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성경이라면 재즈는 일기장 같은 느낌이다.
살면서 음악하고 별로 떨어져 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그렇듯 피아노를 배우고, 시간이 지나 기타를 배우고, 그러다가 일렉기타를 치고, 후에는 색소폰도 잠깐 불었다가 최근에는 드럼까지 배웠다.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느린 데다가 듣는 것만 듣는 타입이다. 똥고집이라는 소리다.
고집이 세다는 말처럼 한 분야를 듣게 되면 그 분야만 듣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분야는 재즈였다. 바이닐을 모으던 시기에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던 앨범이 재즈 앨범이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도 있었고, 개인적인 성격 탓인지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집중이 생각보다 잘 안되기 때문에 재즈 연주곡 위주로 듣게 된 이유도 있었다.
그때는 재즈를 제대로 듣고 싶어, 파주 헤이리에서 진행하는 재즈토크에도 참여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는데, 거기에 참여하면서 좋은 노래들과 아티스트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재즈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 때마다 피아노를 더 배우지 않은 것을 꽤나 후회했다. 빌 에반스의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이라던지, 아트 블래키 & 재즈 메신저스의 Moanin' - 보비 티먼스의 피아노가 진짜 좋다 -, 델로니어스 몽크의 Don't blame me 등을 들을 때면 그 후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때부터 피아노를 쳤다면 거의 십 년을 넘게 쳤을 텐데, 그랬다면 악보를 보고서 내 맘대로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경지까지는 가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당시의 나는 피아노 악보를 보는 게 힘들어서 - 조표와 으뜸음도 이해하지 못했다. 샵이 하나 붙을 때마다 피아노 치기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그만둔 뒤로는 다시는 악보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기타를 잠시 배울 때에는 악보를 보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 타브악보로 이루어져 있어서 피아노 악보와는 많이 달랐다.
아무튼 다시 재즈 이야기로 넘어와서, 클래식도 좋아하는 곳이 많이 있지만 재즈라는 단어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너무 좋다. 클래식이 성경이라면 재즈는 일기장 같은 느낌이다.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화를 사고 싶지 않아서 미리 말하자면, 클래식도 연주자나 지휘자에 따라 원곡을 재해석하고 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곡과 많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재즈에 있어서 그 변화의 폭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나와있는 수많은 재즈 스탠다드 곡들 중 가장 유명한 곡을 하나 뽑아보자. 개인적으로는 Fly me to the moon을 좋아하는데,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곡을 제외하고 정말 수많은 버전의 곡들이 나와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버전으로는 새로운 버전의 곡을 들을 때마다 그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데, 1965년 토니 베넷의 Fly me to the moon을 들으면 연주도 그렇고 보컬 또한 다른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토니 베넷의 2021년 마지막 콘서트의 Fly me to the moon을 굉장히 좋아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상태에서도 곡을 완창 하는데 95세라고는 생각도 못할 성량과 기교를 보여준다.
처음에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하나를 듣게 되면 그 장르나 곡만 주야장천 파야 만족하는 사람이다 보니, 한 곡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을 찾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재즈는 정말 파도파도 끝이 없다. 유명한 재즈밴드 이외에도 유튜브에서만 활동하는 재즈밴드들도 많기에 더욱 찾기도 쉽다. 다만 아무래도 취향을 많이 타는 장르이다 보니, 처음 듣는 사람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 스탠다드를 찾아 여러 커버곡을 들어보며 입문하는 것이 진입장벽을 많이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