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는 결국 이미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군대에 가기 전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촌 누나와 샹젤리제의 한 화장품 가게에 들를 일이 있었다. 누나가 둘러보는 동안 향수 코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검은 병에 심플한 글씨로 블루 드 샤넬이 써져 있는 향수를 알게 되었다. 처음 향을 맡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한 기분과 '내가 이런 느낌의 사람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 첫 향수였다. 당시에는 돈 없는 배낭여행객이었기도 하고, 아직 여행이 많이 남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테스트 용으로만 살짝 뿌리고 나왔지만 그 향기는 며칠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뇌리에 깊숙이 박히는 향기였다.
향기는 사람의 이미지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 매끄럽고 검은 병 안에 들어있는 액체가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사람 내면의 무언가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로 듣는 것이 아닌 코로 맡는다는 것과 사람을 물에 빠트려 죽일 수 없다는 것은 다르겠지만.
그리고 그 향수는 한 달 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 손에 들어왔다. 향수 코너 앞에서 얼쩡거리며 계속 테스트지에 향수를 뿌려대고 있는 내가 눈에 밟혔는지, 사촌 누나가 예쁘게 포장한 블루 드 샤넬을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아본 지 오래됐기 때문에, 갖고 싶어 했던 향수를 선물 받은 기분은 잊고 있던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오만 원권 지폐를 찾은 것처럼 깜짝 놀랄만한 기분이었다. 향수를 뿌리자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설렘이 일어났다. 좋아하는 사람을 마주 보는 것만큼 짜릿한 기분이 향기를 맡을 때마다 은은하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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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에 관심이 있던 것은 당시뿐만이 아니었다. 블루 드 샤넬 이전에 내 머릿속에서 향수의 0번을 차지하던 것은 휴고 보스의 향수였다. 정확히는 향수인지 스킨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큰 아버지가 한국에 오셔서 묵고 가시면 한동안 그 방 안에서 세련된 향기가 났다. 말 그대로 멋있는 냄새였다. 시원하지만 중후한 향기. 문제는 그 향수가 말 그대로 중후했고, 당시의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는 것이다. 대게 많은 친구들이 그러하듯 여자애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던 시기였기에, 무슨 자신감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선물 받았던 그 향수를 뿌리고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었다.
나는 분명 멋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1교시가 시작하기도 전에 당시에 친하던 한 여자아이가 아저씨 냄새가 난다고 한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 세련된 향을 맡고 아저씨 같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속을 스쳤지만, 지금에서야 생각을 해 보면 그 향수는 타겟 자체가 나이대가 좀 있는 남자였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당연하게도 중학교 2학년의 남자아이에게는 당장에라도 바에 앉아 시가를 태울 것 같은 남자나 정장을 차려입고, 비즈니스 가방과 함께 공항을 런웨이로 삼아야 할 것 같은 남자의 이미지는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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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블루 드 샤넬로 넘어와서,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는 내 방에서 그 향수 냄새가 진하게 배길 정도로 자주 뿌리고 다녔다. 이번에는 휴고 보스 마냥 안 어울리지는 않았다는 듯이, 만나는 사람마다 어떤 향수인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조건 향수의 덕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향수에는 그만큼의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뿌리고 다닌 덕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블루 드 샤넬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쓰는 사람도 많았고 선물로 주는 사람도 많았다.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어쩌겠나, 나만 쓰라고 만든 향수는 아니거니와 결국 알아봐 달라 한 것도 나이기 때문에 안타까워할 수는 없다.
가끔 향수를 뿌린다는 것은 이미지를 소모하는 것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내가 바라왔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대신에, 많은 사람들이 그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미지의 공유를 원하기도 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 상대도 그 이미지를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 복사되는 것은 썩 기분 좋지는 않지만, 나 또한 누군가의 이미지를 복사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니 어쩔 수 없다. 그냥 받아들여야지. 적어도 내 주변에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로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성가시면서도 뿌듯해지는 느낌이다.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수많은 향기 중에 고르는 것은 성가신 부분에 해당한다. 한 번에 끌리는 향을 찾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찾아낸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이 바라는 이미지와 연결될지는 또 모르기 때문이다. 또 향수가 없어지거나, 내가 나이가 들며 이미지가 점점 바뀌어감과 동시에 다시 향수를 찾아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확실히 블루 드 샤넬은 내가 쉰 살이 되더라도 쓰고 싶은 향수는 아닐 것이다. 그때에는 그때의 나에게 맞는 향수를 찾아야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결국 삶이란 나에게 맞는 향을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찾고, 거기에 맞는 향수를 뿌리는 것. 손목, 목의 경동맥 등에 뿌려 맥박과 함께 멀리멀리 흩뿌리며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를 가볍게 전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