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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집 Aug 18. 2024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소설을 읽고 창작하다―

   전혀 담백하지 않은 단어들이 모여 담백한 문장과 문체를 만든다. 대화와 생각은 유난히 감성적으로 전달된다.

   영화적 서술. 중심을 둘러싼 사람들 모두는 각자의 관점에서 주인공이라는 것. 그리고 각자의 혼돈에 두 발을 딛고 있다는 것.

   오직 하나의 우연, 결심은 사랑으로 향하지 못한다는 것. 사랑은 무수한 우연과 무수한 머뭇거림, 무수한 결심으로 꾸려진다는 것.



하필이면 브람스였다. 너는 내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로 물었다. 

모차르트에 미쳐있는 이 시대에서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시몽, 

너에게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 늦은 30대는 좁은 방이다. 좁은 방은 아늑한 안정감을 준다. 익숙한 방의 벽지와 가구들이 나를 감싼다.

하지만 너는 예고 없이 방문을 걷어차며 꿉꿉하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상쾌하다 못해 알싸한 바람을 부른다.

나는 대피한다. 머리칼을 비집으며 사이사이를 갈라놓는 화한 바람. 그것은 일종의 경종이다. 

너는 자유로운 젊음의 한복판이다. 너는 내 앞에서 젊음을 잃어버린 이들을 조롱한다. 나는 너의 그 농담이 날 겨냥한 것일까 생각한다. 분명 그것은 내 눈알에 대고 당긴 활시위였다. 웃어야 한다. '젊음을 잃어버린 이들'을 한데 묶어 와인 한 모금의 안주로 소비한다. 식도를 굴러가며 남은 알코올의 궤적, 그것은 따끔하다.


나는 너를 선망한다. 너도 나를 선망한다. 어떤 때 너는 한심하다. 그럴 때 나는 내 나이에 자부심을 느낀다. 어떤 때 너는 너무 빛난다. 그럴 때 나는 내 나이에, 그리고 내 삶에 한심함을 느낀다.

너랑 나는 그렇다. 

우리는 잘 맞는 퍼즐조각이다. 그러나 우린 이기적이다.

너를 품기엔, 너와 하나가 되어 성장하기엔 나는 너무 이기적이다. 네가 더는 탐나지 않는다.

너는 내게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을 주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네가 밉고 두렵다.


나는 돌아간다. 방문을 닫고 걸쇠를 건다. 창문을 닫는다. 새소리가 멈추고 재잘거리는 소리가 멈춘다. 고요하다. 돌아왔다.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로제를 나는 다시 기다린다. 익숙한 고독감으로 여성지를 펼친다. 돌아가는 LP 플레이어의 전원을 뽑는다.

나는 젊음에서 나온다. 





- 본문 中 발췌


시몽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자신이 그 영국식 사무실에서 줄곧 그런 일을 겪고, 줄곧 그런 말을 들어온 것 같았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점점 압박해 숨 막히게 하고 죽음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그는 문득 생각에 빠져 들었다.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 이십오년 동안 이 선생에게서 저 선생에게로 옮겨 다니며 줄곧 칭찬이나 꾸중을 받은 것 말고, 내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가 이렇게 강하게 이런 문제를 스스로에게 제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전 도대체 뭘 했던 걸까요?"


"뭐라고? 자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멍청한 친구 같으니라고. 그게 바로 비극일세. 자네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단 말이네."


"저는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몽이 말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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