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는 일

by 도우너

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공간의 협소함 때문에 ‘좋은’ 책을 ‘잘’ 선택해야만 하는 숙명을 마주하게 된다. 수많은 출판사에서 이목을 끄는 신간들은 끊임없이 나오기에 어떤 책을 들이고 어떤 책을 뺄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 좀 줄어드나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책방을 운영하면 할수록 더 심해졌다. 책방이라는 곳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책을 파는 일처럼 보이지만 책방지기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책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렇게 책방으로 오게 된 책들의 미래는 이제 손님에게 달려있다. 손님들이 원하면 책을 권해드리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독서 모임에서 읽는 책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저 판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읽자고 제안하는, 더 적극적 요구이다. 식당에서도 주방장 추천 요리는 맛있어야 하는 것처럼 적극적인 요구에는 적극적인 책임이 따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독서모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난 용감했다. 그때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세상에는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못 읽을, 너무나 많은 책이 나와있으니 이 책들 가운에 좋은 책을 찾는 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싶었다. 근데 이게 문제였다. 좋은 책을 고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넘쳐날 때 선택은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사람마다 ‘좋은’의 기준도 다르고 한 사람 안에서도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30대에 읽었을 땐 별로라고 생각했던 책이 이제와서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하고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책이 다른 책방에서는 책방지기의 강력 추천 책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경우도 본다. 책을 주로 선택하는 호스트의 취향과 관점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에 내가 느낌 장점이 다른 사람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기에 책 선택은 조심스럽다.


그리하여 독서모임 10년이 된 지금에 와서야 책 선택은 날이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었다. 책을 고르는 일이 마냥 설레고 즐거웠는데 이제는 즐거움보다 부담감이 더 크고 선택하고 나서도 선택을 여러 번 의심해 본다. 나의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심리학 이론이 있으니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이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두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의 이름을 딴 이론인데 이들의 논문에 따르면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논리적 사고, 문법, 유머 감각 등을 테스트한 결과, 하위 25%에 해당하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실력을 평균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는 초보자일수록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능력을 과신하고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반면, 능력치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할 수 있기에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오히려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더닝크루거 곡선을 보면 초반에 자신감 수치가 급상승했다가 조금 지나 급하강한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골짜기를 빠져나오면 자신감이 완만히 다시 올라간다.

나 역시 더닝 크루거 곡선의 어딘가에 있다. 지금은 곡선의 바닥을 찍는 지점은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십 년 후에 보면 지금도 초보 구간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계속 책의 바다에서 열심히 노를 저으며 방향을 찾아가는 방법들을 터득하는 중이다.



이런 책을 찾습니다




Read much, but not many books.
많이 읽어라. 그러나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


독서모임에서 선택하는 책들의 큰 방향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에 담겨 있다. 책방의 벽에도 붙여놓고 책갈피로도 제작해서 책에 꽂아드리는 문구이다. 읽고 나서 중고서점에 팔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책, 한 번 읽고 나서 몇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 아끼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

다도를 즐기는 분들이 찻잎을 우릴 때마다 새로운 향이 느껴지는 차를 내포성이 좋다고 표현하시던데 책도 내포성이 좋아야 가치가 있다. 풍성하고 깊이가 있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이 나는 책을 찾는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주제가 있는지, 인간 존재나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연결되는 메시지가 있는지 등등...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책들을 주로 '고전'이라고 부르지만 동시대의 책들 중에서도 나중에 고전이 될법한 책들을 찾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재미로 한번 읽을 용도의 책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물건도 오래 두고 쓰면 쓸수록 좋은 명품이 있듯이 책도 그렇다. 옆에 두고두고 보면서 삶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들을 찾는다.



질문을 던지는 책


이런 책들은 한마디로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좋은 책은 질문을 남긴다. 비단 책뿐만 아니라 좋은 예술 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보는 이에게 질문을 남긴다. 그 질문은 작가가 품었던 '화두'일 터이다. 화두는 불교에서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 하는 문제를 뜻하지만 요즘은 일상적인 삶에서도 개인이 풀고자 하는, 혹은 몰두해 있는 무언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화두는 주제에 따라 철학자의 질문이 되기도, 과학자의 가설이 되기도, 또는 종교인의 믿음이 되기도 하고 예술가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책을 만드는 작가 역시 시작은 화두가 아닐까. 화두에 대한 작가의 성찰은 책으로 남고 좋은 책은 작가가 품었던 화두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좋은 책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독서모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 찾을 수 있도록 독려하는 장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친다면 그는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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