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시작합니다

모임의 목적 정하기

by 도우너

여러 사람이 모이는 형식을 일컫는 다양한 이름이 있다. 동아리, 써클, 스터디, 클럽, 커뮤니티, 집단 등등... 각자 나름의 정의와 차이가 있겠지만 여럿이 모여 하나의 단위가 된다는 본질은 같다. 책방에서는 가장 친숙하고 부르기 쉬운 우리말인 ‘모임’을 주로 사용한다. 국어사전에는 ‘어떤 목적 아래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이라고 모임을 정의한다.


사람이 모이려면 일단 깃발을 꽂아야하는데 여기에 무어라 쓸까. 이것이 모임의 목적이다. 목적(Purpose)은 어떤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궁극적 지향점이다. 여러 사람이 오고 가고 읽는 책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어야 뿌리가 단단한 모임이 된다. 목적은 목표(Goal)와 다르다. 목표는 구체적인 성과나 지점이다. 책 100권 읽기라는 '목표'를 정할 수 있지만 100권을 읽는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저 숫자 채우기에 불과할 수 있다.


책방에서 처음 독서 모임을 시작할 때 ‘다양한 책을 함께 깊이 읽고 나누자'는 것이 깃발에 적은 문장이었다. (진짜 깃발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여기에서 방점은 '다양한'이었고 일명 잡독모임이라고 불렀다. 장르와 주제를 불문하고 다양한 책읽기의 목적은 독서의 경계를 확장하여 하나의 관점에 갇히지 않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이 목적이 명확했기에 그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었다. 읽는 책들이 어떤 카테고리에 갖혀 독서편식을 강화하지 않도록 했다. 일본 하이쿠도 읽고 천문학 책도 읽고 고전소설도 읽고 재테크책도 읽었다. 독서리스트가 중구난방 맥락이 없어보이지만 맥락을 갖지 않은 것이 중요했다. 뷔페에서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먹어봐야 내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잡독모임을 7년정도 지속했다. 그 모임에서 읽었던 책들과 경험들이 나중에 책방에서 다른 독서모임들을 기획할 때 많은 토대가 되었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이 좋다. 목적이 먼저고 사람을 모으는 건 그 다음이다. 그 내용이 공명정대한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대한 생각》에서 그 책의 집필목적을 언급하며 사람들이 정수기앞에서 나누는 일상의 대화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길 바란다고 했다. 이토록 사소한 목적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 목적이 흐린 상태에서 모임을 하다보면 모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많은 독서 모임이 처음의 목적을 잊은 채 친목과 수다 모임으로 전락한다. 초창기에는 열심히 모이다가 차츰 흐지부지 되는 모임들이 있다면 목적에서 멀어진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모임지기는 구성원들에게 목적을 매번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책방에서 하는 독서 모임들을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모임마다 목적이 명확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목적들이 나의 필요에서 시작했기에 늘 다잡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목적이 혼자만을 위한 것일 때도 오래 가지 못한다. 필요를 인식하고 목적을 정하고, 공동체에 제안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모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목적의 방향과 명료함이 모임의 지속력을 결정한다.


이처럼 목적이 정해졌으면 이제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을 모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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