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다른 주제의 독서모임을 하고 있으니 쉬는 날 빼면 일주일에 다섯개, 한달 평균 20회의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업무적으로 보면 난 책이라는 유형의 상품과 독서모임이라는 무형의 서비스를 판매하는 자영업자이다. 그간 책방에서 해온 수많은 독서모임들을 되돌아본다. 모임에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모두가 단골이 되거나 모임에 정착하는 것은 아니다.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오래 남는 사람들도 있다. 그 과정에서 구구절절 지면으로 다 말하지 못하는 다양한 일들과 감정소모도 있었다. 오는 사람 막지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수밖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독서모임에 온다. 처음엔 다들 책을 읽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책만 읽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와 목적은 책을 읽으러 오는 것이지만 수면 아래, 아니 지면 아래로 내려가면 각자 다른 이유가 있다. 백화점에 가서 옷을 한벌 사더라도 어떤 이는 오롯이 자기 만족을 위해, 어떤 이는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직장 생활을 위해 등등 각기 다른 욕구가 있는 것처럼 독서모임에 오는 사람들 역시 이 곳에서 충족하고픈 각기 다른 욕구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한 소리같지만 이걸 파악하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동기를 5단계 욕구 위계 이론으로 설명했다. 피라미드 모양에서 하위욕구부터 설명하면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1단계 '생리적 욕구', 신체적, 정서적 안전과 안정에 대한 2단계 '안전 욕구',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욕구 3단계 '사회적 욕구',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싶은 4단계 '존경 욕구', 마지막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창조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5단계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 매슬로우는 후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타적인 욕구인 6단계 '자아초월 욕구'를 추가하였다. 1-4단계를 결핍욕구, 5-6단계가 성장욕구다. 그리고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욕구 위계론에 비추어보자면 지금까지 독서모임에서는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더 나은 자신이 되려는 움직임.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는 사람들,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그에 적합한 자극을 찾기 마련이고 이에 독서보다 더 가성비 뛰어난 도구가 있을까. 매주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며 자신의 관점을 확장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독서모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이다. 독서모임에 성실히 참석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만들어(!)온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게으르다.
나 역시 이 욕구가 강한 편인지라 자아실현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 모이면 시너지가 대단하다. 특히 독서를 통한 목적성이 명확한 모임들은 더더욱 그렇다. 이럴 때 개인의 발전 외에도 모임 안에서 좋은 네트워킹과 협업이 생겨난다.
독서모임에서는 자아실현의 욕구 외에도 다른 욕구들도 만난다. 1단계 (생리적 욕구)와 2단계(안전 욕구) 에 있는 사람들은 굳이 그 욕구충족을 위해 독서모임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독서보다 더 시급하게 기본욕구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자아실현의 욕구를 제외하면 3단계 사회적 욕구와 4단계 존경의 욕구를 가진 분들이 많다. 이 지점에서 내가 많이 헷갈렸다. 왜냐하면 자아실현의 욕구는 드러나기가 쉬운데 사회적 욕구와 존경의 욕구는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경우가 많거나 이중메세지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처음엔 파악하기 힘들었다. 시작할 땐 다들 책을 좋아해서 왔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다. 사회적 욕구가 강한 분들은 독서보다는 모임을 통한 유대감 형성 더 관심이 많다.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데서 더 충족감을 느낀다. 사람들과의 만남, 따뜻한 대화, 공통 관심사 공유를 통해 얻는 소속감은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나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독서모임은 힘든 일상에 잠깐의 피난처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로 형, 언니, 동생처럼 친하게 지내며 독서모임 시간이 아니어도 함께 맛있는 거도 먹으러 다니고 차도 마시러 가고 놀러도 다닌다. 이 욕구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들도 참 보기좋다. 문제는 모임에 이런 분들이 많아지면 점짐 친목모임으로 변해간다는 점이다.
존경의 욕구가 큰 사람들은 독서모임을 통해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원한다. 주로 책을 많이 읽으셨던 분들, 사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오래하셨던 분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공감을 받을 때 존중받는 느낌을 얻는다. 그리고 독서모임은 그런 분들의 지혜를 나누기에 좋은 장이다. 모든 욕구가 그러하듯 존중의 욕구를 서로 건강하게 주고 받으면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기 자랑을 자주 늘어놓거나 필요 이상의 가르침이 펼쳐지기도 한다. 때론 자신이 익숙치 않은 분야에서는 한계를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걸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인간의 욕구들은 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그에 적응해온 생존방식과 연결되어 있기에 나쁜 욕구란 없다. 상황과 맥락에 맞게 드러내고 건강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면 된다.
내가 유능하거나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에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한계가 있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각 단계의 욕구가 모임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자연스레 충족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떠난다. 지금까지 모임을 떠난 사람들을 되돌아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가 원했던 욕구가 이곳에서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 이제서야 보인다. 독서모임에 오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욕구를 다 충족시켜줄 수는 없기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다지만 그건 절에 문제가 없었을 때 얘기다. 중이 왜 떠났는지 알아보고 경우에 따라 노후한 절을 리모델링 할 필요가 있다. 독서모임을 9년하고 뒤늦게 깨달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