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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Oct 12. 2024

행복

무탈한 하루의 중요성

언제부터 정의를 찾아보는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필요한 대부분의 단어는 대학생이 되기 전에 다 배웠다고 생각했고, 항상 말을 하다 보니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행복이 무어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행복(幸福). 다행 행에 복 복자를 쓴다. 복된 좋은 운수이자,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또는 그러한 상태. 


행복이 무어냐는 물음에 사전적 정의는 모르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몸으로 느끼고 있다. 누군가는 독특하거나 특별한 것을 생각하겠지만 - 예를 들어, 해외여행이라던지, 좋은 집이라던지, 갖고 싶은 물건을 산다던지. 물론 이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 나에게 행복은 일상이다. 그저 흘러간 하루. 무탈하게 흘러간 하루.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약 3년 전, 전세사기를 당한 다음이었다. 이전에 있던 집에서 이사를 오면서, 보기 좋게 전세사기를 당해버렸다.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되어있었다. 기분 좋게 이사를 오고 난 뒤, 짐을 풀고 다음 날. 집이 경매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 계약을 해본 것이라 중개사가 등본을 보여주고 확인시켜줘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바로 중개사를 찾아갔지만 중개사는 집주인이 이자만 내면 경매는 취소된다고, 돈이 많은 사람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다음날 가니 출근을 하지 않고, 며칠 뒤에는 공인중개사 사무실 자체가 사라졌다. 홀라당 날라버린 것이었다.


완전히 당한 거구나. 당장 달려가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고소를 진행하였지만 온갖 곳이 시한폭탄이었다. 나 말고 주변에서 전세사기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족의 보금자리였어야 할 집은 무엇보다 우울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차라리 서울과 멀어지더라도 다른 곳을 알아봤더라면.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괴롭히고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커다란 공안에 나를 넣어두고 세상이 축구경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깜깜한 곳에 갇혀 어디로 튈지 모른 채 이리저리 부딪히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되었지만, 당시에 그 일을 겪으면서 행복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모두가 큰 흔들림 없이 무탈한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보다 큰 행복은 없다. 모두가 감당 가능한 범주 내에서, 회사에서 조금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집에 돌아와 서로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 떠들고, 티브이를 보거나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모든 것의 기저에 깔려있어야 할 행복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일지도 모르겠다. 무탈한 하루가 없이는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디서 쓰다 버린 건전지를 넣은 것처럼,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무언가를 사더라도 그 행복이 짧고, 행복이 짧으니 의미 없는 소비를 해버린다. - 실제로 이렇게 산 것들이 꽤 많았다. - 무탈한 하루의 중요성이다.


최근에는 조금 다른 행복을 찾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순천에서 알게 된 친구가 하는 카페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굉장히 재미있는 장소인데, 그곳에서 있다 보면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참 신기한 일이다. MBTI도 E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잘 걸긴 하지만, 상대가 별로 원하는 것 같지 않으면 말을 잘 끊는 눈치정도는 가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말을 잘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안부를 묻고, 상대에 대해 묻고, 자신에 대해 말하고. 그러다가 공통관심사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가게를 돌아다니는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이런 무탈한 행복들은 사람을 지지하는 중요한 받침대로 작용한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무탈한 행복들이 뭉치면 사람이 흔들리더라도 지탱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행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무탈한 일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지, 그 행복은 오래갈 수 있는 행복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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