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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Oct 08. 2018

28. 나는 짐덩어리일뿐이에요.

Lorde, 'Liability'

이 글은 Lorde의 'Liability'를 듣고 생각난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Lorde, Liability 듣기 바로가기♬





날이 화창한 3일 전 일요일 오후, 그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아니, 책을 읽고 있었다는 말보다는 보고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는 책을 보고 있었다. 눈은 책에 일렬로 새겨진 문장들을 따라 한 줄, 한 줄 내려갔지만 그건 단순히 책이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뿐, 정작 그의 생각이 멈춰 선 곳은 문장을 따라 내려가다 보인 한 구절이었다.


다만 이건 육체의 뒤섞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린 서로의 불완전한 육체를 맞대는 것으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우린 다만 서로의 불완전함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거다.


내가 사랑한 것은 그 사람과 육체를 맞대는 행위 자체였을까, 아니면 그 사람의 불완전함이었을까.

그는 머리 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억지로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 탁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책을 세게 덮었다. 균형이 맞지 않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커피잔이 요동쳤다. 그는 커피 잔을 감싸 쥐고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어 바로 옆에 나있는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웠다. 그는 바깥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그녀를 처음 사랑하게 된 것은 불완전함 때문이었다. 처음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한없이 위대한 사람이었다. 동경의 대상. 빈틈 하나 없을 것 같던 그녀가 보여주었던 불완전함이 그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정말 운이 좋게 - 아니면 그녀가 그의 마음을 알아준 탓인지 - 그녀와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녀의 다른 불완전함을 보았다. 물론 그녀도 그의 불완전함을 보았다. 처음에 보여준 불완전함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만이 볼 수 있는 그녀의 불완전함과, 그녀만이 볼 수 있었던 그의 불완전함은 완전히 맞물려 소리 없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그들은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매일 만나 사랑을 나눴다. 단순히 육체의 뒤섞임이 아닌 더욱 높은 차원의 정신적인 교류 - 였다고 그는 생각했다. - 를 통해 그들은 더욱 서로를 닮아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던 둘은 조금씩 이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었고, 그는 우회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둘의 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는 상처를 받았다.

그가 둘의 문제에 대해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녀는 답답해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이 가진 불완전함이 둘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 더욱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면 그녀는 항상 먼저 헤어지자고 이야기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사과를 했다. 무엇이든 자신의 탓으로 보였다. 그의 불완전함이 그녀를 완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인가 그녀가 바람을 폈을 때도, 울면서 먼저 전화해 솔직히 말한 그녀를 달래주었다. 그것 조차 그에게는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완전함을 그 혼자 끌어안았다. 그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원인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그는 그녀에게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건넸다.

"내가 너에게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나는 항상 미안해하고, 너는 항상 화나 있어. 나는 너를 웃게 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너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본다면 그건 무리일 것 같아. 우리는 앞으로도 이럴 거고, 우리들의 믿음 또한 그걸 지속시킬 만큼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너에게 짐덩어리일뿐이고, 너는 나에게 과분해."

 

지금은 그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그녀는 적잖게 놀랐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를 붙잡았지만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그는 둘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했고, 그것은 결국 그의 불완전함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그 불완전함조차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그리고 불완전함은 더 이상 상대를 그의 세계에 끌어당기기에 부족했다.


결국 둘은 헤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는 새 남자 친구가 생겼지만, 그녀는 새 남자 친구의 모든 모습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마찬가지로 그녀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며 솔직히 이야기했다.


"지금의 남자 친구는 너처럼 해주지 않아"

"그렇구나"

"나는 네가 그리워. 너는 어때?"

"나도 그리워"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우리"

"글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 짧은 침묵

"계속 네가 생각나면 어떡하지?"

"그건 지금의 남자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연락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간혹 가다가 그녀의 소식을 친구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친구들이 놀릴 때에 그녀의 이름이 잠깐 등장해도, 그는 웃으면서 장난으로 받아칠 수 있었다. 가끔씩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는 이미 돌아가기에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돌아가더라도 둘은 다시 똑같은 이유로 헤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불완전함을 나눠갖는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그녀와 불완전함을 나눠 가졌는지 궁금해졌다. 수 없이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을 나눴음에도 그 불완전함이 정말로 서로에게 양분되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한들, 그가 모든 불완전함을 혼자의 것으로 생각한 순간부터, 그 방법은 쓸 수 없게 되었다.


"커피 더 드릴까요?"

그는 친절한 영업용 미소를 띤 종업원에게 조용하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컵을 살짝 밀었다. 끌린 흔적을 따라 고동색 원목 테이블 위에 물길이 났다.


커피가 리필되는 동안 그는 자세를 고쳐 턱을 괴었다. 녹아버린 얼음도 다시 채워지고, 커피도 다시 가득 찼다.

그는 잔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 끝으로 톡, 건드려 떨어뜨렸다. 고개를 돌려 다시 창 밖을 보았다. 불완전함에 대해 더 생각해보려고 집중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그는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것 또한 그 사람의 한 부분으로서 그 사람이 돌아가게 만드는 작은 부품이었다. 문득 불완전함이야말로 완전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역설이지만, 그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고, 이해했다.


그는 다시 책을 펼쳤다. 그는 처음 시선이 머물었던 그 문장부터, 책을 읽어 내려갔다.




Lorde(로드)는 길거리를 지나다가 발목을 붙잡히기에 딱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퇴폐적이면서도 모든 감정을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헤어진 사람은 위로를 받고, 잘 교제하고 있는 사람은 헤어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Liability'가 들어있는 앨범 <Melodrama>는 전체의 곡들이 하나로 묶여 막힘없이 진행되는 느낌을 준다. 로드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하면서 제작한 앨범이라 그런지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들과 이별 후에 겪은 감정적 변화가 모두 얽혀있는 이 앨범은, 타이틀 곡 하나보다 전체 곡의 흐름을 신경 쓴 모습이 역력하다. 그녀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를 노래로 끌어올릴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한 때 브루노 마스 <24K Magic>, 켄드릭 라마의 <DAMN.>과 함께 2018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아쉽게도 그래미 어워즈는 영예는 브루노 마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크게 아쉽진 않다. 그녀는 <Pure Heroine> 이후 4년의 공백기라는 시간을 거쳤음에도 곧바로 차트 상위권으로 돌아올 정도로 역량 있는 가수라는 것을 입증했고, 그녀는 아직 23살이다. 그녀가 <Melodrama>에서 보여준 노래와 감정들은 이후 그녀의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녀는 앞으로도 더욱 놀라운 노래들을 통해 상처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어 만져줄 것이다.


+)


2017년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파크에서 열리는 Outside land Music and Arts Festival의 영상을 보면 CD를 틀어놓은 듯한 라이브와 팬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 노래는 3:00 부터 시작한다.

https://youtu.be/hzMeVxaWO-8






글쓴이 / 하고(HAGO)

소개    / Crate Digger, Analog Nerd. 빠른 세상에 휴식이 될 수 있는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Instagram / @everybody_digs_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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