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선택했다면 이제 함께 읽을 좋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좋은 책만큼이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독서모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가 있어도 요리사가 잘못 요리하면 캐비어로 알탕을 끓이는 꼴이다. 어떤 일이든지 목적이 있을 때는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물론 이걸로 단순히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단언할 수는 없다. 사람은 맥락에 따라 이곳에서는 좋은 사람이어도 어떤 곳에서는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사람은 독서모임이라는 맥락에서 모임을 유익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이들이다. 아무래도 알고리즘에 의해 다른 독서모임의 공지를 자주 보게되는데 요즘은 인터뷰를 하고 독서모임 멤버를 뽑는 곳들도 종종 있다. 독서모임도 저렇게 힘들게 들어가야하나 싶으면서도 모임을 꾸리다가 안 맞는 한 사람 때문에 고생해보면 저런 마음이 들때도 있다. 그리고 면접을 보는 다른 독서모임에 내가 지원하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그간 독서모임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람을 많이 접하다보면 패턴이 보이고 어떤 부류로 묶이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스럽게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게 선입견이 될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예측되는 상대의 패턴에 따라 어떤 마음의 준비나 대응을 하게 되기도 한다. 독서모임과 상관없는 장소에서 다른 일로 만났지만 우리 독서모임에 왔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그런 사람들이 단지 상냥하고 성격이 잘 맞아서가 아니다. 상대를 대하는 태도와 말들 속에서 느껴지는 삶의 방식, 진실성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런 분들은 책이라는 매개안에서도 그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게 마련이고 함께 하는 멤버들이 좋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끔은 헤드헌터가 되어 독서모임 멤버를 찾기도 한다. 좋은 독서모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특성을 적어보면 이렇댜.
첫째, 무엇보다 타인의 말을 잘 듣는다. 잘 듣는다는 것이 엄청난 능력이라는 것을 독서모임을 하면서 배웠다. 그리고 나 역시 경청이 잘 안된다는 슬픈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보통 독서모임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 같지만 그보다 경청이 우선이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의 이야기가 설사 자신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수용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가 있다. 릭 루빈은 그의 책 <창조적 행위>에서 "듣는다는 것은 불신을 유예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내 판단을 밀어두고, 불신을 미루며 깨끗하게 타인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 이게 가능하다면 경청은 그저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라 인격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와 인격은 비례하지 않지만 경청은 인격과 비례하는 것 같다. 그들의 경청은 단지 조용히 말을 안하고 있는게 아니라,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고 환대이다.
둘째, 말이 장황하지 않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중구난방으로 뱉어내지 않는다. 주제와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말로 시간을 채우지 않는다. 어떤 말을 꺼내도 책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풀어낸다. 말이 너무 많거나 적지 않고,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대화의 목적에 맞는 '지금, 여기'에서 나의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말한다. 말하는 패턴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패턴과도 연결되는 오랜 습성이기에 모임에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독서모임하면서 가장 처신하기 애매할 때가 말이 많은 분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끊고 원래 주제로 끌고 올 것인가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언어가 명확한 분들을 만나면 기쁘다. 대부분 말이 장황한 분들은 행동도 분주하고 경청도 잘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동안 겉으로는 듣는 척하지만 자기 할 말을 생각한다. 말을 잘 하는 분들은 잘 듣는다.
셋째, 새로운 시각이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 자신만의 삶의 렌즈로 책을 읽고, 그 렌즈를 빌려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해준다. 사람들이 다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과 관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관점이 생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지간히 공부하지 하고 나서야, 한 분야의 공부가 임계치를 넘어서야 생기는 것이 자신만의 관점이다. 이런 관점이 있는 분들은 독서모임을 단순한 감상 나눔의 자리를 넘어 지적 교류와 감정의 확장으로 이끌어간다. 심지어 사람들이 나누는 내용과 반대 의견을 제시할 때도 듣는 이가 기분 나쁘지않게 말한다. 모두가 같은 책을 읽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이런 부분은 미처 보지 못했구나" 하며 깨닫게 되면서 내 관점을 확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어떤 책이든, 사람이든 배우려는 자세로 접근한다.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 열린 사람은 흡수하려 하고 닫힌 사람은 방어하려한다. 전자는 모르면 알아보고 다르면 확인해보고 아는 것은 반가워하는 자세로 접근하지만 후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부정적인 부분만 찾기에 급급하다. 이런 분들이 종종 "이 부분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잘 안 읽혔어요"라고 한다. 한번은 모임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자 분노에 가까운 흥분을 보인 분이 있었다. 그럴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는데 너무 흥분한 것을 보니 무의식에서 억압된 어떤 버튼이 건드려진 것 같았다. 모임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끝나자마자 나가버리셨고 남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린다는 영어속담처럼 그 분은 그 시간에 얻을 수 있었던 좋은 것까지 다 버렸다. 반면에 열린 사람들은 오가는 이야기 중에 다른 의견이 있어도 쉽게 상처받거나 방어적으로 굴지 않고, 생각이 다를수록 오히려 흥미로워하며 묻고 더 들어보려고 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들어서 좋았다고 말하거나, 내가 별로라고 생각한 책에서도 귀한 한 줄을 찾아 읊을 줄 아는 사람. 그 태도 하나만으로도 모임은 훨씬 따뜻해지고 단단해진다.
좋은 책과 좋은 사람들이 좋은 대화를 만든다. 그리고 역으로 좋은 대화는 좋은 책과 좋은 사람을 부르는 순환을 만든다. 어떤 책이든 함께 읽을 수 있는 진실성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람 자체로 이미 좋은 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