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다음에 읽을 책을 논의하다보면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언급된 책 제목을 바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보고 리뷰를 살펴본 뒤 한줄평 중에 부정적인 것들을 재빠르게 읊는다.
"그 책 재미없다는데요?"
"그 책 별로라는데요?"
"그 책 번역이 엉망이래요."
한줄평들을 살펴보면 같은 책을 보고도 최악과 최고라는 평이 공존한다. '한페이지 읽고 덮음' 아래에는 '제 인생책입니다ㅜㅜ'라는 평이 나란히 있다. 이럴 때 긍정보다는 부정에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이게 된다. 인간은 생존본능상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그래서 그런 정보들을 알려주는 사람들은 마치 엄청난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정보전달자라도 된냥 부정적인 정보를 빠르게 전달한다. 언뜻보면 정보에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같지만 수동적인 방식이다. 내가 알아보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한줄평으로 포기해버린 것이다.
한줄평엔 장점도 있다. 많은 독자들이 어떤 지점에서 감동하거나, 실망했는지를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남겨놓기에, 책을 보지 않고도 독자들의 반응을 빠르고 직관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나 난이도, 호불호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맥락에서,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툭툭 던지는 한줄이 책의 가치를 얼마만큼 말해줄 수 있을까? 그게 단서는 될 수 있지만 책을 고르는 결정적 잣대가 되면 곤란하다. 책을 선택할 때 뿐만이 아니다. 모든 일상에서 이런 섣부른 판단들을 경계해야 한다.
새로 문을 연 식당에 먼저 다녀온 사람이 저기 맛이 없다라고 말하면 그 곳은 정말 맛이 없는 걸까.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에 대해 누군가 그 사람 성격 이상하더라라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 이상한 사람일까. 어딘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거기 볼 거 하나도 없더라 라고 하면 거긴 정말 볼게 없을까.
맛없다던 그 식당이 내겐 단골식당이 되기도 하고, 성격 이상한 사람이라고 전해들었던 사람이 내겐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볼거 하나도 없다던 여행지는 내겐 가족을 데리고 또 가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칭찬 일색에 별점이 높은 책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리뷰는 출판사의 마케팅, 서평단, 팬덤 등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앞서 책 발품 파는 법에서 언급한 유명한 서평가들이나 전문가들의 추천 역시 참조할 질 높은 정보가 될 수는 있지만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지금도 온라인서점에서 판매지수도 높고 한줄평엔 지금도 찬사가 넘쳐나는 책 중에 내가 꼽는 최악의 책이었다. 객관적 최악이 아닌 그저 내 기준의 최악일 뿐이다.누군가의 별 다섯개가 나의 별과는 다를 수 있다. 타인의 단편적인 감상이나 판단을 내 선택에 정보의 일부로 참조하는게 아니라 객관적 사실로 적용하면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게 많다.
어떤 대상의 좋고 나쁨을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거나 부정적이나 긍정적 인상에 휩쓸리는 건 내 삶의 폭을 작게 만든다. 책은 더 넓은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가는 나침반이다. 남의 나침반을 보고 가는게 아니라 내 손에 쥐고 있는 나침반을 보며 직접 걸어가며 나의 지도를 그려야한다. 운전을 할 때도 네이게이션에만 의존하다보면 스스로 공간지각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친다. 책 선택에 대한 주체성을 찾는 과정도 중요한 공부다. 그 과정에서 실망스런 책들도 만날 수 있지만 보물을 찾기 위해 겪어야하는 시간이다. 스스로 읽고, 다시 선택하고 내게 유익한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안목이 생기고 타인의 말을 걸러듣는 지혜가 생긴다. 어떤 책을 읽을지만큼이나 어떤 책을 읽지않을지에 대한 기준도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 이건 편식하는 독서와는 또 다르다. 확산적으로 읽는 독서의 시기를 거치고 관점이 생기면 더 공부하고픈 분야가 생긴다. 거기에 집중하면서 수렴하는 독서의 단계에 접어든다. 이 때 자연스레 읽지않을 책들은 걸러진다.
나는 오늘도 책을 검색하며 온라인서점의 한줄평을 재미삼아 살펴보며 부정에서 부정을 보지 않고, 긍정에서는 긍정을 보지않는 연습을 한다. 부정의 늪에서도 가능성을, 긍정의 천국에서도 한계를 보는 것. 책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다 그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