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장편소설 디누 2부 1권 1화

by 권재원



양해의말씀

1부를 다 읽은 독자들은 지금 분노와 호기심, 초조함이 뒤섞인 묘한 감정으로 이 책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읽게 해놓고 “본편은 이제 시작입니다. 새로 구입하세요”라니. 작가로서 면목이 없다.

변명하자면, 나도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1부를 쓴 건 아니었다. 3년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작업이 15년이나 걸리다 보니, 그 고된 시간을 보상받고 싶다는 유치한 마음에 머리말을 길게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결국 책 한 권 분량이 되어버렸다.

이유야 어찌 됐건 독자들에게 벽돌 책 한 권 분량의 머리말을 읽힌 셈이니, 본편은 그보다 훨씬 두꺼워야 예의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벽돌 책 두 권 분량으로 준비했다.

‘세상에서 제일 긴 머리말’을 읽은 독자들의 가장 큰 불만도 반영했다. 독자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건 디누의 어린 시절인데, 정작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는 불만 말이다.

그래서 2부에서는 철저히 디누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1부의 화자였던 나를 무대 밖으로 내보내고, 시점을 1인칭에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꾸었다.

1부의 '나'는 이제 오석이라는 조연으로 격하된다. '정우의 친구 2' 정도의 비중이다. 가끔 시간이나 장소의 비약을 메우기 위해 등장하겠지만, 희곡의 지문처럼 필요한 설명만 하고 곧바로 물러날 것이다. 내 눈에 비친 정우가 아니라, 정우의 삶 그 자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은 할 것이다.

기왕 양해를 구하는 김에 하나 더 말씀드린다. 2부는 1984년 11월부터 시작한다. 1부가 1984년 1월에 끝났으니, 그 사이 10개월은 통째로 생략된다는 뜻이다.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이다. 그 10개월은 정우와 나 모두에게 너무나 비참한 시기였고, 나는 그 시간을 회상하고 싶지 않다.

1부 말미에서 보았듯 1984년 1월, 정우는 공연을 망쳤고 명성을 잃었으며 아녜스마저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이 곧 터졌다. 미우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당시 미우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가장 찬란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깊이 있는 해석과 우아한 외모를 겸비한 덕분에 '프린세스'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지네트, 안네소피 무터와 함께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 3인방으로 꼽혔다. 그중에서도 미우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치면 2000년의 힐러리 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미우가 북미 투어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하필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왼손에 골절상을 입었다. 한창 전성기의 연주자에게 이것만으로도 치명적인 부상이었는데, 골절을 치료하던 중 더 큰 문제가 발견되었다. 10만 명당 0.3명꼴로 발병한다는 희귀한 골육종이었다.

일반인이라면 초기에 발견해 수술로 완치할 수 있었던, 불행 중 다행인 경우였다. 문제는 그 손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섬세한 연주를 해야 하는 미우의 손이었다는 점이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종양은 완벽히 제거되었다. 하지만 수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손상된 손가락의 근육과 인대, 관절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미우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재활에 매달렸지만, 결국 세계적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는 정점을 찍으려던 바로 그 순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아녜스와의 이별, 완전히 망친 공연, 그리고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던 누나의 갑작스러운 은퇴. 정우에게는 세계의 절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정우를 돌볼 처지가 못 되었다. 미우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첫사랑을 잃어가고 있었다.

재활에 나서기는 했지만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던 미우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성격까지 변했다. 나는 미우가 내게 했던 부탁을 기억하고 있었다.

"설사 내가 널 밀어내더라도 절대 떠나지 마."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미우에게 힘이 되어주려 애썼다. 하지만 스무 살도 안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우는 도움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쳤고, 때로는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말들을 쏟아냈다.

결국 미우는 요양을 겸해 미국 콜로라도로 유학을 떠났고, 전공을 연주에서 티칭과 프로듀싱 쪽으로 전환했다. 지금도 음악계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옛 라이벌이던 아녜스 역시 연주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두 사람이 가끔 만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나와 미우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도 연락조차 쉽지 않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았다. 나는 그 시기를 기억하고 싶지 않고, 실제로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굳이 글로 드러낼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냥 '엉망진창이었던 시기'로만 이해해주기 바란다.

정우도 나도 그해 10월이 지나서야 겨우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혹시 그 사이의 일들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알아서 기록하든 쓰든 하기 바란다.

어쨌든 1984년 11월 어느 날부터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이 벽돌 두 권을 다 읽고 나면 독자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완성한 이야기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다.


2021년 어느 가을, 권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