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필요는 우리가 채운다

by 도우너

책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가 택배를 보내왔다. 상자에는 친구가 직접 그린 꽃이 담긴 액자와 함께 엽서 한 장이 들어있었고 그 엽서에는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직접 채우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간혹 어떤 느낌이 강하게 치고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 엽서를 봤을 때 그랬다. 이 문구가 나의 등대가 되리라는 직감.

다소 비장한 어투의 저 말은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채운다’는 명제는 꼬인 데 없이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흔히 쓰는 말로 자급자족. 이게 말이 쉽지 삶에서 의식주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이라도 스스로 충족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매일 신는 양말 하나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삼시세끼 먹는 김치도 담글 줄 모르고, 내 한 몸 누이는 공간도 만들지 못한다. 대신 이것들을 돈을 주고 산다. 건설회사가 만들어 준 건물에 은행이 빌려주는 돈으로 내 잠자리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평생 돈을 갚기로 했다. 돈으로 남의 노동력과 기술을 빌려 내 일을 해결하는데 익숙한 현대인에게 자급자족이야말로 퇴화한 본능이자 구사하기 어려운 기술이기에 엽서의 저 말이 퍽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건 온 힘을 다해 익숙함을 거슬러 그 방식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책방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 공간에 누가 오든 안 오든 상관없이 나는 책 읽고 글을 쓰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었다. 내 필요를 스스로 충족하는 방식이라 생각했고 그 목적에만 충실해도 월세가 아깝지 않겠다 싶었는데 그 다짐이 무색해지는데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그것만 빼고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하고 있었다. 책방을 하면 좋아하는 책을 쌓아두고 여유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애매한 짓들을 벌이느라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책방 하기 전보다 책을 더 못 읽었고 그렇게 성실한 사람도 못되어서 무슨 일을 시작하면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였다. 사두고 안 읽은 책과 읽다가 만 책이 읽은 책 보다 더 많았다. 책방에서 내 필요를 잊고 말았다. 더 심각한 건 그걸 잊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책방지기가 되어가던 나날 속에서, 문득 벽에 붙여놓았던 저 엽서가 나를 일깨웠다. 나의 필요는 무엇이었으며 이 공간에 오는 사람들의 필요는 무엇인가. 결국 책을 ‘잘’ 읽는 것,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이 필요만 충족해도 충분한 것을 난 무엇 때문에 그리 분주했는가.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핑계 대지 말고, 읽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자신에게 읽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스스로 맹모삼천지교의 맹모가 되어 자신에게 그런 환경으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책방에 오는 분들에게서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 집에 사놓고 안 읽은 책들이 쌓여있어서 자책감을 느낀다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되었다. 다들 실제로 그렇게 시간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휴대폰 배터리가 다 소진된 사람이라는 우스개처럼 우리가 휴대폰에 쏟는 시간을 보면 우린 꽤 충분한 시간이 있다. 단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사에 관심을 쏟느라 독서는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쉬울 뿐이다.

읽고 싶은 인문고전 벽돌책이 있는데 혼자 시작하자니 읽다가 흐지부지 될 것 같으면 계속 미루지 말고 주변에 그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아 함께 읽기로 했다. 그 책을 읽지 못하는 합당한 이유를 찾으며 시간이 없다고 중얼거리지 않기로 했다. 혼자 배를 저어 강을 건널 힘이 없다면 조정 경기처럼 함께 노를 저어 가면 된다. 시간은 없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고 혼자 하기 힘들면 같이 하면 된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직접 채우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친구의 엽서는 지금도 책방 입구에 붙어 흔들리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지금도 모든 독서모임의 시작에 앞서 저 명제 앞으로 돌아가 생각한다. 이것은 누구의 필요인지, 그 필요는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모임의 방식으로 우리는 이걸 직접 채울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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