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4일 소동을 바라보며
언제부터인가 기초학력이라는 화두가 자꾸 교육계에 던져진다. 최근에는 "한 명도 포기 하지 않는 교육"을 내세우며 이른바 진보교육감 진영 쪽에서도 '기초학력'을 무척 강조하고 있는 중이다. 기초학력을 강조하는 것이 '진보'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즘은 기초학력이 대세다.
특히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여 '사흘간의 휴일'이 되었다는 기사에 달린, "3일 쉬는데 왜 사흘이라고 거짓말 하느냐"는 댓글이 논란이 되면서 다시 '요즘 것'들의 기초학력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사흘이 3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과연 기초학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논란은 이런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안 가르치면서 무슨 토론이며 창의성 수업이냐? 지식전달, 암기, 시험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교육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에 꽤 힘을 실어 주었다.
사실 기초학력은 교육계의 보수진영에서 진보진영의 '혁신교육'을 비판하기 위해 끄집어 낸 비장의 카드였다. 한 마디로 "혁신학교는 공부 못한다."라는 논리를 내세우기 위해 혁신학교가 '기초학력평가' 점수가 저조하다는 자료를 들이 밀었던 것이다. 물론 혁신학교들이 대체로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그 중에서 특히 열악한 학교들이 많이 지정된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말이다. 어쨌든 이 논리가 꽤 먹혀서 어느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항의시위 때문에 혁신학교 지정이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교육논란이 그렇듯이, 이 기초학력 논란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을 빼먹고 시작하고 있다. 그건 바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규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의 상태가 정말 논란이 될만한 상황인가 실증적으로 파악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인지,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쏟아지는 대책들은 결국 교육 현장에 '덤'으로 던져지는 '잡무'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이런 식으로 그때 그때 던져지는 각종 대증요법들로 이미 누더기가 되어 있다. 이 누더기 위에 기초학력보장이라는 누더기가 하나 추가되는 것이다.
그러니 기초학력 대책 타령 하기 전에 다음의 두 물음에 대한 답을 먼저 구해보자. 제발
1. 기초학력이란 대체 무엇인가?
2. 그렇다면 그 기초학력이 점점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 다음에야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질수 있게 된다.
3. 기초학력이 저하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4. 그렇다면 그 대책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사흘 4일 소동을 보고 대뜸 요즘것들의 기초학력을 문제삼고, 요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꼰대소리를 하기 전에 기초학력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그 다음에 요즘 젊은이들이 사흘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는 이유가 정말 그 기초학력의 부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따지지는 것이다.
이를 기초학력 말고 요즘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는, 그런데 그것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뜻밖에도 너무 적은 -사실 기초학력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너무 관심이 없다-것에 비유해 보겠다.
그건 바로 기초체력이다.
이 경우에도 먼저 기초체력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과거 체력장을 생각하고 턱걸이를 몇 개나 하는지, 몸일으키기를 만약 학생들이 턱걸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기초체력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말한다면 어이없어 보일 것이다.
기초체력은 영어로 Basic Fitness로, 신체를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적절한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신체의 능력이다. 이것을 각각 건강체력, 운동체력이라는 두 차원으로 분류한다.
건강체력과 운동체력의 구체적인 요소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지표와 측정방법은 신체가 적응해야 하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또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라 계속 갱신된다. 가령 1970년대만 해도 '체지방률' 은 '신체충실지수'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지표로 사용된다.
이렇게 기초체력은 분명한 영역과 지표에 따라 일관성있게 측정되고 있다. 또 그 영역이나 지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적어도 기초체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만큼은 공유한다.
그렇다면 기초학력은?
놀랍게도 뚜렷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기초학력이라는 말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면서 논란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말로는 기초학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논문들이 영문제목으로는 저마다 서로 다른 용어를 쓰고 있는데 그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몇개만 꼽아 봐도 이렇다.
Basic learnig Skill, Basic academic Skill, Basic learnig Ability, Basic scholastic ability, Basic Academic Achievement, Basic Competency, 심지어 academic readiness 까지. 이 모든 것들dl 전부 '기초학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다.
여기에는 1) 지금까지의 학습 성취가 다음 단계 학습을 할 수 있는 수준(Level)에 도달했는지, 2) 효과적인 학습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기능들을 보유하고 있는지의 의미, 3) 학습에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각각은 굳이 옮기자면 기초학업성취, 학습기능, 학습소양(리터러시) 등으로 상당히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이 각각의 의미를 더 자세히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이 '기초학력'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이기는 어렵다는 것만 지적해 둔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기초학력'을 내걸고 저마다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리터러시를 기초학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3R과 거기서 파생되는 기초적인 기능을 기초학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심지어 '민주시민성'이라 부르는게 더 타당할 것 같은 개념을 들고 기초학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끼리 아무리 논의해 본들 어떤 합의점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로 "이것이 기초학력이다."라고 자기 주장만 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을 다 모으면 그냥 "한국교육은 총체적으로 망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게 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교육당국은 이런 상황이 되면 더 정밀한 논의를 이끌어가기 보다는 그냥 모든 의견을 다 채택하여 포괄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결국 '기초 학력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모든 것'을 하겠다는 정책이 나온다. 그리고 그걸 법제화하여 "~~ 특별법"을 만들어 교육과정 위에 엎어씌울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모든 것을 다 하는 정책'은 '아무것도 안하는 정책'이다.
그러니 '기초학력' 문제를 제기하고, '기초학력 보장'을 말하기 전에 물어봐야 한다.
당신이 말하는 기초학력은 대체 저 위에 나와 있는 여러 개념들 중 어디에 해당되는 것입니까?
그 다음에야 그 문제가 정말 심각한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대책이 나오고, 심지어 그게 '법'으로 제정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나간 것이다. 그 이전의 수많은 교육관련 특별법들이 그랬듯이.
(더 상세한 논의는 추후 시간이 나는대로 펼쳐 나가겠지만, 수업과 행정업무에 찌든 평교사라, 저 위에 계신 분들처럼 눅진하게 연구하고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 아무리 바쁘다고 죽는소리를 하더라도 긴 텀을 두고 불규칙하게 업데이트 되더라도 독자제현의 너그러운 양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