 손님이 들었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오석과 수현은 여기 저기 흩어진 빈 방갈로 문 손잡이를 돌리거나 당겨 보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다들 잠겨 있다.
“잠겼어.”
“여기도.”
“에이. 쪼잔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뭐 훔쳐갈게 있다고 이렇게 잠궈 놓는담?”
“그러게 말이야.”
“어, 이거.”
하지만 칠천 팔기.
오석은 여덟번째 시도만에 마침내 잠기지 않은 방갈로 하나를 찾았다. 하마트면 “앗싸!”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방 안의 친구들과 유원지 관리인, 하여간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수현에게 속삭였다.
“여기, 열렸어.”
수현이 추운지 손바닥으로 계속 팔을 문지르며 달려온다.
“어머 잘됐다. 어서 들어가. 밤 바람이 너무 차.”
“그래.”
“신발도 안으로 들여놔.”
“맞아. 그래야겠다. 그런데 방바닥이 차다.”
“그래도 바깥보다는 훨씬 따뜻한 걸? 전등도 들어와.”
“야. 30와트짜리 백열등. 정말 10년 전에 할아버지 댁 가서 본 이래 처음 본다.”
“여기 이불도 있어.”
“퍼펙이야.”
그들은 이불로 무릎을 덮고 벽에 등을 기댄 자세로 나란히 앉았다. 이제야 교외에 나와 자연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현아.”
“응.”
“너 데모하는 애들한테 왜 그렇게 적대적이야?”
“얘는. 이 좋은 분위기에 왜 데모 이야기를 꺼내? 그런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니?”
“아니. 난 적대적인 건 아니야. 그냥 무서워. 경찰한테 맞거나 잡혀가는 것도 무섭고, 또 나중에 빨간 딱지 달아서 신세 망칠까 봐도 무섭고, 지방 아이들과 달리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잔소리 듣는 것도 무섭고. 그렇다고 광주 5.18에 대해 생각 안하거나 대통령 직접선거를 바라지 않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넌 단지 무서워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거든. 오히려 뭔가 더 깊은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거든.”
“정말 예민도 하셔. 권오석. 너 사람 분석하는 취미 있나봐? 맞아. 난 데모하는 게 무섭지는 않아. 하나도 안 무서워.”
“왜?”
“해 봤으니까.”
“해 봤다고? 언제?”
“고등학교 때.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에게 12.12나 5. 18 같은 사건은 정말 견디기 힘든 충격이었거든. 그것 때문에 나는 어른들 말을 절대 안 믿는 버릇이 생겼어. 12.12, 5.18 때 찍 소리도 못한 비겁한 어른들을 어떻게 믿어? 게다가 우리 학교는 지저분한 재단이 운영하는 사립학교라 부정부패의 온상이었어. 아니나 다를까 재단 이사장이 학교 돈 왕창 떼먹은 사건이 일어났고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어. 부정부패 저지른 교장하고 이사장 퇴진하라고 농성도 하고 그랬어. 내가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몰라. 하지만 학생회장이라 이래저래 주동자가 되어야 했어.”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어떻게 되기는 뭘 어떻게 되? 박살났지 뭐. 그래도 박살나는 건 견딜 만 했어.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처음에는 절대 배신 안하고 맹세하고 어쩌고 하던 애들이 학생부에 끌려가 따귀 몇 번 맞고는 깡그리 다 나한테 뒤집어 씌운거야. 오수현이 시켜서 했어요. 오수현이 다 계획 세웠어요. 이러면서. 다행히 짤리지는 않았어. 하긴 서울대 보낸 숫자 하나 올리는게 얼마나 힘든데 아깝게 왜 짜르겠어? 하지만 덕분에 나는 애고 어른이고 간에 인간이라고 하는 것들을 아예 안 믿기로 했어. 인생관도 바꿨어.”
수현은 말 하다 보니 자신이 과거 경험을 사실과 다르게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진행된 이야기. 그대로 믿어버리는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현재가 과거를, 현실이 기억을 바꿔 버린다.
하지만 오석은 그 말을 완전히 믿는 모습이다. 눈에 호기심을 가득 채워 반짝이며 물었다.
“어떻게?”
“날 위해 살자. 그리고 하나 더. 철저히 아주 철저히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랬구나.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었구나.”
오석이 고개를 끄덕인뒤 눈을 감았다.
오석의 감은 눈 위로 학생부에 끌려가서 개처럼 얻어맞던 2년 전 학교 축제 사건이 오버랩 되었다.
“저기요, 여보세요. 지금, 무슨 생각해?”
한동안 말이 없자 수현이 눈 앞에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오석이 깜짝 놀라며 눈을 뜬다.
“아, 미안. 나도 고등학교때 비슷한 일을 겪어서. 그 생각 하다 잠깐 넋이 나갔나봐. 너무 괴로운 기억이라. 너 처럼 막 주동이 되고 그런건 아니고, 그냥 친구들이 뭔가 하는 자리에 같이 있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 얻어 맞고 짤리네 마네 하는 소리까지 들었고. 결국 친구 하나는 자퇴하고 그렇게 대충 덮였고, 난 계속 학교 다니고. 난 너무 부끄러웠어. 12.12도 광주 5.18도 다 알고 있었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슬퍼했지만 행동 해야 할 때는 무서워서 빠졌어. 그 친구 자퇴하고 나갈 때 잘 가라는 인사도 못했어. 혹시 엮이면 어떻게 될까봐.”
“자학할 거 없어. 항상 최후의 승자는 이기주의자들이야. 겉으로는 희생정신으로 무장된 그런 사람들을 칭송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야. 세상은 거짓말쟁이야. 결국 이기주의자의 손을 들어주거든. 난 그런 세상한테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속지 않을테야.”
“차라리 그렇게라도 생각 할 수 있는 네가 부러워. 난 아무 생각 없는 쑥맥에 불과하거든. 아아아아흠!”
오석이 엄청나게 큰 하품을 뱉아 내느라 하던 말을 중간에 멈추었다.
“졸려?”
“음. 좀 졸려. 하지만 자면 안 돼.”
“왜?”
“어떻게 여자랑 한 방에서 자? 부부도 아닌데?”
“후후. 이 대책 없는 순둥아. 부담 갖지 말고 누워. 내가 안 자면 되잖아? 그리고 좀 자면 또 어때? 아무 일 없으면 되는 거지. 너 혹시 아직도 공기 중으로 정자랑 난자가 옮겨 다닌다고 생각해?”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까지는 아니다. 그럼 나 좀 누울게. 실례가 되더라도 좀 봐줘.”
오석이 다시 커다랗게 하품을 하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방갈로 바닥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 졸린 게 당연하다.
오석은 잠깐 누웠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감았던 눈을 다시 떠 보니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수현의 얼굴이 보여 깜짝 놀랐다. 더구나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수현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것이다. 창문으로는 여명이 비스듬히 비춰 들어오고 있다.
“그냥 있어.”
오석이 깜짝 놀라 일어나려는데 수현이 손바닥을 뺨에 얹고 지긋이 눌렀다.
따뜻하고 작은 손바닥이다. 기분 좋은 느낌이 뺨을 통해 온 몸 깊숙하게 젖어 들어왔다.
오석은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좋은 느낌은 경험하지 못했다. 심장이 두배, 세배 속도로 달렸다.
뭐지? 이게 연애라는 걸까?
연애라는 두 글자가 오석의 머리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달렸다.
이성교제는 날라리들이나 하는 거로 주입받고 자란 덕분에 늘 선망하기만 했던 여자친구와 사귄다는 것.
그게 이런 거였구나. 이렇게 편하고 따뜻하고 행복한 것이었구나. 오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편해?”
“응. 정말 좋아. 그런데 이 상황이? 어쩌다?”
“네가 내 무릎을 막 잡아 당기더라고. 아마 베게인 줄 알고 그랬나 보지?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네 베게가 되어 주기로 했어. 그런데 너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참 귀엽네. 꼭 계집아이 같아.”
“그러지 마. 부끄러워.”
“얼굴 빨개지니까 더 예뻐. 어쩜! 어떡해! 뺨이 핑크빛이야!”
“그만 해. 자꾸 그럼 나 일어 날거야.”
“알았어. 안 놀릴게 그냥 그대로 있어.”
“그런데 수현아.”
“응?”
“너 밤새 안자고 이러고 있었던 거야?”
“응.”
“왜?”
“어제 말했잖아? 나만 안 자면 같이 자는 거 아니라고. 그래서 그냥 버티고 있다 보니까 잠도 안 오더라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간이 가고 날이 새고. 이제 와서 자는 것도 그렇잖아?모르지 뭐. 벽에 등 기대고 있었으니 나도 모르게 중간에 졸았을지도 모르고.”
이런! 오석은 안 그래도 2배속으로 뛰고 있던 심장 박동이 멱함수로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갈비뼈에 와서 부딪치는 것 같은 심장의 압력이 느껴진다. 혹시 밖으로 튀어 나와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하지만 싫지 않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아니 다시 흐르지 않게 시간이 아예 사라져버리면 더 좋겠다.
오석은 수현을 올려다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 여태까지 한 번도 여자 친구 사귀어 본 적 없어.”
“그건 말 안 해도 네가 하는 짓 보면 다 알아.”
“그래서 말인데, 나 너랑 사귀고 싶어.”
일단 말을 던져 놓고 나니 용기가 생겼다. 오석은 수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수현이 대답 대신 조용히 오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오석의 자기 머리 상태가 마음에 걸렸다. 어제 저녁에 보트에서 땀 흘리며 노 저은 뒤라 머리카락이 땀에 젖었다 마르며 떡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저분한 머리 위로 수현의 작고 따뜻한 손바닥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자꾸 느어났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수현의 손바닥이 아래로 내려와 뺨을 어루만졌다. 수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대답이 필요해? 바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