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1987년 17화 권오석 2

by 권재원

2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테이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문제는 오석이 그 분위기에서 빗겨 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분위기는 시종일관 수현과 정우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오석은 때로 수현이 옆에 자기가 앉아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수현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걸핏하면 깔깔거리며 웃었다. 오석이 지난 두 달 동안 본 수현의 웃는 모습보다 이 한 시간 동안 본 웃는 모습이 더 많을 정도다.

정우가 얄밉다. 중학교 때부터 사인해 달라는 소녀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녀석. 어떤 여자든지 만나면 한 시간 안에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녀석. 그리고 오석은 그런 녀석 옆에서 늘 부록처럼 붙어 다녔던 한심한 놈이었다. 그런데 지금 수현에게도 부록 취급이라고?

오석의 마음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랐다.

‘권정우. 넌 하느님이 내려준 재능을 잘못 쓰고 있어. 그 재능을 무기로 여자들이나 꼬시고 다녀? 그건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야 모독.’

하지만 이런 말은 그저 가슴에서만 맴을 돌고 있을뿐 성대 근처로도 올라오지 못했다.

가슴 다른 구석에서는 부끄러움이 밀려와서 오석을 꾸짖었다.

“권오석, 너 지금 수현이를 못 믿는 거냐? 믿지도 못하면서 사귄다고 행세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 아니라 욕심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항변해 보지만 부끄러움은 가차없었다.

“넌 지금 수현이가 정우의 명성과 매력에 넘어간다고 의심하고 있어. 그러니까 넌 지금 정우가 다른 여자도 아닌 형제나 다름 없는 네가 정식으로 여자친구라고 소개한 수현이를 만난 즉시 유혹하는 인간 말종이라고 의심하고 있단 말이다. 이 무슨 바보같고 유치한 생각이냐? 네가 우정과 사랑을 말할 자격이 있어?”

오석은 순간 섬찟했다. 오석은 사려깊음과 신중함을 정체성의 큰 부분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한 순간에 자칫하면 우정과 사랑을 한꺼번에 엉망으로 만들 엉뚱한 감정에 휘말리고 말았던 것이다. .

오석의 마음이 소용돌이 쳤다. 마음 속의 오석이 절규했다.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내가 왜 이렇게 바뀐거야? 내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야, 오석아. 무슨 생각해?”

이때 정우 목소리가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려온다. 오석의 마음도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왔다.

“응? 아니. 별 생각 안 해.”

“자. 너 주려고 일부러 챙겨왔다.”

정우가 가방에서 티켓과 팜플렛을 두 장 꺼내 테이블에 올리더니 앞으로 스윽 밀었다.

“어머, 이거 음악회?”

오석이 멍하게 있는 동안 수현이 눈을 반짝였다.

“다음 주에 학교 문화관 빌려서 자작곡들 발표할거야. 같이 와 주면 고맙겠어.”

오석이 대답하기도 전에 수현이 먼저 묻는다.

“그럼 피아노 곡?”

“피아노 아니면 디누가 이 세상에 있을 이유가 없긴 하지만 이번에는 피아노 독주곡 보다는 성악곡 위주야. 물론 피아노 파트가 들어가긴 하지만.”

“성악곡? 그럼 가사는?”

수현이 계속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정우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오석의 가슴에 다시 불길이 일어났다.

정우가 태연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윤리교육과에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 녀석 시에 곡을 붙였어.”

윤리교육과라고? 그렇다면 혹시? 마침내 오석이 대화에 끼어들 틈이 생겼다.

“진이가?”

“그래. 진이. 진이가 쓴 시에 내가 곡을 붙여서 발표하는 거야. 그러니까 꼭 와 보도록 해. 수현이도 같이.”

“진이가 쓴 시라면?”

슬슬 오석의 불안이 다른 종류의 것으로 바뀌었다. 이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진이가 쓴 시가 자연의 아름다움, 사랑의 설레임 따위를 노래한 것일 가능성은 0.1%도 되지 않을 것이니. 민주주의 만세, 독재 타도, 고달픈 노동자, 아아 광주여 이런 종류의 것일 가능성이 99.9%다. 아니 100%다.

그런데 정우는 오석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불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오석은 녀석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줄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정우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심지어 재미있다는 듯이 말을 툭 던졌다.

“진이가 쓴 시면 내용이 어떻겠냐? 너도 알잖아?”

오석은 순간 얼굴의 T 존을 중심으로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얼음으로 얼굴 가운데를 슬슬 문질러 대는 것 같다. 봉인해 두었던 고등학교 때의 끔찍한 기억이 다시 소환되었다. 입술이 무거워지면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이건 너무 똑 같잖아?”

오석이 간신히 한 마디를 던졌다.

“똑 같다니? 뭐가?”

“고등학교 때. 진이가 쓴 시에 네가 곡을 붙이고, 그리고 그걸 축제때 공연 했잖아?”

“아, 그거. 그러고 보니 똑 같네.”

“그 때 학생부 선생들 뛰어 들어오고, 공연 중단되고, 학생부에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맞고.”

그러자 정우가 태연하게 아니 뻔뻔스러울 정도로 여유있게 말을 받았다.

“그래. 그리고 진이 짤리, 아니 자퇴하고. 나 정학 먹는 대신 고3절반을 외국으로 투어 나가고 그랬지.”

“그, 그런데…너 지금…”

오석은 도저히 정우처럼 태연할 수 없었다. 정우한테는 그때 그 사건이 추억이나 무용담일지 몰라도 오석에겐 엄청난 상처이기 때문이다. 오석은 차마 그 다음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씹어 삼켰다.

진이와 정우는 보람있는 일을 했다고 뿌듯해 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두려움에 떨었다. 특히 선생들이며 학교 재단이 패닉 상태가 되었다. 좌경용공 학생들이 불온 시위를 조직했다, 이런 말이 상부기관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패닉 상태에 빠졌으면 주동자들 가운데 유력한 학부모의 자녀가 다수 포함되었음에도 일단 연루되었다 의심되면 무조건 굴비처럼 끌고 가서 미친듯이 몽둥이질을 했을까?

‘빨갱이’ 이 단어에는 유명 인사인 정우도, 어머니가 학부모회의 큰 손인 오석도, 교과서에도 나오고, 학력고사 정답으로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 작가의 손자인 성진도 차별없이 폭력의 피해자로 전락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그런데 저 둘이서 같은 짓을 또 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이제 상대는 학생부 따위가 아니다. 안기부며 경찰이며 보안사령부다. 이 조직들은 모두 죽음과 직결되는 이름이다. 박종철은 현행범도 피의자도 아니었다. 단지 피의자의 후배라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그 어떤 법적 절차도 없이 다짜고짜 끌려가 고문 받다 목숨을 잃었다. 그 밖에도 이들에게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다 싸늘한 의문사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석의 머리 속에 눈가리개를 하고 어딘가로 끌려가는 상황이 떠오른다. 눈가리개를 풀자 컴컴한 콘크리트 방에 책상 하나, 백열등 하나, 그리고 욕조가 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몸집이 좋은 남자 둘이 가죽 장갑 낀 손을 하고 저벅저벅 다가온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다른 한 사람은 안경을 썼다.

“나, 난 아무 짓도 안했어요.”

키 큰 짧은 머리 남자가 씨익 웃는다.

“잘 알지. 네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사실 여기 끌려온 놈들 중 뭘 잘못해서 온 놈은 없어.”

그리고 번개같이 손바닥이 날아와 오석의 뺨을 갈긴다.

“원망 할 거면 네 친구들을 원망해라. 성진, 권정우. 아니, 아니, 그 이름 말고, 거 뭐라더라 디누? 그 두 놈 공통점이 뭔 줄 알아?”

오석은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는다. 안경 쓴 짧은 머리가 오석의 목덜미를 잡고 어딘가로 끌고간다. 차갑다. 물이다. 오석은 지금 욕조 앞에 끌려와 있다. 안경 쓴 짧은 머리가 말한다.

“성진이란 놈은 독일에서 공부하다 온 놈이고, 디누라는 놈은 독일이며 오스트리아며 프랑스며 연주하러 다니는 놈이란 말이지.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 죄다 간첩들 소굴이란 말이야. 쏘련에서, 동독에서 훈련받은 빨갱이들이 간첩질 하는 그런 곳이란 말이야. 너도 알고 있지?”

“뭐, 뭘요?”

“그 새끼들 간첩 만났잖아? 그래서 불온한 시 쓰고 거기에 노래 붙이고 하는거잖아? 생각 잘 해. 네가 여기서 말 잘하면 곱게 넘어가지만, 조금이라도 숨기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는 거야.”

“모, 몰라요. 그런 얘긴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이 새끼가? 플랑크톤 좀 쳐먹어야 정신을 차릴 거야?”

키 큰 짧은 머리가 오석의 머리채를 붙잡더니 꾹 누른다. 오석의 얼굴이 물에 잠긴다. 숨을 참아 보지만 저 놈들은 오석이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오래 머리를 누르고 있다. 코로, 입으로 물이 들어온다. 숨을 쉴 수 없다.

“야, 너 왜 그래?”

이때 정우 목소리가 들린다. 오석은 간신히 고문의 백일몽에서 벗어났다. 눈을 뜨니 정우와 수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안색이 창백해. 식은 땀도 흘리고. 숨도 가쁘게 쉬고.”

수현이 손수건으로 오석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덕분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오석이 정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 진이 시에 곡을 붙였다는 건, 설마. 그러니까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우 네가 데모가, 아니 운동 가요를 작곡 했고 그걸 문화관에서 공연하겠다는 거야?”

“뭐, 그런 셈이지. 기왕이면 운동 가요 보다는 정치적인 칸타타라고 불러줘. 양심적 칸타타, 혁명적 칸타타, 참여적인 칸타타, 하여간 이렇게.”

“뭐야? 결국 데모가잖아?”

이 말에 갑자기 수현이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렸다. 포크가 엉뚱하게 물잔으로 다이빙을 해버렸고, 물방울이 몇개 수현이 얼굴에 튀어 올라 마치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테이블 보 위에도 물방울들이 불규칙한 얼룩 무늬를 만들며 스며들었다.

모처럼 수현이 아니라 오석과 정우의 대화가 이어졌다. 경제학의 제1법칙이랄까? 정우와 수현이 계속 이야기 하는 상황을 끊어버리고 싶은 오석의 욕망은 이루어졌지만 그 결과 역시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오석은 목소리가 떨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스치듯 말을 던졌다.

“진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러자 정우가 단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오석의 질문의 내용과 아무 상관없이 어쩌면 오석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어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당연하지. 내가 왜 변해? 세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변해? 그건 불가능하지. 넌 안 그래? 너도 그 때 같이 했잖아?”

같이 했다고? 맙소사. 오석은 온 몸이 후들후들 떨렸린다. 정우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정우는 내가 당연히 자기랑 같은 생각을 했다고 믿고 있었구나. 그래서 당연히 앞으로도 그렇게 같이 할 거라고 믿고 있구나.

사실 그렇게 믿더라도 정우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오석이 자기 본 마음을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제라도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 놓아야 한다.

오석이 최대한 목소리를 건조하게 만들어가며 말했다.

“그때 난 그냥 너희가 친구라 같이 있어주었을 뿐이야. 난 네가 그런 일 하는 거 바라지도 않았어. 내 뜻을 물어봤다면, 네가 내 말을 들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난 반대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그런 게 아니야.”

그러자 여태까지 가볍게 대꾸하던 정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마치 아주 난해한 4성 푸가 악보를 처음 마주칠 때 같은 그런 표정이다.

그런 무서운 표정으로 정우가 마치 공기를 씹어먹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오석은 드디어 하고 싶었던 말을 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친구라면 상대가 아무리 불쾌하거나 성내더라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설사 그것때문에 관계가 멀어지더라도 언젠가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말을 해야 한다.

오석은 숨을 깊게 들이 마신 뒤 정우의 눈동자를 향해 또박또박 한 글자씩 힘을 주어가며 말했다.

“넌 음악가야. 그냥 음악가도 아닌, 천재 음악가 디누야. 세계 곳곳에 네 음악을 사랑하고 네 음악으로 아름다운 영혼을 일깨운 사람들이 있어. 난 네가 예술을 아름다움이 아닌 다른 것의 도구로 만들지 말았으면 해. 난 네가 더 훌륭한 연주를 하고 더 훌륭한 곡을 쓰고 그런 데만 집중했으면 해. 그게 네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야. 집회, 시위 현장이 아니라 콘서트 홀에서 음반에서 멋진 연주로 세상에 기여하는 네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싶어.”

하지만 오석의 이 정성 가득한 조언이 정우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정우가 눈동자에서 불길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벌컥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나 더러 이 비뚤어진 세상에서 이득이나 취하는 그런 무리들의 더러운 돈이나 받고 그들의 비뚤어진 취향이나 만족 시키라는거야? 내 음악이 이 그릇된 세상이 마치 전혀 그렇지 않은 척 꾸미는데 사용되는 액세서리가 되라고? 못 해. 강동석이 정명훈이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못 해. 물론 그 사람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하여간 난 그런 사람들과는 달라. 난 음악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얼빵함을 예술가의 순수함으로 위장하는 미련한 음악가 따위는 되고싶지 않아. 내가 원하는 세상이 있고, 꿈이 있어. 그래. 난 혁명을 원해. 그래서 내 음악이 혁명의 선전나팔로 쓰인다 하더라도 아무 유감없어. 아니 내가 앞장서서 나팔을 불겠어. 그러니 네 말마따나 데모가라고 한들 수십곡이라도 못 만들 이유가 없어.”

“모순, 모순. 죄다 모순이야.”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정우의 열변을 차갑게 자르고 들어왔다. 수현이다.

정우는 물론 오석도 깜짝 놀라 잠시 굳어버렸다. 오석이 아는 한 정우가 뭔가 강하게 주장할 때 누군가가 그 말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경우는 이게 처음이다.

정우가 난생 처음 하는 경험에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저 “모순? 무슨?” 이렇게 말할 뿐이다.

수현 역시 일단 질러는 놓고 수습이 안되는지 정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팬심으로 만났다가 싸움을 걸었으니 적응 안되는 것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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