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함께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 나열했다. 바라는 모습의 사람이 있으면 동전의 양면처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생기는 법. 독서모임에서 부적절하다 싶은 사람들은 당연히 위에 나열한 태도와 반대의 사람들이다.
타인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길게 늘어놓는 사람,
책과 무관한 외부의, 의미없는 옛날 이야기만 반복하며 시간을 잡아먹는 사람,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고집만 부리는 사람. 어디에서든 부정부터 찾는 사람.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쉽게 눈에 띄지만 아주 사소하고 조용하게 모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상황들도 있다.
독서모임에서는 각 모임마다 최소한으로 정해진 약속이 있을 것이다. 독서모임은 학교도 아니고 승패가 걸린 시험을 준비하는 사교육도 아니기에 큰 강제성을 갖진 않는다. 대부분 독서모임에는 여가를 이용해 일주일에 한번 정도 기분전환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취미 수준에서 참여하는 분들이 많기에 독서모임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무리가 없는 선의 최소한의 것들이다. (물론 목적에 따라 강한 강제성을 요구하는 모임들도 있다) 바쁜 시간을 내서 독서를 취미로 삼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지만 때론 그게 문제가 된다. 그 놈의 취미가 한계가 되는 것이다. 취미 수준의 일들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에 약속을 쉽게 어기는 경우가 있다. 모임 시간에 늦는다거나 다른 일이 생겨 못 온다거나 정해진 분량의 책을 안 읽어오는 것 등.. 사람들은 모르고 혼자만 알고 있더라도 이런 습관은 독서모임에 조용히 해를 끼친다. 아무리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와도 안에 있는 모두가 담배냄새를 느끼는 것처럼 과제를 안하는 것이 본인만의 문제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 하나쯤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아니 나 하나가 전체이다. 간혹 사정이 있어서 한두 번 지키지 못하는 것이야 누구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자주 그런다면 고질적인 습관의 문제이다. 취미는 우선순위에서 자주 뒤로 밀린다. 그래서 독서가 취미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치고, 진정한 의미에서 책과 씨름하는 '독서가'는 한명도 보지못했다. 그래도 책을 안 읽는 것 보다야 낫지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애써 힘들이지 않은 공부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고 힘들이지 않은 일은 나에게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독서모임에 와서 조차 책을 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에 읽을 책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건너뛰고 오기도 한다. 내 입맛에 맞는 독서를 넘어서기 위해서 하는 것이 독서모임의 매력인데 그걸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다음에 읽을 책이 채식에 관한 책이라면 '전 채식에는 관심없어요.'라며 거부하고,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하면 '전 자기계발서는 원래 안 읽어요.' 라며 그런 책의 수준을 낮게 본다던가 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고 하면 '전 뼈속까지 문과라서요.' 라며 거부한다. 관심영역 밖의 세계에 선을 긋고 미지의 땅을 밟지 않는다. 저 멀리 12시간 비행기 타고 여행가서 삼시세끼 고추장에 밥비벼 먹으며 역시 이 맛이 최고라고 하는 꼴이다. 물론 독서에도 편식이 권장되는 경우도 있다. 확장된 독서 이후 자신의 관점을 더 깊게 다지고 수렴을 해야할 시기가 그렇다. 확장을 했던 사람에게 수렴이 의미가 있지 그냥 수렴은 편협해질 뿐이다.
경험있는 모임지기라면 이런 상황들에 공감할 것이고, 모임을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미리 알아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좀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지않을까. 그리고 독서모임 참여자라면 자신을 한번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물론 위에서 말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이렇게 사람을 이분법으로 단순화시키고 구분지어 극단적으로 설명하는 건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설명을 위해 적절과 부적절이란 말을 사용했지만 세상에 부적절한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어떤 상황에 보여지는 습관과 태도의 문제이고 그런 태도의 단면이 독서모임이라는 장에서 살짝 드러났을 뿐이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여기에서는 적절했다가 저기에서는 부적절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독서모임 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부적절한 사람이 한명도 없는 적절한 사람 100% 가 모여서 책 읽는 순간이 아니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닫힌 사람은 조금 열리고 모난 사람이 조금은 둥글어지고, 말이 많은 사람은 조절을 알게 되고 말이 없는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부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패턴을 깨닫고 마냥 긍정적인 사람은 부정을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서로를 버텨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맞춰가려는 노력과 의지를 내고 연습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때에 따라 말하기 힘든 피드백도 나누며 삐지기도 하고 미워하고 울기도 하겠지만 그런 시간을 지나 다시 회복하고 성장한다. 서로의 옛 모습을 놀리기도 하고 그런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각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품어줄 때 풍성한 모임이 되고, 우린 모두 적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