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필요로 하는 것만 기억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기억을 훑어보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한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 앞에서 어떤 아이와 풍선을 가지고 노는 기억이다. 사진으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분명 나는 존재했지만, 어째서인지 그 이전의 기억만큼은 어둠 속에서 전구 스위치를 찾는 것만큼 손에 잡히지 않는다. - 애초에 거기에는 스위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 빵집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빵을 집는 집게와 트레이가 보이고, 2단으로 된 진열장에 위에는 식빵류가 불투명 비닐에 담겨 진열되어 있다. 정면으로는 피자빵, 설탕이 듬뿍 묻은 하이토스트 같이 간식으로 먹을만한 달달한 빵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통로를 따라가면 아이스크림 냉동고 - 였는지 음료 냉장고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 가 있고, 카운터가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빵집에 갈 때면 갓 구운 빵냄새와 설탕이 가득 묻은 하이토스트의 맛이 머리에 맴돌아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대체로 식빵만 집어서 계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속으로는 하이토스트를 그렇게 먹고 싶었다. 설탕에 버무려진 갓 만든 빵은 어른이 된 나도 유혹을 참기 힘들다. 어쨌든, 그러한 빵집 앞에서의 짧은 기억일 뿐이다.
기억은 필요로 하는 것만 기억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반복적으로 숙달을 하여 기억하는 방법이 있지만 어떠한 기억들은 사진을 찍은 듯 그대로 뇌의 어느 한 구석에 박혀 완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것들보다 더욱 선명하게 머리에 남는다. 이런 기억들에는 어떠한 '주제'가 달린 견출지가 붙어있어, 그 기억을 찾으려고 머리를 헤집으면 가장 먼저 손에 집히곤 한다. 혹은 일상에서의 어떠한 행동이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내가 빵집을 들어가는 행동같이.
그 기억 속에서 나는 한 아이와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다. 날아다니는 풍선 뒤로 해가 뉘엿 지고 있고,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여름이다. 집에 돌아갈 만큼 늦은 시간이지만 그 풍선놀이가 썩 재미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의 상가에서 전등 빛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어머니께 혼났던 것만큼은 기억한다. 어머니는 나를 찾기 위해 온 아파트에 나를 찾는 방송을 내보냈고, 그럼에도 내가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하던 와중에 내가 집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혼자서 생각할 때에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빵집 아이였던 것 같은데, 그 이름도, 생김새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도 얼굴이 흐리게 처리된 누군가와 웃으며 풍선을 날리며 놀았을 뿐이다. 그 부분만큼은 장면이 아닌 감정으로 기록되어 있다. 순수한 재미. 지금같이 원색적이고 짧은 재미가 아닌 행위에서 오는 즐거움이 많았던 때였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와 함께 풍선 하나를 쫓으며 뛰어다녔던 것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지는 지금에서야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이후 나는 어머니에게 된통 혼이 났고, 밖에 나갈 때에는 꼭 어디를 가겠다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 이전부터 나의 '작은' 일탈은 꽤 흔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더 어릴 때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1킬로가 넘는 성당에서 집 앞의 산까지 돌아다니다가 잡혔던 전적도 있었다는데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기억보다는 '이전에 그랬다.'라는 다른 사람의 말로써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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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오래된 기억은 중학교 때의 기억이다. 당시 나는 옆반에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 당시에는 남녀합반이 아닌 분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새하얀 피부에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 검은 뿔테안경이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까무잡잡하고 마른 당시의 나로서는 넘보는 것조차 실례일 것 같은 느낌의 아이였다. 옆 반이다 보니 원래대로라면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없어야 정상일테지만, 어째서인지 그 아이와 접점이 생겨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갔다가 자기 전까지 그 아이와 열심히 문자를 나누며 이야기를 했던 것이 그 당시의 일과였는데,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 기간 중 어느 날 새벽에 해당한다.
어떤 문자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의 나는 그 아이와 나누던 모든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 대게 모든 남자아이들이 그러하듯 - 이야기는 새벽이 되어도 끝날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끝내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 아이가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는 새벽 5시가 넘도록 비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고, 나는 그날 엄청난 두통과 함께 학교를 결석했다는 것이다. 새벽의 졸음을 참고 몽글몽글한 상상의 나래를 돌아다닌 것의 결말치고는 생각보다 나쁜 결과였지만, 그 아픔 속에서도 그 아이와 남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비밀을 나누었다는 것이 행복했다. 비록 그 이야기들이 으레 하는 '너만 알고 있어'하고 말하는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할지라도, 그 비밀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더 멜랑콜리한 기분을 주었다.
이 기억의 키워드는 비밀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비밀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머릿속에는 짧지만 그때의 두통이 밀려온다. 실질적 통각은 없는 기억 속의 통각. 그리고 이후 곧바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 이후 그 여자아이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해 고백하지 못했고, 그 아이와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고등학교를 가면서는 아예 연락도 끊겨버렸고, 이제는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사를 하고 싶다. 어쨌든 그 감정은 그때 아니면 느끼기 어려웠을 감정이었고, 난생처음 겪었던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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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이렇듯 온전한 것 같으면서 조각나있다. 그 기억은 분명히 존재하나 세부사항이 빠져있다. 잔재의 결핍. 나는 인간은 필요하지 않은 기억을 불완전한 그 자체로 기억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일렁거림이 인다. 가끔은 그 불합리함에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 또한 어쩌면 나 자신에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한동안 대상 없는 화를 분출하고 나면 다시 한번 그러한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화내도 소용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망각할 것은 아침 안개가 걷히듯 살며시 사라진다. 소리도, 흔적도 없이. 우리는 소리도, 흔적도 없는 그 기억의 살인마가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모른 채로 무방비하게 기억을 쌓아간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 왜 남아있는지 모르는 단편의 기억들을 가지고 다시 삶을 추억할 것이다. 기억은 그렇게 쌓여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