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미카엘' 같은 멋진 세례명을 갖고 싶었다.
우리 집은 천주교 집안이다. 기억이 남아있을 무렵부터 성당을 다녔던 기억이 있고, 항상 밥을 먹을 때에는 기도를 드리고 밥을 먹는다. 나의 세례명은 '정하상 바오로'로 한국 순교 성인이라고 하셨는데, 어렸을 때에는 이 세례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미카엘'같은 멋진 세례명을 가지고 싶어 했었는데, 할아버지가 정해주신 세례명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 독특하기도 해서 지금은 마음에 든다.
어렸을 적 성당에서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자세히 무엇을 배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성경을 공부했던 것 같기는 한데 초등학생 때라 그것보다는 공부가 끝나고 먹는 간식을 더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나중에 영화나 소설에서 성경을 모티브로 한 해석들이 이렇게 자주 나올 줄 알았으면 어렸을 적에 성경을 미리 읽어볼 걸 그랬다. -
고등학교는 천주교 재단의 대안학교였기 때문에 한 달에 몇 번은 미사를 나갔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며 그마저도 안나가게 되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미사를 가지 않더라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일 년에 꼭 가야 하는 중요한 날 - 부활절, 성탄절 혹은 기일이 있는 경우 - 만 성당에 나갔다. 부모님은 종교라는 것이 누가 믿으라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억지로 보내려고 하지 않으신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내 발로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최근 고모부가 돌아가신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 '성당에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작정 집과 가까운 성당으로 가 고해성사를 보았다. 거의 10년 동안 고해성사를 보지 않았기도 하고 주일미사도 빠진 데다가, 누가 대상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악행과 막말들의 용서를 구했다. 보통 고해성사를 보면 보속으로 특정 기도문을 몇 번씩 하라고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시는데, 내가 간 성당에서는 신부님이 기도문을 보속으로 주지 않으시고 미사에 잘 참여하라고 하시고는 끝났다. 아마 기도문을 보속으로 주기에는 10년이라는 공백이 너무 길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종교라는 무거운 단어를 키워드로 선택한 것은 갓 시작한 나의 신앙생활을 고백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아직 종교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어렴풋이 느껴지는 무언가만 있을 뿐. 다른 신자들과 비교하면 나의 믿음이 그렇게까지 굳건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종교라는 것이 나의 생활패턴 기저에 깔려 최소한의 도덕적 바리케이드가 되어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당에 다시 나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엄청 못된 짓을 한다거나 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도덕적 우월감에 취하고 싶어서 종교를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을 뿐이다.
다시 내가 성당에 나가게 된 이유로 돌아와서, 고모부가 돌아가셔 장례식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천주교 특성상 장례식에서는 연도라는 위령 기도를 하는데, 이 연도라는 것이 기도문의 내용도 그렇지만 창의 형식으로 불러지기 때문에 옛날에 상여꾼들이 내던 소리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위해 주님께 대신 기도하는데, 이 노랫소리가 참으로 슬프기도 하면서 뭔가 죽음 이후에 정말로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더불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하는 기도의 느낌도 났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라지고 난 뒤 그 허무하고 슬픈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가고, 일생동안 계속 드문드문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 그때마다 슬픈 감정에 젖어드는 것은 돌아가신 분들도 그다지 원하지 않을 것 같다. -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만 해도 허탈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기도 한다.
아마 내가 성당에 다시 나가게 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확실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가다 보면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종교가 무엇이다라고 정확히 결론 내릴 수는 없겠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따라가다 보면 존재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내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