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발품을 팔아야한다

by 도우너

좋은 물건을 사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옷을 잘 입는 친구를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쇼핑을 갔다가 2만보를 걸었다. 내 눈에는 그 옷이 그 옷 같아 보이는데 마음에 드는 옷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돌아다닌다. 더 놀라운 건 2만보를 걷고 나서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옷을 안 샀다는 사실이다. 친구의 패션 감각이 타고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시간을 들인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종 맛집 주방의 뒷켠으로 들어가 비법을 캐는 장면을 봐도 그렇다. 국물에 비린 맛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들을 지지고 볶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신선한 재료를 공수하기 위해 새벽 시장에서 깐깐하게 장을 보고 시장 상인들이 혀를 내두르는 장면이 꼭 나온다. 좋은 결과물들은 대부분 이런 수고스러움을 거친다. 책을 고르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책도 발품을 팔아야 좋은 놈을 고를 수 있고 결과가 좋다. 내 나름의 책 선택을 위한 발품 파는 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출판사와 작가 팔로잉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홍보를 위해 SNS 계정을 열심히 운영한다. 문학동네, 민음사, 열린책들 같은 대형 출판사 몇 곳, 특색있고 좋은 책들이 나와서 눈여겨 보았던 작은 출판사들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SNS 계정을 팔로잉하면 신간과 작업 중인 책, 책 행사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 팔로잉이란 단어를 썼지면 풀어서 말하면 계속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책 관련된 곳들을 많이 팔로잉 하다보니 알고리즘에 의해서 책과 관련된 정보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띄고 이런 식으로 새롭게 알게 된 출판사들이 많다. 물론 출판사의 광고를 100% 믿지는 않는다. ‘이번에 새로 출간되는 책이 좀 별로입니다’라고 말하는 출판사는 하나도 없다. 자기들이 만드는 모든 신간은 매번 최고의 감동을 갱신한다. 당연히 그들이 광고하는 모든 책이 좋을 수는 없기에 정보를 여러 경로로 크로스체크 해보는 것이 좋다. 겉만 반질반질하고 속은 비어있는 경우도 있고, 이름모를 출판사에서 나온 허름한 책인데 속이 꽉 찬 책도 있다.


2. 신문사 책소개


신문사마다 책소개가 되는 요일이있다. 한겨레 신문은 매주 금요일, 조선일보는 매주 토요일에 책 소개가 실린다. 난 지면신문을 구독하지 않아서 일주일에 한번 온라인에서 몇몇 언론사의 책소개를 검색해본다. 신문의 책소개를 추천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신간 정보에 대한 데이터가 많은 전문가에 의해 한번 필터링 된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는 책이 나오면 홍보를 위해 언론사로 책과 보도자료를 보내는데(보내지 않는 출판사들도 있다) 이 책들을 각 신문사의 담당 기자나 독서전문 필자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별하여 지면에 소개한다. 내가 여러 분야의 책 소식을 두루 알지 못하기 때문에 출판사의 단순 홍보를 넘어 신문에서 신뢰도 높은 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사회적으로 어떤 주제의, 어떤 책들이 주목받고 있는지 트렌드도 파악할 수 있다.



3. 서평가들의 추천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믿고 보는 서평가들이 있다. 로쟈 이현우, 고전연구자 고미숙, 독서일기를 쓴 장정일, 영화평론가 이동진 같은 분들은 여러 지면의 칼럼이나 매체를 통해 꾸준히 좋은 책을 소개하신다. 좀 어려운 책들이 있을 수 있지만 도전해볼 만하다. 이런 분들 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을 꾸준히 읽어온 공력있는 사람들, 전문가들의 추천은 대체적으로 믿을 만하다. 그런 분들의 책이나 칼럼을 참조하면 수준 높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다. 요즘은 책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북튜버들도 많다. 유튜브나 쇼츠 영상을 통해서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몰랐던 책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도서협찬을 받아서 소개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과대포장이 된 책들도 있다. 이를 감안해서 참조해야 한다.


4. 다양한 사람에게 물어보기


위에서 언급한 서평가들 외에도 다양한 경로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 인생 선배로 삼고 싶은 분들이나,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으면 요즘 읽고 있는 책이나 추천할만한 책이 있는지 인터뷰처럼 물어본다. 오래 책을 읽어온 애서가들이나, 삶의 방향이 비슷한 사람이 소개하는 한 권의 책 또한 위에서 전문 서평가들이 알려주는 책만큼이나 양질의 정보이다. 최근에 책방에 모 대학을 정년퇴직하신 노 교수님이 놀러 오셨다. 그 교수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최근에 인상적이었던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전쟁같은 맛’과 ‘H마트에서 울다’를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두 책 모두 예전에 다른 매체에서 소개하는 것을 슬쩍 보긴 했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다. 아마도 교수님의 오랜 외국 유학 생활 때문에 그 책들이 더 마음 깊이 와닿으셨던 모양이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자신의 경험치로 인하여 좋게 여기는 책들이 달라지고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그만큼 나의 세계도 확장될 수 있다. 취향이 좋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공간 한 구석에 사장님의 책장이 있다면 유심히 살피며 보물찾기를 하기도 한다.


5. 좋은 책은 좋은 책을 부른다


이 방법은 쉬운면서도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책 선택 방법이다. 어떤 책을 읽다가 그 책에서 파생되는 책을 다음에 읽는 것이다. 일명 ‘고구마 줄기 독서법’인데 책 속에서 소개하거나 언급되는 책, 혹은 그 책을 읽고나서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서 탐색한 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책들을 계속 연결해서 읽는 것이다. 아니면 책을 읽다가 이 작가의 세계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사람이 쓴 책은 다 읽어본다던지 이 사람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 혹은 스승의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다가 가와이 하야오의 책을 읽어보고, 그리고 카를 융의 책을 읽어보는 식이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부른다.



6. 직접 책을 보러 서점에 간다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발품 파는 법에 대해 구구절절 쓰고 보니 위에 언급한 방법들은 죄다 '손품'이라고 하는거 맞겠다. 좋은 책을 고르는 가장 확실한 발품은 직접 서점에 가보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은 편리하지만, 표지나 리뷰만으로는 책의 실제 분위기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반면,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다양한 책을 한눈에 비교하고, 직접 손에 들고 넘겨보며 의외의 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서점에 가면 먼저 관심 있는 분야의 코너를 찾아보자. 그리고 눈길이 가는 책들을 몇 권을 골라, 차례와 서문, 본문 일부를 빠르게 훑어보는 것이 좋다. 이 과정에서 글의 흐름, 문장 스타일, 저자의 관점이 나에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다. 종종 대형서점의 신간 코너나 베스트셀러 코너를 구경하기도 하고 중고책방이나 다른 책방에 가서 서점 큐레이션을 참조하기도 한다.


좋은 책을 선택하는 방법에는 위에 열거한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과 경로가 있겠지만 좋은 책을 고른다는 건 결국, 나를 더 넓은 곳으로 안내해 줄 문을 찾는 일이다. 문을 열었을 때,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날 수도 있고, 익숙하지만 새로운 언어로 나를 다시 설명해주는 거울을 만날 수도 있다. 그 문이 단번에 찾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을 고를 때 너무 완벽한 선택을 하려 애쓰기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한 권 한 권이 결국 내 독서 습관과 지식을 채워주는 밑거름이 된다. 여기 저기 기웃거려보고, 이 문 저 문 두드리고, 힘들게 왔는데 여기가 아닌가벼 라는 시간들이 누적되면 희미하게, 하지만 점점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문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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